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조의 권리와 의무
슈퍼노조의 권리와 의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30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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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넘게 노동담당 기자를 하며 지역 노동계를 지켜보다보니 노조라고 다 같은 노조가 아니더라. 노조 간에도 힘의 차이가 분명하던데 파업이 전혀 힘을 받지 못하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약체노조’라면 일사불란한 파업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현대자동차 노조는 ‘슈퍼노조’라 부를 만하다. 노조의 역사적 탄생과정 탓에 회사는 갑이고, 노조는 을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이지만 현대차 노조만은 다르다. 현대차에서는 노조가 갑이고, 회사는 을이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지난해 지나친 파업으로 긴급조정권 발동 직전까지 갔던 건 차치하더라도 생산현장만 들여다봐도 그렇다.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현장의 모습은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가 현장 답사를 거쳐 최근 발간한 저서 ‘가보지 않은 길’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책에서 가장 놀라운 건 관리자의 위상. 관리자인 파트장이나 그룹장, 라인장을 무서워했던 것은 이제 옛일, 노조의 힘이 세지면서 대신 조합원 100명에 한 명 꼴로 선출되는 노조 대의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대의원은 만능해결사다. 만약 회사의 방침을 관철시키려 노력하다 조합원과 갈등을 일으키는 파트장이나 그룹장이 있으면 당장 대자보에 이름이 오른다. 관리자들은 대자보를 두려워한다. 윗선에서 문책성 인사가 내려오기 때문인데 그런 탓에 윗선에서도 가능하면 노조를 건드리지 말 것을 희망한다. 학교로 치면 교권침해다. 이렇다보니 이전 노조집행부의 경우 회사돈으로 만드는 사원증에 대의원들까지 금속노조 마크를 넣어달라고 요구해 논쟁이 벌어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절대반지 같은 권력의 ‘완장’을 차고 싶었던 게 아닐까.

오로지 조합원 편인 대의원들이 이처럼 막강한 힘을 갖다 보니 현장이 돌아가는 모습은 놀랍다. 현장관계자들에 따르면 개인별로 장시간의 휴식시간 확보를 위해 일감몰아서 하기가 횡횡하고, 휴식시간 동안 공부를 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이 적잖다고 한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모바일 게임에 심취하는 조합원도 다반사란다.

이렇다보니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외국공장에 비해 울산공장은 한참 처져 국내 아산공장이나 전주공장에도 못 미친다는 건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로 2013년 자체 통계에 따르면 편성효율은 해외공장이 모두 90%대였던 반면, 한국공장은 약 60%에 그쳤다. 같은 노동을 완료하는데 주어진 표준작업시간이 한국공장에서 훨씬 더 길다는 뜻이다.

3년 넘게 노동기자를 하면서 깨달은 또 하나의 팩트는 현대중공업을 보면서 아무리 덩치가 큰 대기업이라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잘 나갈 때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격언은 진실이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5년치 수주가 쌓여 즐거운 비명을 질러댔던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까지 해야 할 정도로 바닥을 칠 줄 누가 감히 예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현대차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 힘의 단맛에 취한 노조가 권리만을 내세우고 생산자로서의 의무인 생산성은 등한시한다면 현대차도 한 방에 훅 갈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노동계를 대표하는 노조로 대한민국 노조의 평균 위상을 올리는 역할도 의식하고 있을 테다. 하지만 노조의 모범은 회사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협력적 노사관계 구축을 통해 상생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지지고 볶고 싸워도 노사는 결국 한 배를 탄 동지. 실제로 독일 같은 선진국의 노사관계는 그렇다고 한다. ‘기업경쟁력 증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노사 모두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내세운다. 잘 될 수밖에. 힘은 권리만을 갖지 않는다. 의무나 책임도 따른다. 슈퍼히어로인 스파이더맨도 말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고.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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