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우는 결혼식
해치우는 결혼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2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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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결혼식을 절차에 따라 예의바르게, 까다롭게, 엄숙하게 치러도 결과적으로 이혼할 사람은 이혼을 하고 만다. 영국의 다이애나와 결혼했던 찰스 왕세자가 금세기의 대표적 인물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영국이 흔들릴 정도로 쌍두마차를 타고 결혼식을 거행했으나 결국은 이혼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결혼식을 거창하게 올리는 것은 축복을 많이 받아 그 힘으로 참고, 또 참아가며 잘 살아가라는 것이었는데 그렇지를 못했다.

우리나라도 사람 사는 곳이라 결혼식을 올리는 풍습은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해방된 뒤에 들어온 간편하고 패스트푸드식(맥도날드 햄버거 따위의 fast food)도 있다. 둘 다 시작과 끝은 깨끗하게 차례를 따라 거행 되어져야 한다. 그래야 백년해로할 것이라는 믿음이 가고, 또 기대도 한다. 그런데 요새 사람들, 결혼식 올리자마자 이혼할 궁리부터 하는 것 같다. 다음 이야기가 이것을 말해준다.

필자는 울산에서만 제자들, 친지의 자녀들, 기타 인연도 없는 사람들 합해서 약 250쌍의 주례를 서주었다. 특히, 모르는 사람의 주례는 필자가 주례를 서주면 첫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 때문이란다. 하여간 주례를 서면서 양가의 어른들과 함께 눈물도 흘렸고, 한 집안의 남매를 각각 주례하면서 주례가 복 받은 사람이라고 자랑도 하였고, 제자의 아들 결혼식으로 서울까지 가서 주례를 보았고, 대학의 바둑 동아리 지도교수로서 주례를 서고서 주례비라고 주는 돈에 내 돈까지 보태어 뜯기기도 하고, 하여간 별별 에피소드가 많다. 그런데 엊그제 우리 사회의 변화된 결혼풍조를 보고 개탄하는 주례를 서면서 기가 찰 일을 목격하고 말았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이혼할 궁리부터 하였던 증거가 있었다.

엊그제 결혼식장의 주례를 보는 단 위에 1분 먼저 올라가 서 있으면서 마이크 둘레를 살폈더니 지저분하기가 이를 데 없었으며 혼인서약서와 성혼선언문을 넣어두는 폴더가 여기 저기 놓여있었다. 이상해서 열어보니 10월 4일에 결혼식을 올린 신랑과 신부의 이름, 주례의 이름과 사인까지 적혀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다시 단의 양쪽 끝까지 훑어보았다. ‘아-니, 해도 너무 한다.’ 세 개가 더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모두 네 개다. 네 개 다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분명히 써 있었고, 세 개에는 주례의 이름이 분명히 써 있었다. 사실 결혼식을 거행하기 전에 직원 같은 젊은 사람이 왔다 갔다 해서 하객이냐, 결혼식장 직원이냐를 물었다. 양복에 와이셔츠를 입었는데 넥타이를 매지 않아 물은 것이다. 직원이라고 해서 신랑, 신부 입장하는 카펫 깔아놓은 것이 반듯하지 않으니 바로 잡아놓으라고 했더니, 지금 할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앞의 사람들이 흩으러 놓고 나간 것이다. 결혼식을 시작하기 전부터 기분이 나쁘더니 사진사까지 노타이 차림으로 단상을 오락가락 한다. 신부 입장까지 끝나고 혼인서약과 성혼선언문 낭독을 할 차례에 주례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래서야 되겠느냐고 버려진 것들을 들어서 하객들에게 보이며, 결혼식장 직원들을 호통치고, 이미 떠나간 사람들을 나무랬다. 웬 사람의 박수도 나왔다. 그러면서 내가 주례를 서는 신랑은 제자이기 때문에 내가 꼭 챙겨서 가도록 하겠다고 하면서 축복하는 덕담을 나누어 주고 차분하게 결혼식을 마쳤다. 행복하게 잘 살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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