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단상] 한탕주의 인형뽑기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
[경찰단상] 한탕주의 인형뽑기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08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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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를 걷다보면 인형뽑기 전문점에서 인형 뽑기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예전에도 인형 뽑기는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뽑기 열풍’이란 소리가 나올 만큼 매장이 늘어나고 빠져드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2015년도에는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인형뽑기방이 전국적으로 21곳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수천 곳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뽑기방의 성행은 경제의 불황을 의미한다.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졌던 1990년대 일본의 거리에는 피규어와 인형을 뽑는 가게가 인기 만점이었다. 지금의 한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불황을 전하는 뉴스가 날마다 꼬리 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폐 한 장만 넣고 크레인을 몇 번 휘적휘적 움직인 다음 버튼을 누르면 나의 노력이 이 인형에게 간택 받을 것인지 아닌지 금세 결판이 난다. 학습, 가사, 직장… 어떤 노동이든 값싼 대가로 긴 시간 시달려야 하는 이들을 위해 준비된 가장 적당한 곳이 바로 뽑기방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각종 부작용이 잇따르면서 인형뽑기도 심각한 사회적 문제의 하나로 떠올랐다. 몸을 인형뽑기 통 안으로 우겨넣어 인형을 훔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인형뽑기 기계를 열어 현금을 훔치는 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평균 30번을 시도해야 1번 정도 인형을 뽑을 수 있는 기계의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 조이스틱을 조작해 인형을 싹쓸이해 가는 범죄까지 생기고 있다.

인형뽑기방 업주의 문제도 심각하다. 늦은 시간대에는 청소년 접근이 금지되는데도 매장에 ‘금지’ 문구를 적지 않아 청소년들이 밤늦게 담배를 사거나 탈선 장소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어떤 업주는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상품가격을 웃도는 인형을 경품으로 제공했다가 사행성을 조장한 혐의로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무인 전문점의 경우 업주가 상주하지 않아서 관리가 소홀해진 틈을 타 절도 범죄나 청소년 탈선이 자주 일어나고, 유인 전문점의 경우도 업주의 법률위반 행위가 다반사로 일어난다. 이처럼 인형뽑기는 많은 후유증을 낳고 있어 그 인기만큼 철저한 관리와 주의가 절실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인형뽑기에 재미삼아 빠져들었다가 한 달 용돈을 모두 날리거나 기계 앞에서 밤을 새우는 등의 증상이, 당첨확률과 성취감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도박이나 게임 중독 증상과 유사하다고 진단한다. 인형뽑기에 2천만원까지 써봤다는 가수 현진영은 한 언론매체 인터뷰에서 “눈을 감으면 천장에서 인형뽑기 집개가 내려오는 것 같고 환각 증상도 느껴 그 중독성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었다”고 실토한 적이 있다.

경찰은 인형뽑기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다. 청소년들이 밤 10시 이후에 나타나는 일은 없는지 순찰에 나서는 등 인형뽑기 전문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마다 ‘역대 최저’급의 취업률과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우리 사회에서는 적은 노력으로 큰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한탕주의’ 심리가 팽배해지고 있다. 어찌 보면 그러한 현상의 축소판이 인형뽑기의 성행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순한 스트레스 해소용 놀이가 범죄로 이어지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인형뽑기의 순수한 취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박태호 중부경찰서 반구파출소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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