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과 ‘구두’에 대한 짧은 생각
‘짚신’과 ‘구두’에 대한 짧은 생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2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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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한테 봄 핑계를 하며 몸이 나른하다 했더니, 봄 타는 것에는 ‘도다리쑥국’한 그릇이면 십전대보탕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세 사람은 박장대소하며 의기투합하여 수소문 끝에 음식점을 찾았다. 어릴 때 봄이면 지겹도록 먹었던 쑥털털이, 쑥떡, 쑥국, 쑥밥도 이제는 전문식당을 찾아야 맛볼 수 있는 시대여서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정면에 걸어둔 짚신 한 켤레가 시야에 확 들어왔다. 식당을 찾으면 짚신 한 짝이나 한 켤레를 걸어둔 곳이 간혹 눈에 띈다. 기회가 있으면 주인한테 물어볼 양하고 쑥국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늦은 점심이라 주위를 살펴보니 여종업원과 주인이 커피 한 잔씩을 놓고 마주앉아 한가롭게 얘기 중이다. 대들보를 울리려면 기둥을 치라는 말이 있다. 종업원에게 “저기 짚신은 왜 걸어두었나요?”라고 슬쩍 물었다. 종업원은 자주 듣는 소리인 듯 “몰라요. 아줌마한테 물어 보세요” 했다. 딱 걸려들었다. 옆에 있던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겸연쩍어하면서 “어디 물어보니까 걸어두면 손님이 많이 들어온다 해서”라면서 뒷말을 흐렸다. 주위를 살펴보니 계산대 위에는 ‘많은 손님이 끊임없이 찾아온다’는 의미의 사자성어 ‘천객만래(千客萬來)’ 글귀가 이발소용 액자 안에 걸려 있었다. 손님을 끌기 위해 이중의 비보를 해두었던 셈이다.

이러한 민속학적 접근은 사람이 싣는 신발 짚신이 곧 사람으로 상징되어 많이 찾아오면 그만큼 수입이 늘어난다는 것으로 확대된다. 음식의 맛으로 승부하기보다 우선 많이 와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사례일 것이다. 한 지인이 말했다. “짚신이 손님을 많이 끌기 위한 방편이라면 짚신보다 더 질긴 구두를 걸어두면 그 효과는 몇 배가 될 터인데 왜 굳이 짚신이요? 구두를 거소”라고…. 입가심으로 커피 한 잔씩을 마시고 나오면서 다른 지인이 말했다. “구두는 와 구두라 했는고? 모르겠네”라고….

‘구두는 일본어 くつ(kutsu, 靴)가 우리말로 굳어진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본래 발음이 ‘구쓰’였을 kutsu[靴]가 어떤 경로를 거쳐서 ‘구두’로 정착했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이 단어의 어원을 막연히 kutsu[靴]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우리 사전에서는 일단 이 단어가 일본어 kutsu[靴]와 어원적으로 유관한 것임은 인정했지만, 그 관계가 매우 멀어져 이미 고유어화한 것으로 보았다.’

지인이 스마트폰에서 찾은 자료를 턱밑에다 들이밀었다. 짚신은 한 시대를 풍미한 신발이었다. 짚으로 새끼를 꼬아 보통 넉 줄의 날을 놓아 삼는다. 옛날에는 소도 먼 길을 가면 반드시 짚신을 신겼다. ‘짚신벌레’는 그 모양이 짚신을 삼을 때 발바닥 모양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짚신보다 더 좋은 제품에는 여섯 줄의 날을 놓아 촘촘하게 삼은 것이 있는데 이를 ‘미투리’ 혹은 ‘메투리’라 부른다.

미당의 시 귀촉도에 ‘육날 메투리’가 등장한다. 짚신은 죽은 이를 천도하는 의식에도 등장한다. 사자상에 반드시 올라가는 물건이다. 사자들이 신고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천도굿에서 망자가 신은 짚신을 태우면 저승으로 신고 간다고 믿는다. 현재는 상제(喪制)가 ‘불효자가 신는 신발’의 의미로 간혹 신기도 한다. 당나라 때 선종(禪宗)의 안거 해제일에는 짚신 세 켤레 값을 해제비로 주었다. 게으른 선승에게 임제 스님은 “짚신 값 내놔라”고 다그쳤다. 만행(卍行)의 여비(旅費)인 셈이다. 수행승에게 잠과 게으름은 최대의 적이기 때문이다.

과거 보러 한양으로 올라가던 조대(措大=가난한 선비)의 봇짐에 도롱이같이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것이 짚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짚신과 구두 이야기를 풀어본다.

첫째, 구두는 굽이 높은 신발이라는 관점이다. 신의 소재대로 분류하면 가죽은 화(靴), 짚은 혜(鞋)이다. 운두가 낮으면 리(履)가 되고, 높으면 굽두가 된다. 구태여 한자어로 표현하자면 굽두〔丘頭〕이다. 즉 운두가 높다는 뜻이다. 구두를 욕두(浴頭), 반두(飯頭), 화두(火頭), 수두(水頭)로 표현할 때 ‘두(頭)’는 접미사로 행위 혹은 모양을 나타낸다. 자기 논에 물대기 식으로 말한다면 구두(丘頭)는 짚신 즉 초혜(草鞋)와는 반대로 굽이 높은 신발일 것이다. 실제로 유목민은 운두가 높고 질긴 가죽으로 된 화(靴)를 주로 사용했다. 이와는 달리 농경민은 높이가 낮고 짚을 소재로 엮은 혜(鞋)를 주로 사용했다. 구두가 일본어 kutsu[靴]에서 연유되었다고 속단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민간어원설에 더 애착이 가는 탓이다.

둘째, 구두는 질긴 신발이라는 관점이다. 가죽신인 화(靴)는 질겨서 짚신(鞋)보다 더 오래 신을 수 있다. 돈에 인색한 사람을 ‘구두쇠’라 부르는 것은 ‘질기다’는 점에 착안해서가 아닐까? 현재도 재물과 인정에 몹시 인색하고 아끼는 사람을 ‘구두쇠’ 혹은 ‘구두배기’라 부르는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구두쇠, 구두배기와 같은 낱말이 줄어 ‘구두’로 변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복을 구하려고 짚신을 걸어두는 것보다 ‘땅을 쓸면 황금이 생기고 문을 열면 만복이 온다(掃地黃金出 開門百福來)’는 문구를 걸어두는 것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 짚신을 걸어두기보다 방(榜)이나 첩(帖)을 써서 걸어두는 것이 보기에도 좋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특히 음식점이라면 위생이 소지에 해당되며 그 덕분에 수입이 증가하면 백복래(百福來)가 아니겠는가. 짧은 생각에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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