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白鳳) 이야기
백봉(白鳳)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0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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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개체수가 가장 많은 종이 가금류인 닭이다. 닭의 성장 단계를 관찰하기 위해 지지난해 1월, 1년생 백봉(흰 깃의 오골계·silky) 자웅을 거금을 치르고 구입했다. 야외화장실 곁에 아담하게 닭장을 지었다.

2월 초순이 지나자 아직 어리다고 생각한 암탉이 시도 때도 없이 되알지게 걀걀걀거리고 수컷 앞에서 아장걸음으로 다녔다. 수컷은 본능으로 직감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후, 닭장의 묵은 분변을 치우려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순간 놀랐다. 알 2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온기를 느낄 수 없는 작은 계란의 반가움에 흥분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곧바로 알에다 1번, 2번이라고 연필로 적어놓았다. 그 후 알은 하루에 1개씩 쌓였다. 열 개가 모아진 것을 확인한 후 하루에 1개씩 모두 5개의 알을 빼어냈다. 혹시 모를 무정란을 염두에 두어서였다.

그렇게 다시 모인 10개의 알을 3월 11일부터 품기 시작했다. 달력에다 ‘4월 2일 부화예정일’이라고 적어놓고는 한동안 잊어버렸다. 4월 2일 새벽 4시경 화장실을 찾았을 때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가 들렸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보니 ‘삐삐삐’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문을 살며시 열고 둥우리에 손을 넣어보았다. 어미닭이 내 손등을 쪼았다. 이리저리 만져보니 손끝에 두 마리의 솜털이 느껴졌다. 아침이 밝았다. 첫 번째, 두 번째 부화 이후 세 번째 부화부터 시간이 길어졌다. 먼저 부화한 놈이 제법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경험을 살려 먼저 부화한 병아리를 따로 분리하여 보호했다. (암탉은 먼저 부화한 병아리를 대리고 이소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

하루가 지나자 다섯 마리가 부화했다. 계란 3개는 끝내 부화하지 못했다. 귀에 대고 흔들어보았더니 출렁거림이 느껴졌다. 깨어보니, 발생하지도 못한 무정란이었다. 6월 초순 그렇게 키운 것이 8주령이 되었다. 어미를 따라다니면서 제법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동안 낮에는 애비 닭과 함께했지만 밤이면 간이 케이지에 분리해 키우던 것을 드디어 애비와 합사시켰다.

그 날 밤, 갑자기 닭들이 울며 부산을 떨었다. 직감하고 쫓아나갔다. 시야에 작은 물체가 획 지나갔다. 닭장 문을 열고 보니 2마리가 이미 죽어 있었다. 족제비의 짓이었다. 아침이 밝자 서둘러 닭장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보수했다. 그 날 밤, 또 한 차례의 소동이 일어났다. 닭장을 열어 살펴보니 또 한 마리가 희생됐다. 찬찬히 살펴보니 닭장 밑으로 난 구멍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결과였다. 족제비는 머리가 작다. 머리만 들어가면 몸통이 들어갈 수 있다. 족제비는 고기보다 피를 좋아한다. 남은 네 마리가 귀염을 독차지할 무렵 지인이 와서 관찰하고는 잘 키워 보겠노라며 달라고 노래를 했다. 마음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분양했다. 한동안 어미닭은 새끼를 찾더니 며칠 지나자 다시 사랑하는 것이 관찰됐다.

두 번째 부화예정일은 8월 3일이었다. 앞으로 닥쳐올 겨울을 생각해서 일곱 개를 안겼다. 그 결과 네 개를 실패하고 세 마리를 건졌다. 닭이 자주 크게 우는 울음소리에서 건강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주령 즉 5개월이 지나 6개월째 접어들자 수컷은 성장 속도에 맞춰 성징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울음소리가 차차 굵어지면서 길어졌다. 또한 며느리발톱(距.spur=닭이나 꿩 등에서 성성숙(性成熟)에 달한 수컷의 다리 뒤쪽에 생기는 부도골(附蹠骨)의 돌기로 각질로 뒤덮인, 끝이 뾰족한 돌기를 말한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7개월 둘째 주 어느 날, 자식 닭은 어미에게 ‘엇부루기 뜸베질’을 시도했다. 그 행동을 곁에서 예리하게 지켜보던 애비 닭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내쫓았다. 혼비백산 달아난 자식 닭은 무안했는지 날갯짓을 두어 번 했다. 그 날 이후 아들을 바라보는 예리한 경계의 눈초리는 계속되고 있다. 아마도 애비 닭은 부쩍 성장해버린 아들 닭이 버거운 경쟁 상대가 된다고 느꼈는지 마주칠 때마다 날갯짓으로 혹은 우렁찬 울음소리로 위엄을 보였다. 그러나 젊음은 젊은 피다. 저만치서 두 날개를 반복하여 퍼덕이면서 농익지 않은 울음으로 자기과시를 하고 있다. 닭의 사회도 엄연히 위계질서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장닭(수탉)은 일반적으로 자기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크게 울기, 먹이 알리기, 암탉 가까이 접근하기, 서열 낮은 수탉 쫓기 등 위엄행동을 간헐적으로 반복한다.

어미닭은 삼동 겨울에 애비 닭의 접근을 애써 외면하더니 2월 중순이 되자 골골골 알 서는 소리를 냈다. 어느 날 애비 닭의 구애를 안정된 자세로 받아들였다. 5일쯤 뒤 어미닭은 큰소리로 울었다. 당황한 애비 닭이 달려가더니 같이 울었다. 경험이 있어 닭장 문을 열고 살펴보니 다져진 지푸라기 위에 갖 낳은 뽀얀 알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만져보니 잉태된 고귀한 생명이 온기로 전해왔다.

애비 닭과 아들 닭이 경쟁관계로 발전된 이후 따로 케이지를 마련해 줬다. 아들 닭의 단조롭고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의 큰 울음소리와 잦은 횟수에 비하면, 애비 닭의 울음소리는 여유와 노련함으로 구수하게 느껴지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수년 동안 관찰한 결과 성숙한 개체는 1년에 2번 번식하며, 포란 21여일에 부화한다. 16주령부터 서서히 독립을 시도하며, 7개월이 되면 수컷은 사랑을 하고 암컷은 알을 낳으며 성체가 된다. ‘아하! 그렇구나!’, ‘유레카(Eureka!)’를 외치는 것은 노력한 사람만이 외치는 진실한 소리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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