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끝은 어디까지인가?
우리의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끝은 어디까지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2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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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이란 말은 사소한 일로 불필요하게 다투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서 장자(莊子)의 칙양편(則陽篇)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위(魏)나라 혜왕(惠王)과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서로 동맹을 맺고 있었는데 제의 위왕이 그 맹약을 깨게 되자 위의 혜왕은 제의 위왕을 없애기 위해 자객을 보내는 문제로 신하들을 모아놓고 의논을 시작했다. 당시 신하들 사이에는 찬성파와 반대파끼리 의견이 양분되어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내홍만 거듭했다. 그때 나라 안에서 학문과 식견이 높은 현사 대진인(戴晉人)을 초청해서 그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혜왕을 만나게 된 대진인이 “세상에는 달팽이란 것이 있는데 폐하께서는 아십니까”라고 묻자 혜왕은 “그야 알다 마다”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자 대진인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 달팽이는 뿔이 두 개가 나 있는데, 왼쪽 뿔에는 촉(觸)씨라는 씨족이 살고 오른쪽 뿔에는 만(蠻)씨라는 씨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두 집안에서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져 그 싸움이 무려 보름간이나 계속되었고, 두 집안의 피해는 막대하였습니다.” 이 말 끝에 혜왕은 “무슨 그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이에 대진인이 “그러면 폐하께서는 우리가 사는 이 우주에는 끝이 있다고 보십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혜왕과 대진인은 이 문제로 계속 말을 주고받았다. “그야 물론 끝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 넓은 우주 속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양(梁)이란 도성이 있으며 이 양에 임금님이 계시는데, 이를 넓은 우주에 비교한다면 달팽이 머리 위에 존재하는 촉씨와 만씨가 폐하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서 말문이 막힌 혜왕은 자신의 계획을 끝내 거두고 말았다.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이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로, 사소한 일로 인해 필요 없는 분쟁을 일으켜 주변을 어지럽히는 것을 경계하여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서 보자. 대통령의 국정 농단으로 탄핵 절차가 법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마당에 탄핵의 결행과 취소를 놓고 서로의 의견이 양분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촛불을 들고 다른 쪽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선생께서 중국의 여러 문적(文籍)에서 우리 민족성에 대해 언급한 기록을 발췌(拔萃)한 것이 있다. 이 기록에서는 고대의 우리 민족을 ‘신체가 석대(碩大)해서 대인이고 성정(性情)이 성실하여 선인(善人)이며 도덕이 정대(正大)함에 군자(군子)이고, 장수(長壽)하고 강한 쇠뇌를 잘 다루는 이(夷) 즉 궁대인(弓大人)이라 했다. 그런데 이 같은 고대의 우리 민족성이 삼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변화하게 된다.

삼국유사의 ‘황룡사 9층 목탑기’에 보면,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신라의 자장법사(慈藏法師)에게 이르기를 “너의 나라는 산천이 험준하여 사람의 성품이 추패(?悖)하고 사견(邪見)을 많이 믿는다. 그래서 때때로 천신이 재앙을 내리니 너희 나라에도 훌륭한 스님으로 하여금 불도를 만백성에게 전하게 하여 국태민안을 기하도록 하라.”고 했다. 그 후 고려시대에 이르러 불교도참파와 유학파 간의 대립으로 일어난 묘청의 난에서는 유학파가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고려 말에 이르러 유학을 근본으로 하는 조선이 탄생하게 되자 학문의 인식적 차이를 두고 파당이 생겨 분쟁을 일삼다가 끝내 민족의 대수난을 당하고 마침내 나라의 주권마저 왜구에게 내주고 말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문수보살이 경계했던 말이 옳은 말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다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소한 갈등을 극단적으로만 몰아가는 데 우리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생각 역시 차이가 있기 마련이므로 이를 민주적으로 이끌어만 간다면 그것은 번영과 발전의 계기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단의 경쟁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사욕이자 모두가 함께 몰락하는 길이란 것을 깊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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