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기에 풀어야 할 어른들의 숙제
신학기에 풀어야 할 어른들의 숙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2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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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신학기가 되면 가끔씩 생각나는 학생 한 명이 있다. 2012년도에 학교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경찰청에서 학교전담경찰관제도를 시행하게 되었는데, 당시 학교전담경찰관 업무를 하면서 만났던 고등학생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동네 친구에게 용돈을 빼앗긴 것을 시작으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같은 학생에게 끊임없이 얻어맞거나 용돈을 빼앗기고, 숙제 심부름에다 가방까지 들어주는 등 온갖 학교폭력에 시달려 온 학생이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주변 친구들이나 선생님, 심지어 부모님까지도 그 학생이 그런 학교폭력의 고통을 받으며 학교생활을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가해학생이 교묘하게 괴롭힌 탓도 있었지만 피해학생이 그런 사실을 주변에 전혀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왜 그렇게 수년 동안 폭력 피해를 당하면서 다른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 또는 경찰에 알리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 학생의 대답은 “처음에는 주변에 알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에 나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가해학생과 힘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폭력 피해를 당하면서 이야기하지 못하고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학생들이 종종 있다. 이런 학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폭력피해 사실을 이야기하면 주변 친구들이 오히려 자기 잘못으로 생각할까봐, 또 다른 따돌림을 당할까봐, 또는 상황이 더 커질까봐 얘기하질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점은 이런 피해학생이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는 경우이다. 주변 친구나 부모님에게 용기를 내어 이야기해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기에 더더욱 말을 못하게 되고, 또 다른 이야기 상대를 찾지 못해 혼자 고민하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경우 폭력의 피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되며 심각한 상황까지 가게 될 수도 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해서 경찰에서는 117 신고전화와 신고요령에 대하여 많은 홍보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작은 관심이라도 가지지 않으면 그 피해를 발견하기가 어렵고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제 신학기를 맞아 대다수의 학생들이 새로운 친구, 선생님을 만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로 달려가겠지만 오히려 개학이 두렵고, 친구 만나기가 두려운 학생이 주변에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행복한 학교생활을 보장해 줄 수는 없을까? 한 명이라도 학교폭력 피해로 고민하는 학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먼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치유하고 또 다른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것은 신학기를 맞은 어른들의 공통된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진섭 경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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