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잔소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10.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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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청소년기에 다다르면 어른들의 잔소리 듣기를 싫어한다. 특히 요즈음의 청소년들이 더 심하다. 다 교육이 잘 못 되어서 그런 것이다. 하기는 교육도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을 다 포함하여 하는 말이지만 가정교육의 잘 못이 더 크다. 가정교육에서 잔소리 하는 어떻게 하는가의 방식도 문제지만 잔소리를 듣는 태도가 학습되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그래도 잔소리는 필요하다.

잔소리, 왜 큰 소리가 아니고 잔소리, 잔말일까? 청소년기가 되면 세상사 알만큼 알게 되었는데 왜 세세(細細)하게 지시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꾸중까지 곁들이냐의 반항적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다. 즉, 자율적으로 잘 할 것인데 시시콜콜 밀어붙이냐는 것이다. 아마 이들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영어로 ‘Don’t push me to study hard.’는 달달 외울 수 있을 것이다. 수 년 전에 아버지의 위치에 관한 이야기가 우리의 심금을 울린 일이 있었다. 그 때 아들이 10대 초반까지는 우리 아버지가 최고라 생각하다가 20대에 도달하면 다른 아버지들과 비교하여 한 참 모자란다고 여기며 부모의 잔소리에 무조건 반항한다. 이들이 50이 넘어서야 지금 아버지가 계시면 여쭈어 보고 그 지혜를 배울 텐데 한다는 것이다.

대략 30여 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부모의 위압에, 선생님의 무서움에, 길가 어른들의 힘에, 듣는 자세만이라도 잘 되어있지 않으면 혼이 날까봐 잔소리를 큰 소리로 받아들였는데, 미국의 스포크(B. Spock)가 지은 ‘육아법’이 미국을 다녀온 소위 유학파들의 열창으로 한국에 소개되면서 그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집에 할머니가 없어서 젊은 부부 둘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를 다룬 책이다. 마치 요리책처럼, 약방의 처방전처럼 되어있다. 거기에 미국식 개인주의가 바탕이 되는 대목에서는 우리에게 돋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물론 이기주의와는 구별되게 서술되어 있지만 아이를 엄마 품에서 일찍부터 떼어놓는 것부터 획일적 구닥다리는 버리라는 것까지 그 파장이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 교복 자율화를 주장할 때,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스포크의 영향을 받아 다양성의 근거를 스포크에서 찾고 있을 정도였다. 지금 미국에서는 스포크의 공헌과 함께 잘 못 가르쳐진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를 위한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는 엊그제야 스포크의 잘 못을 직접 느꼈다. 바로 대학가요제에서 극히 일부의 학생들이었지만,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를 질문하였을 때, ‘없다’가 1순위(一順位)였다는 사실이다. 존경할만한 인물이 없다는 것은 이 세상에 나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차 있다는 말이다. 모두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게 되어 있지 내가 남을 생각해주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안 해도 선생님이 시험문제를 쉽게 내주어 내가 풀 수 있게 해주고, 사고를 쳐도 부모가 다 뒷수습을 해주니 남을 생각하며 스스로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할 필요가 없으니 존경하는 인물이 떠오르지 않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배꼽이 살짝살짝 보이는 모 여자 가수가 가장 빨리 떠오를 뿐이다(존경하는 인물의 3위). 그녀는 다음 선거에 정치권으로 진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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