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도전하고픈 일자리죠”
“다시 한 번 도전하고픈 일자리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3.21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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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북구 여성산불감시원

-북구 산불감시원 30명 중 5명이 여성

울산 마이스터고등학교가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는 울산시 북구 효문동 율동(栗洞) 마을. 학교를 뒤로하고 이 자연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마을을 당산나무처럼 지켜주는 북구 53호 산불감시초소가 나타난다. (‘53호’는 무선호출기 번호를 뜻한다. 효문동엔 51, 52, 53호 등 3개의 감시초소가 있다.) 그런데 이 감시초소를 지키고 있는 산불감시원은 뜻밖에도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

북구 산하동에서 승용차로 출퇴근한다는 이선영(56)씨가 그 주인공. 이씨가 매일같이 둘러보는 산은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탄광촌’이란 이름의 야산 일원이다. 율동(栗洞)이란 마을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일대는 한때 밤나무가 많이 자라 ‘밤골’로 불리기도 했다.

북구 계약직 산불감시원은 모두 30명. 이씨는 이들 가운데 1명일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30명 중에 여성이 5명이나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산불을 감시하는 일자리가 더 이상 금녀(禁女)의 영역이 아니라는 상징적 시그널이어서 시대의 변화를 새삼 실감케 한다.

여성 산불감시원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는 북구만의 특징은 아니다. 다른 구·군도 마찬가지라는 게 북구 관계자의 얘기다.

-주6일 근무, 월170만원 수입…도전해볼만

북구 공원녹지과 관계자의 설명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자. 지난해 11월 1일부터 시작된 북구의 2016∼2017 산불 감시 업무는 오는 5월 15일까지 계속된다. 7개월 보름 동안이니 반년이 조금 넘는 기간이다.

산불감시원의 하루 일과는 오전 10시에 시작해서 오후 7시에 끝이 난다. 점심시간을 합쳐 9시간이다. 오전 9시∼오후 6시로 잡힌 적도 있었으나 산자락 근처의 소각행위가 해질 무렵에 부쩍 심해지다 보니 일부러 한 시간씩 늦추었다.

‘대략’이란 수식어가 따라붙지만 북구 산불감시원들의 평균 연령은 남성이 60대 초·중반, 여성은이 50대 초·중반이다. 물론 예외도 있어 최고령자는 74세 할아버지 감시원이다.

응모자격은 나이나 성별은 무관하다. 북구에 거주하고, 지리를 잘 알고, 건강하면 그만이다. 여기에다 이륜차 이상 운전자격증이 있으면 인센티브까지 주어진다.

하는 일이란 산불 예방 홍보와 감시·단속이다. 하루 세 번 구청 상황실에 보고하고, 위반사항이 생길 때마다 ‘적발보고서’를 올린다. 무선호출기와 호루라기는 그래서 필수품이다.

대우도 그리 박한 편이 아니다. 4대 보험이 보장되고 월 160∼180만원의 수입은 거뜬하다. 3개월 이상 근무하면 감시기간이 끝난 뒤에도 3개월간 70% 수준의 ‘휴무급여’라는 것도 지급된다.

주중 하루를 쉴 수 있고(이씨는 매주 목요일이 쉬는 날이다), 그 빈자리는 가까운 초소의 감시원이 품앗이로 메워 준다. 이만하면 여성으로서도 한번쯤 도전장을 내밀만한 의욕이 생김직한 직종이지 싶다.

-자아실현 위해 도전… “빗나간 선입견 서글퍼”

이선영씨가 산불감시원 직에 과감히 도전한 것은 새로운 변화와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들도 다 컸고, 건강도 돌보고 바깥세상도 경험해보자는 생각에 도전 결심을 굳혔죠.” 그 이전까지는 바깥활동이라 해야 ‘동네 반장’ 2년간 봉사활동에 동참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산불감시원이 마냥 마음 편한 일자리는 아니었다. 언행이 거친 등산객과 입씨름할 때도 있고 마을 분을 만나 참을성 있게 설득해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겐 냉정하고 남에겐 부드러웠던 성격도 어느 새 조금씩 바뀌어 갔다. “참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이해심 많은 성격이었는데 속마음과는 달리 조금은 냉정해진 것도 같구요.”

시민의식, 사회의식에도 새롭게 눈뜨는 계기가 됐다. 비록 작은 규칙이라 해도 우리 국민이 잘만 지킨다면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부강한 나라가 될 거라는 신념이 생겼다. 기본을 제대로 지킬 줄 아는 국민, 그런 국민이 되겠다는 다짐도 해 보았다.

이씨는 ‘사람과 자연은 다 같이 생명’이라고 믿는다. ‘최선을 다해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그래서 버리지 않는다. ‘관찰하고 느낀 것’이라며 이런 말도 들려준다. “산불의 원인이 대부분 담뱃불이라고 생각해요. 담배꽁초에 불씨가 남아있는데도 왜 자꾸 함부로 버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증거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화부터 내고….”

일부 등산객과의 입씨름이 대개 그런 연유로 생긴다는 얘기로 들렸다. 반면, 마을사람들은 이제 그녀의 팬이 다 돼 간다. 적발보고서를 서너 번 작성도 했지만 논두렁 태우기나 쓰레기 소각은 이제 더 이상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우호적이다. ‘자발적 감시원’으로 여겨질 때가 더 많다.

그녀에겐 안타까운 것이 또 하나 있다. 일부 남성들의 비뚤어진 선입견이다. “여자가 뭘 한다고”라며 얕보거나 ‘색안경’을 끼고 대하려고 하는 일부 남성들의 일그러진 태도는 이따금 서글픔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 지역사회의 ‘양성평등(兩性平等)’은 아직도 먼 나라 얘기일까?

-자연과의 대화 즐겨… “자연이 저를 지켜주죠”

지난 겨울 어느 날 이선영씨는 전혀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들게 된다. 작은 새 한 마리가 그녀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감시초소 앞에 새들의 먹이그릇(?)을 따로 마련했고, 먹잇감으로 ‘싸래기’를 뿌려두었다. 또 다른 새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야생 산비둘기 떼였다. “날짜도 또렷이 기억해요. 2월 8일, 설날이었거든요.”

이날 찾아온 산비둘기는 자그마치 열다섯 마리. 어떤 때는 일고여덟 마리뿐일 때도 있었다. ‘먹이그릇’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다. ‘비둘기 궁전’이라고. 여러 마리의 산비둘기 중에서도 특별히 호감 가는 녀석 한 마리가 있었다. 핑크빛과 황금빛이 감도는 이 녀석에게 ‘은비’라는 애칭을 지어 주었다. 귀공자 스타일의 은비는 먹이경쟁에서도 뒤지는 일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일주일 넘게 기다려도 찾아오지 않아 애를 태운 적도 있었다.

산비둘기 떼와의 만남을 위해 출근시간도 30∼40분 더 앞당겼다. 새들과의 사랑이 깊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주민 한 분은 먹잇감인 싸래기를 수시로 가져다주신다.

산불감시원이 다 된 이씨에게는 어느새 자연과 대화하는 습관이 몸에 붙었다. 휴대전화 속의 카메라는 자연히 필수품으로 변모했다. 카메라로 산새를 찍고 야생화도 찍었다. “겨울에 피는 들꽃들도 스스로를 뽐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어요.”

초소 아래 무논에서 수개월째 떼 지어 살고 있는 ‘물오리’ 가족도 카메라에 담았다. 며칠 전엔 소담스레 피어난 진달래꽃도 한 아름 놓칠세라 끌어안았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소리와 함께 짧은 느낌도 메모로 남겼다. “겨울은 어느새 봄 향기로…”

그러다 보니 두려움은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자연의 힘이 저를 지켜준다고 믿게 됐어요.”

이선영씨에게 산불감시원은 이제 어엿한 자부심이다. 그러기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질 참이다. 작아 보여도 행복을 안겨주는 일자리라고 확신하기에….

글·사진=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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