4월, 그 저항의 시(詩)
4월, 그 저항의 시(詩)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4.0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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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旣成) 육법전서(六法全書)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보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개수작이냐/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중략)…/ 혁명이란 단자는 학생들의 선언문하고/ 신문하고/ 열에 뜬 시인들이 속이 허해서/ 쓰는 말밖에는 아니 되지만/ 그보다도 창자가 더 메마른 저들은/ 더 이상 속이지 말아라/ 혁명의 육법전서는 혁명밖에는 없으니까’(김수영 ‘육법전서와 혁명’)

김수영(金洙暎)은 시의 현실참여를 실천적으로 보여준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1960년 4·19혁명 이후 상당한 변화를 드러낸다. 전후(戰後) 시에서 자주 드러나던 냉소적인 어조와 허무의식이 사라지고, 현실에 대한 자기주장이 적극적으로 시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육법전서와 혁명’은 이러한 시적 경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시에서 궁극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것은 사랑과 자유다. 4·19 혁명을 통해 자유의 참뜻을 현실적으로 체득했던 그는 4·19 혁명이 군사정권에 의해 좌절되는 것을 보면서 짙은 회의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유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적’에 대한 증오와 그 적을 수락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등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1967년에 발간된 ‘52인 시집’에 수록된 이 시는 신동엽(申東曄)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반제국주의와 분단 극복의 단호한 의지가 응집되어 있는 참여시의 절정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이상화(李相和)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나 이육사(李陸史)의 ‘절정’에 닿아 있는 기념비적인 저항시로 평가받고 있다. 4·19를 노래한 많은 시인들 가운데, 이 사건을 민중사적 관점에서 파악한 이로는 신동엽이 두드러진다. 신동엽에게 4·19는 동학농민운동과 3·1운동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그리고 혁명의 4월 하늘은 영원(永遠)의 얼굴이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민주·자유·정의 정신을 외쳤던 4·19혁명이 올해로 57주년을 맞는다. 4·19혁명 정신은 지금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정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능히 던질 수 있는 피의 전통이 용솟음치고 있음을 역사는 증언한다. 의기의 힘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로 세웠고, 해마다 사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사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해마다 사월이면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4·19 묘역의 비문(碑文)이다. 일제 강점의 치욕을 벗겨내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음에도 한국사회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민주적 가치와 실행에 대한 믿음은 널리 퍼져 있지 못했다. 그러나 대규모의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정의를 위해 부릅뜬 눈들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게 된 것이 바로 4·19혁명의 도화선이었다.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는 과연 4·19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있는지 겸허히 돌아보아야 할 일이다. ‘부패한 권력은 반드시 망한다’는 그 뼈아픈 교훈을 다시 되새기는 사월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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