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산책] What can I do for you?
[대학가 산책] What can I do for you?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3.02 20: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선생님을 뵈러 교무실에 가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교무실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나의 부족함에 대해 사죄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수님의 연구실에 가는 일은 늘 약간의 스트레스를 수반했으며, 강의 중에는 가능한 뒷자리에 앉고 교수님들과 눈빛을 마주치는 일은 꺼렸다.

이제 3월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교수라는 직업을 택한 필자에게는 신입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자 노력한다. 지난 체육대회 때는 대낮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노래방 기계 앞에서 태진아 님의 ‘동반자’ 노래를 열창(?)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학생들은 교수라는 존재는 다가서기 어려운 존재로 느끼는 것 같다. 올해 필자의 목표는 연구실에 게임기기를 설치해 학생들이 부담 없이 와서 오락을 즐기고 가도록 하는 것인데, 흥행이 잘 될지는 모르겠다.

대략 15년 정도 전의 일이다. 필자는 석사학위를 미국에서 받았는데, 처음 미국에 도착 시 강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해 무척 고생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주변에 물어보아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교수님한테 가서 여쭈어 보자니 ‘너는 그것도 이해를 못하니?’라는 핀잔을 들을 것 같고, 혹은 한국 학생의 평균 지적 수준을 내가 깎아내릴 것 같고 등등.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큰마음을 먹고 해당 과목 교수님 방에 노크하고 들어가 앉으니, Jose A. Ventura 교수님께서 하신 첫 마디가 “What can I do for you?”였다. 떠듬떠듬 영어로 변명을 좀 하다가 강의 내용의 특정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였고, 이때 Ventura 교수님이 답해주신 말씀은 지금도 생생하다.

“네가 처음부터 모두 이해가 되면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다. 이해가 안 되니 강의를 듣는 것이며, 네가 이해가 잘 안 되었다면 내가 잘못 가르친 것이다.”

무언가 교수와 학생의 역할이 바뀐(?) 느낌을 받았고, 이런 것이 문화적인 충격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하여 Ventura 교수님과 인연이 시작되었고(논문 수준에 대한 욕심도 높은 분이셔서 필자의 연구내용이 부족할 경우에는 혼도 많이 났다), 그 인연은 아직도 이어져 작년에는 좋은 논문을 같이 출판하기도 하였다.

시대가 변하면서 과거에 정립되었던 관계들도 점차 변해야 하는 것 같다. 사실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회의 변화보다는 이러한 역할 관계의 재정립이 오히려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필자도 학생들에게 교수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해 주고자 나름대로(?) 노력 중이나 아직 만족스럽지는 못한 것 같다.

언론에서 대선주자들의 검증이니, 요건이니 하면서 그들이 살아온 삶을 뒤지고, 나름의 잣대로 너는 되고 너는 안 되고 등의 편 가르기가 심하다. 심지어 너는 이러이러한 것도 모르니,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한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에는 세종대왕도 그러한 요건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세종대왕이 대선주자 검증 TV 프로에 나와서 부친(태종)의 잘못 때문에 추궁당하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가?

필자가 생각하는 지도자의 요건은 단순하다. 업무를 지시하는 지도자에서 자원(예산 및 시간)을 확보해 주는 지도자는 어떨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보고 과정에서 2단계를 넘어가는 지도자(혹은 경영자)는 해당 업무에 대해 올바로 파악하기가 힘들다. 무엇이 그 사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그 사업이 완성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 또는 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들어간 자원(예산 및 노력) 대비 성과가 과연 가치 있는 것인지……. 이러한 것들은 해당 업무를 기획한 당사자 말고는 분석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사회구조는 지도자가 이러한 것들을 알고서 지시를 내린다고 가정한다.

그래서 늘 지도자의 업무 지시는 추상적이며 변동이 심할 수밖에 없다. 전력을 기울여라, 빈틈없이 수행하라. 이건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등등. 그리고 지시한 내용을 업무일지에 열심히 받아 적어야 한다. 그리고는 그 추상적인 지시사항에 대해 어떻게 잘 추진했는지를 수치상으로 보여 드려야 한다(그러고 보니 지시는 추상적으로 내리고 성과는 늘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는가?).

이제는 그 역할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사업에 대한 기획·계획·성과평가는 실무부서에서 자체적으로 수행하고, 그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자원의 확보는 지도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면 회의석상에서 지도자는 프롬프터를 보고 읽는 것이 아니라 업무일지를 꼼꼼히 작성하는 것이 주된 일이 될 것이다.

실현은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한마디만 지금 당신의 방문을 노크하는 이들에게 지도자(혹은 경영자)들이 하는 것은 어떨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What can I do for you)?”

<안남수 울산과학대학교 안전및산업경영과 조교수>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