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출신’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울산 출신’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1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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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역사적 탄핵심판 선고가 진행된 2017년 3월 10일 오전, 낭랑하면서도 또렷한 경상도 말씨의 주문(主文)이 헌법재판정에 울려 퍼졌다. 온 국민을 숨죽이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정미(李貞美) 당시 헌법재판관(55,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이날 미용도구인 ‘헤어 롤’ 2개를 머리에 꽂은 채 출근해 해외토픽감이 된 화제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법연수원 16기인 그녀에겐 2011년 3월 이후로 ‘사상 두 번째의 여성 헌법재판관’이란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법조계 재임 시의 평판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균형 있는 판결과 능숙한 일처리를 인정받은 정통 법관 출신’, ‘법원 실무에 능통하며, 늘 겸손한 자세와 타인에 대한 세심한 배려로 동료 법관과 법원 직원들의 신망이 두터운 여성 법관’이란 표현에서도 쉬 짐작이 간다.

그러나 조용하고 차분한 성품 탓일까? 1987년 임관 후 30년간 법복(法服)을 걸치는 동안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기간만 제외하면 매스컴을 요란하게 탄 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다음 두 가지는 그녀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하나는 제왕절개 수술의 위험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아 산모가 숨진 사건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지운 판결이다. 또 하나는 헌법재판소의 ‘간통죄’ 폐지 심판 과정에서드러난 그녀의 생각이다. 이정미 당시 헌법재판관은 폐지 시의 보완책을 강조하며 이런 의견을 남겼다. “폐지되더라도 여성이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들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녀는 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을 많이 내린 법관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 파면’을 계기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의 사적 신상이 궁금했다. ‘울산 출신’이란 말을 들어 더 그랬다. 그러나 인터넷 검색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고향이 ‘울산광역시’란 사실 말고는 더 이상 연결고리를 찾기가 힘든 탓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밴드에 실렸다는 글을 입수할 수 있었다. 기쁨을 안겨준 그 글을 대충 간추려 전한다.

탄핵심판 선고 사흘 뒤(3월 13일) 퇴임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은 1962년 6월 25일 울산에서 태어났고 대현초등학교와 학성여중을 나왔다. 대현초등학교에서 전교 수석을 놓지 않았던 이정미 학생은 학성여중에서도 전교 1등을 놓지 않았다. 그녀가 마산여고를 졸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가난하면서도 강직한 교육자(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이재만 선생이 1970년대 후반 마산으로 솔가해서 전근을 갔기 때문이었다. (당시 울산시는 경상남도 소속이었다.) 1980년대 초에 다시 울산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1986년 대현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했다. 둘째오빠인 이 모 울산대 특임교수(65)는 “어릴 적 동생은 책을 놓는 법이 없었고, 집중력이 좋고 무척 차분한 성격이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동생은 어릴 적 찬물에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고, 바쁜 가운데서도 늘 울산에 내려와 가족들과 지냈다”며 그녀의 각별한 가족 사랑을 전했다. 그녀는 수학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으나 대통령이 저격당한 ‘10·26사태’를 지켜보면서 법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고려대 법학과로 진학, 진로를 바꾼 것으로 전해진다. 2002년에는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발령받아 당시 지법원장이던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사법연수원 13기)을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기도 했다.

북구 효문동 토박이인 정석윤 한국효행수상자 울산지회장(78)은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 북구 화봉동이 고향일 거라고 귀띔한다. 또한 종하체육관을 울산시에 기증한 이종하 선생과 같은 집안일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녀의 부친은 이미 돌아가셨지만 위로 두 오빠는 아직 생존해 있다. 울산이 낳은 훌륭한 여성 인재 ‘이정미’에 대한 인물탐구는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성싶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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