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산업은 울산사람의 손으로 키워 나가야”
“울산의 산업은 울산사람의 손으로 키워 나가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2.21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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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해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장
-센터 존재이유는 ‘창업·혁신·취업 허브’

울산대학교 제44회 졸업식이 열리던 날(2.17) 오후 이 캠퍼스 5호관 건물을 찾아들었다. 지은 지 오래된 여느 공대 건물과는 달리 5호관은 외양이 의외로 환한 느낌이었다. 2층 전체를 차지한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개소(2015.7.15)를 앞두고 산뜻하게 리모델링한 덕분인 것 같았다. (울산대 건물에 부여된 숫자는 지은 순서를 나타낸다.)

내방객이 누구인지를 알아차린 권영해 센터장(63)이 큐레이터를 자임하고 나섰다. 화상(畵像)회의가 가능한 대회의실부터 안내했다. “서울의 ‘마루 180’(강남구 역삼로 180번지의 창업지원 공간) 관계자들과 화상회의도 하고 의견교환도 하는 공간이지요.” 말씀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울산서 몇 안 되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싶었다.

마루존, 3D테크샵, 고용존, 원스톱존, 사무실도 차례로 선보였다. 여기서 ‘마루’는 ‘꼭대기’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전국 19개 창조경제혁신센터 모두 이 낱말을 즐겨 쓰는 것 같았다. ‘창조마루’, ‘마루존’, ‘융합마루’처럼….

여하간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존재이유는 ‘창업, 혁신, 취업을 위한 허브(hub) 역할’에 있다. ‘허브’는 연결고리, 징검다리를 의미한다.

권 센터장은 ‘창조경제를 실현하는 울산기업들의 2016년 활동’을 돌아보는 보고서에서 울산센터를 이렇게 소개했다. “창업의 허브, 지역혁신의 거점, 고용창출의 허브 역할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근무자 33명… 절반이 파견지원 인력

울산센터의 근무인원은 권 센터장을 포함해 총 33명. 16명은 자체선발 인력이지만 나머지 17명은 파견지원 인력이라 했다. 울산시와 울산센터 전담기업인 현대중공업, 고용 촉진을 돕는 산업인력관리공단, ‘스마트팩토리’를 진행하는 삼성그룹, 법률 자문 서비스를 베푸는 법무부(변호사), 자금지원 창구인 신용보증기금에 이르기까지 제법 다양한 편이다. 전원 ‘원스톱 서비스’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창업을 희망하는 기업들이 입주할 보육공간은 신복로터리 근처 벤처기업빌딩에 30개 남짓 따로 장만해 두었다.

울산센터는 설립목적에 공감하는 ‘(센터의) 가족기업’ 중에서 입주를 원하는 기업에게 분기별 심사를 거쳐 보육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최초의 입주 기간은 6개월이지만 심사를 통과하면 3개월을 더 연장할 수 있다. 다만 ‘길어야 1년간’이라는 단서가 따라붙는다. 한 번 들어가는 데 경쟁률이 30대 1 가까운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10개 정도가 비어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권영해 센터장의 집무실. 그는 요구하는 자료를 성의껏 제공하려 애썼다. 울산센터의 예산 편성, 핵심성과 지표, 목표가 들어있는 ‘2017년 울산센터 중점 운영방침’이 시야에 잡혔다. 올해 울산센터의 연간 예산은 약 30억원. 국비 60%, 시비 40%로 채워진다.

연매출 100억 기업 배출이 올해의 꿈

핵심성과 지표는 ‘4-STAR 만들기’다.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만들어 울산지역의 창업 생태계를 확립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4-STAR란 △매출 100억 기업을 1개라도 배출하는 ‘STAR Start-up’ △4개의 창업지원 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STAR-Program’ △울산 스타트업 육성은 울산사람 손으로 하겠다는 ‘STAR investor’ △전 직원의 엑셀러레이팅 기능 수행능력 강화로 장관급 이상의 표창을 받는 직원을 길러내겠다는 ‘STAR Staff’가 그것이다. 그리고 정부 지원을 받는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 중에서 7위 이상의 실적을 올리겠다는 것이 올해의 지상목표다.

‘연간 매출 100억 기업’은 울산센터의 꿈이다. 창업 초기의 기업들로서는 ‘연간 매출 10억’ 달성도 어려운 게 현실이겠지만 그래도 과감히 도전장을 던져보겠다는 것이다. 후보 기업이 최소한 셋은 있다는 게 권 센터장의 귀띔이다.



-‘관 주도는 실패’ 소신… 민간자율 강조

얼마 전(1.18) ‘울산 창업은 울산 사람 손으로’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문이 본지에 실린 적이 있다. 권영해 센터장의 소신이 담긴 글이었다. 그는 기고문 첫머리에 경제토론회에서 만난 어느 중견기업인의 말을 인용했다.

그 기업인은 “이제 전통적인 제조업만으로는 미래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ICT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지론을 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센터장은 그 기업인이 벤처투자회사를 만들어 청년창업자들을 도와 새로운 산업의 싹을 찾아 키워내고 있으며, 울산센터는 물론 UNIST와도 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적 원리를 바탕으로 한 자생적 생태계의 조성’을 강조했다. “그러한 방법만이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새로운 산업의 필요성을 자각한 개인이나 기업이 창업 자금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창업기업을 적극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들은 지난해 3월 하순 울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제2대 센터장을 맡은 이후 1년 반 동안 느꼈던 스스로의 체험적 정서에서 우러난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 도중 그가 한 발언의 키워드는 ‘민간(民間) 주도의 운영’, 바꾸어 말해 ‘관치(官治)의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사실 “기업은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에서 시작된 그의 체험적 정서는 “관이 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민간에게 맡겨야 합니다.”, “나랏돈을 받아서 성공하기는 힘듭니다.”, “정부 돈이 가끔 사람을 망치기도 합니다.”라는 말들로 이어졌다. 자금줄(창업지원금) 제공자인 관(官) 대신 민(民)을 더 높게 평가하고 ‘민간 벤처투자회사’를 대안으로 지목한 것이다.

실제로 권영해 센터장의 수첩에는 진정성 있고 참신한 사고를 지닌 ‘민간 벤처투자자’가 2명이나 적혀 있다. UNIST와도 손잡았다는 ‘(주)선보엔젤파트너스’의 최금식 회장과 ‘한울투자조합’의 고익주 회장이 바로 그분들. 최 회장은 조선기자재 납품 업체의 대표였고, 고 회장은 자동차 납품 업체의 대표였다는 것이 권 센터장의 전언이다. 든든한 지원군을 만난 셈이다.



-“울산에도 실리콘밸리 만들었으면”

그러나 창업 지원을 위한 제반 여건이 냉혹한 것은 현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른바 ‘창조경제도시’의 양극화 현상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

“우리 울산만 해도 서울 판교나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보다 많이 뒤쳐져 있지요. 많지 않은 인구, 적은 대학 수, 취업이 쉬운 지역의 특성 등으로 창업 희망자가 적을 수밖에 없었지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에 익숙하다 보니 기업을 혁신해서 기존 사업을 획기적으로 확장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별로 없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울산센터가 뿌리 내리는 데도 한동안 애를 먹었다. 울산센터의 출범이 다른 지방보다 늦은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지난해에는 울산센터 주관으로 지역의 대학생과 젊은이들을 이끌고 서울의 판교 테크노밸리를 3번이나 다녀왔다. 한 수 배우도록 하겠다는 배려에서였다. “서울서는 거의 매주 창업 아이템 발표회나 투자설명회가 열리는데 우린 그러지 못하지 않습니까?”

권 센터장은 그 정도로 울산이란 지역과 지역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 그의 또 다른 말 속에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울산의 산업은 울산 사람 손으로 키워나가야 합니다.” “울산에서는 아이디어만 좋으면 돈 걱정 없이도 창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게 해야 안 되겠습니까?”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창업자들이 몰려오는 울산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울산에 미래가 있습니다.” “울산에도 실리콘밸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

그런 각오와 다짐은 그의 사명감에 불을 붙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미래 산업의 싹을 키우는 것이 우리 미션의 70%입니다. 울산 미래 산업의 싹, 미약하나마 제대로 키워 나갈 것입니다.”



-“3만불 시대 진입 못한 건 모방경제 탓”

권 센터장은 지역경제뿐 아니라 나라경제에 대한 걱정도 깊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중화학공업이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2006년 2만 불 시대 진입 후로는 12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2만 불 시대에 들어서면 5∼6년 혹은 7∼8년 후면 3만 불 시대를 구가하는 데 말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그 이유를’ 패스트 팔로워십(Fast Followership)’에서 찾으려 했다. 선진국의 것을 베껴서 따라잡는 방식으로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석유화학이든 어떤 산업이든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원천기술의 벽’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러한 현상을 ‘모방경제의 한계’, ‘커닝경제의 한계’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아을 제시한다. “따라가기, 따라잡기보다 창의성을 북돋아주는 풍토를 일구어 나가야 합니다.”

그는 ‘창조경제’란 용어를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순수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그가 생각하는 창조경제의 이념도 앞서와 같은 경제철학적 배경 하에 배태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대기업은 적은 비용으로 매출을 늘리려다 보니 고용 창출에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대기업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나라 경제의 성장은 그동안 재벌기업이 주도해 왔지만 앞으로는 창의적 아이디어로 새로운 산업을 많이 일으켜야 한다”면서 ‘창의적 벤처·중소기업의 육성’에 눈길 돌릴 것을 주문했다.



-35년간 한솥밥 먹은 ‘현대중공업 맨’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울산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남들이 3∼4년 걸리는 박사학위 과정을 그는 10년이나 걸려서야 마칠 수 있었다. 중간에 쿠웨이트와 중국에서 해외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북대 졸업반 재학 중이던 1980년도 10월에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그 해부터 직장을 그만둔 2015년까지 35년간 오직 한솥밥만 먹은 ‘현대중공업 맨’이다. 현대중공업에서의 마지막 직함은 ‘서열 10위권’에 든다는 ‘인사총괄 전무’였다. 그 이전에도 그는 거의 요직만 거쳤다.

원가담당, 기획담당, 감사책임, 해외현장 근무(사우디, 쿠웨이트), 해외법인 근무(불가리아), 중국 영업, 본사 인사총괄, 안전총괄에 이르기까지…. 그래도 “운이 좋아서였다”고 겸손해 한다.

주소지는 남구 무거동이지만 주말이면 열 일 제치고 노모가 계시는 대구로 향한다. 주일이면 장로 직분을 지니고 있는 대구 영남제일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독실한 신앙인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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