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학칼럼] 국가를 위한 자기희생
[손종학칼럼] 국가를 위한 자기희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28 2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고 국가를 위해 자기희생을 한 인물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이들은 역사의 별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역사적 인물 중 수많은 난관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뜻을 위해 고독한 길을 걸은 특이한 인물이 있다. 역사 기록이 많지 않은 인물로 영락한 잔반으로 보이는 조선 후기의 지리학자 고산자 김정호다. 그는 자신만의 가슴 뛰는 길을 걸으며 꿈을 실현한 사람이다.

그가 일생을 바쳐 만든 <대동여지도>는 다른 사람의 재정 지원을 받고 한 것도 아니요, 누구의 지시를 받아 제작한 것도 아니다.

가까운 최한기나 신헌 등 몇몇 지인들의 관심을 제외하면 거의 혼자 힘으로 만든 것이 <대동여지도>이다. 그가 만든 지도는 <대동여지도>만이 아니다. 그는 <동여도지>를 만들었고, 이어 <청구도>, <여도비지>에다 <동여도>까지 만들었다. 그는 입신양명을 위해 지도를 만든 것이 아니다. 후세에 이름을 남기려는 생각도 가진 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한국 최고의 지도를 고종의 섭정이자 그 당시 실제 통치자인 대원군에게 바쳤으나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원군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대동여지도>를 불태웠다는 이야기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다.

김정호는 자신이 지도를 만든 것에 대해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적을 쳐부수고, 난폭한 무리를 토벌·진압할 때는 도움이 되며, 평화 시에는 정치를 수행하고, 사회의 모든 일을 다스리며 정책을 시행·조절하는 데에 나의 지도가 이용되기만을 바랄 뿐이다”라는, 나라를 위하는 일념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도를 만든 이유를 ‘대동여지도’의 제1첩 ‘지도류설’의 끝머리 ‘방여기요’에 분명히 적고 있다.

그가 지도 제작에 뜻을 두고 전국 산천을 답사하고 다닐 때, 가족은 물론 그의 친족, 친구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극구 만류했다고 한다. 당시 지리에 관한 상식을 갖는다는 것은 국가기관원이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김정호는 지도 제작을 위해 40여 년간 전국을 세 번 돌고 여덟 번 백두산에 오른 끝에 1861년(철종 12년)에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 세상으로부터 미쳤다는 평가를 들을지라도 자기 일에 몰두하여 끝내 자신만의 업적을 세상에 남긴 사람들처럼, 김정호 역시 자신만의 위대한 업적을 세상에 남긴 역사상 보기 드문 위인이다.

사람들은 대개 손쉽게 공명을 얻고 지위도 누리는 편안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더욱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위해 자기희생까지 하기는 꺼린다. 작은 일을 하고도 큰 위업으로 돋보이게 하고 싶어 하는 자기광고,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특히 어떤 일을 추진할 때는 주변 사람의 눈치부터 살피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나의 일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 일이 성공할까, 성공하더라도 그 일에 따르는 보상이 얼마나 될까 등등에 민감한 것이다.

김정호가 지도 제작에 나섰을 때만 해도 자신이 <대동여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는 확신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만류했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 일을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대에 가서는 누구라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김정호의 삶을 통해 국가를 위한 자기희생 정신을 본다. 옳은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의로움, 그리고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탐구정신을 아울러 본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물은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실천적인 인물이다. 즉, 주변의 비판에도 끄떡없이 국가를 위해 자신의 길이 옳다고 생각하면 어떤 난관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의지의 인간을 필요로 한다.

손종학 전 울산시 체육지원과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