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팩에 담아온 족발 (하)
백팩에 담아온 족발 (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0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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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발적으로 하려는 딸의 심부름은 그 가게의 돼지족발을 사서 ‘백팩’에 담아오는 일입니다. 아버지가 딸에게 해주고 싶은 것은 값비싼 물건이 아닙니다. 신경을 써주는 것만으로도 딸은 고맙게 생각할 것입니다. 딸을 향한 수고와 마음씀씀이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면 아버지로서 더 이상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족발가게는 정각 오후 3시가 되면 돼지족발이 삶아져 나옵니다. 삶은 후 1시간 동안 서늘한 곳에서 식혀 조정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냥 먹으면 찰떡같이 붙어버려 맛은 있겠지만 먹기에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쳐야 진정 맛있고 빛깔 좋은 돼지족발이 된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그러니까 오후 4시경이면 최고의 족발 맛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야. 잘 됐어! 그렇다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목표시간은 바로 4시야. 이 시간을 놓치지 말고 모든 일을 제쳐버리고 혼신의 힘으로 손에 넣는 거야!”

족발을 비롯하여 깻잎, 상추, 양파절임, 마늘장아찌, 보쌈김치 등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한 세트의 먹을거리는 두 꾸러미로 나누어 비닐봉투로 건네받는 것이죠. 아무리 걷기를 좋아하는 그이지만 백팩에 담아 돌아올 때는 또 걸어올 수는 없겠지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편이 현명한 판단이라 생각한 겁니다.

계절은 여름철이라 돌아오는 버스 안은 냉방이 잘 되어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옛날과 비교하면 우리도 이제 향상된 교통서비스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냉방이 잘 된 도시형버스라 하지만 족발냄새는 날 수밖에요….

돼지라는 가축은 보기보다 매우 청결한 동물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겠지요. 돼지가 자라는 ‘우리’ 안은 명확히 구분되어 있지요. 날짐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편입니다. 화장실, 안방, 식탁이 나름대로 구별되어 있는 것을 보면 둔하기는커녕 총명하기까지 하지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 총명한 돼지가 식용으로 바뀌면 사정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쿰쿰한 특유의 냄새가 솔솔 나기 마련이지요. 돼지의 비린내를 없애고 식탁에 올리는 일이 인간의 최고 요리기법이 아닐까요.

그것은 맛있는 ‘돼지국밥’의 조리 원리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신지식인상’을 받은 울산의 어느 돼지국밥 사장님도 돼지의 특이한 냄새를 제거하여 명품맛집으로 탄생시키지 않았습니까.

앞의 족발집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잘 숙성시켜 냄새를 뺐다 해도 1%의 냄새는 남아 있는 법. 그가 타고 가는 버스 안은 찜통더위 여름철이라 특이한 냄새가 10%로 증폭되어 발산한 것이죠. 그는 될 수 있으면 승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버스창문을 몇 번이나 열고 닫고 했었지요. 버스 승객들의 명코는 이렇게도 정확합니다. “얼마나 족발이 먹고 싶으면 포장을 해서 집으로 갖고 갈까. 어쩌면 그 사람의 가족 중에 누군가 임신한 여성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집에 도착하여 그는 조용히 백팩을 열었습니다.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지요. 너무 행복스러운 얼굴이었습니다. 딸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지만 그 묘한 웃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지금까지 탈 없이 자라게 해준 아버지의 고마움이 배어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딸은 잠시 눈물이 맺히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생각했지요. 친정에서 마음으로나마 편안하게 있고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 너의 길을 가라고….

태어나서 18개월 된 손자아이는 이제 아기용 만화영화 호빵맨을 보면서 그 호빵맨이 추는 춤을 따라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제대로 중심이 잡히지가 않아 엉거주춤히 손뼉을 치면서 춤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손자 녀석은 앞으로 자기의 환상세계를 꿈꾸면서 이 세상을 야심차게 살아가겠지요….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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