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 편지] 다시 봄, 헬로우 금와공(金蛙公)!
[길위의 편지] 다시 봄, 헬로우 금와공(金蛙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12 2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말 보여, 히야 신기하네, 이곳에 어떻게 개구리가 살 수 있지?”

내 키보다 훌쩍 큰 바위 눈높이에 손톱만한 구멍이 나 있고 그 좁다란 입구에서 2cm쯤 구멍 안으로 웅크리고 앉은 개구리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목울대가 올록볼록 숨을 쉬고 있었고, 물기 어린 피부가 촉촉하니 분명 살아 있는 개구리였다.

1천400년 전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가 암벽 사이에서 흐르는 석간수를 먹다 발견한 개구리, 그 큰 바위에 구멍을 뚫어 살게 했다는 ‘자장암 금와공’, ‘금와보살이’라고 불리는 금개구리를 정말 만난 것이다.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일 년에 30일 정도, 겨울에도 아주 드물게 나와 있기도 한데 첫걸음에 용하게 알현했다며 사람들이 운이 좋다고,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말해주었다.

‘설마, 그 옛날의 개구리의 후손인 걸까. 그런데 어떻게 그 높다란 절벽 작은 구멍에 개구리가 살 수가 있지? 혹시 스님이 잡아다 넣어 놓는 것은 아닐까…… ’마음속으로 온갖 의심이 들었지만 불온한 생각으로 오던 복이 달아날까봐 두 손을 모으고 삼배를 했다.

신기하기만 한 그 일을 돌아와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랑을 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 궁금해 하는 이들과 수차례 자장암 산문을 넘었다. 첫걸음에 못 보면 두 번, 세 번, 그렇게 볕을 쬐고 있는 금와공은 한 번 나오면 며칠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기에 그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늘 북적거리곤 했었다. 그 귀한 만남이 좋은 행운으로 다들 이어졌는지, 나는 설렘으로 며칠을 지내다 금세 잊곤 했다.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니 그도 좋은 일이었던 것일까.

그 후로도 나의 자장암 사랑은 계속되어, 어느 날 먼 곳에서 온 지인 한 분에게 통도사를 안내하다 들르게 된 날이었다. 서너 사람이 바위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내가 먼저 발을 딛고 올라서 설레는 맘으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갈색 빛 금개구리와 눈이 마주쳤다. 기쁜 마음에 지인 분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는데, 어쩐 일일까. 분명 나는 보이는 개구리가 그분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저렇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앉아 있는 개구리가 보이지 않는다니 무슨 귀신에 홀린 걸까.

두어 번 더 들여다보던 그분이 고개를 저으셨다.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라니, 그 다음날 그 분과 나에게 믿기 힘든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나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먼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돌아본다 했다.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후로 자장암의 금와공 이야기를 수년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았고 발길을 끊었다.

마치 독수리가 두 날개에 안기듯 안온한 암자의 뜰에 스미는 햇살, 한적하고 고요한 곳이 그리우면 생각났던 자장암. 뛰어오르는 개구리 그림 걸린 경칩, 올해 다시 그곳을 찾아 금와보살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로 했다. 햇살 받으러 구멍 사이 마실 오갔을 뿐인 그에게 원망을 했으니 용서를 구해야지. 며칠 봄기운인 듯 온기 있던 바람이 다시 쌀쌀맞게 군다.

한 달 삼십일 중 하루 정도만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날이면 나머지 이십구일쯤은 가뿐히 견딜 수 있다. 그랬던 것 같다. 며칠 정신없이 행복하면 왠지 다가올 불안이 내 뒤로 숨어 기다리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래서 좋은 일 나쁜 일 섞어보면 누구에게나 모든 생은 공평한 것을. 그런데 자꾸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행복이 욕심이 나서 마음 일렁이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럴 때 몸을 부려 나서던 자장암. 자주 가지 않지만 그래서 내게 자장암 금와공에게 가는 길은 스스로에게 주는 위안의 길이기도 하다.

언제 봐도 계절을 잊은 듯 천 년 무심히 한결같은 소나무, 그 솔 향 싣고 차가운 곳으로 따뜻함을 싣고 나르는 바람에 마음 슬며시 얹어 보낸다.

자장암을 다녀왔다니 누군가 개구리를 만났는지 묻는다. 글쎄, 휑뎅그렁한 찬 공기만 오간 것도 같고 움츠리고 앉아 눈 맞추며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최영실 여행 수필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