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모든 곳이 섬
우리 사는 모든 곳이 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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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다. 제주는 렌트 아니면 언제나 이름난 명소를 차로 다니는 것을 당연히 여기지만 이번에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걸어서 다녔다. 제주의 풍광은 관광객을 위해 잘 꾸며진 장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쳐진 밀감밭, 마을마다 동수로 자리잡은 거목인 팽나무를 올려다보는 것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빨간 열매를 너무도 선명하게 빼곡히 단 ‘먼나무’는 울산대공원이나 일부 구간 가로수로 심겨진 것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 곳곳에 자라는 ‘멀구슬나무’는 미색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이곳이 아열대성 기후대인, 전혀 다른 신비로운 땅이구나 하는 걸 연신 느끼게 만들었다. 한림원의 소철, 파초, 야자수, 파파야 등 아열대식물원도 이색적이었지만 ‘문도지오름’을 오르며 봤던 드넓은 ‘숲의 바다’도 인상 깊었다.

하지만 큰 생각 없이 들렀던 ‘곶자왈 환상숲’은 참 감동적이었다. 곶자왈은 ‘곶’+‘자왈’이 서로 붙은 합성어다. ‘곶’은 울창한 나무숲을 말하고 ‘자왈’은 덤불을 말한다. 자왈이 ‘돌너덜’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가시)덤불이 많아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땅을 자왈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따로 쓰이던 ‘곶’과 ‘자왈’은 합쳐져 ‘곶자왈’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한다. 점성 짙은 현무암 지대에는 요철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고 빗물이 잘 스며들어 언제나 습기가 있고 온도가 일정해서 다양한 식물이 어울려 자란다. 한대식물의 남방한계이자 열대식물의 북방한계를 이루는 식물이 같이 자라 약 750종이 넘는 식물이 자생하며 계속 희귀식물 및 미기록종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곶자왈은 흙은 거의 없고 크고 작은 현무암 돌조각들이 뒤엉켜 자라고 있어 아무리 많은 비가 와도 지하로 스며들어가 생명수인 지하수를 만든다. 또한 접근이 어려워 버려진 땅이어서 제주도 허파 노릇을 오랫동안 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곶자왈의 32% 정도가 골프장, 관광시설, 택지개발로 훼손되었다고 한다.

해설사가 들려준 곶자왈숲 순환은 아주 재미있었다. 버려진 현무암 너덜지에 먼저 햇빛을 좋아하는 덤불이 자리를 잡는다. 덩굴이 무성하면 가축도 들어가지 못하는 버려진 땅이 된다. 그러나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 그 중간 중간에서 음지에 강한 상록수 계통이 올라온다. 녹나무, 개가시나무 등등…. 이들이 자라나면 짙은 음지를 만들고 덤불식물들은 고사하게 된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 숲에 들어가 잘 자란 나무들을 목재로 잘라 나오게 된다. 이 때 뿌리는 그대로고 윗둥치만 잘린 나무들은 수백 년 괴목처럼 자라게 된다. 다시 숲에 햇살이 들어오면 가시덤불들이 자라게 되고 한동안 사람이나 가축이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마치 사람이 개입된 순환이 휴식년제처럼 곶자왈이 살아날 시간을 주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 버려진 땅이 헐값으로 사들인 개발업자들에게 수십 배 개발이득을 남기는 땅이 되었고 한동안 파괴가 이뤄지다가 이제야 겨우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도 그 논란의 씨앗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했다. 2월 겨울인데도 상록의 양치식물이 자라고 상록 활엽수들이 무성한 곳이었다. 무성한 숲을 뚫고 들어오는 긴 빛줄기는 말 그대로 ‘환상숲’이었다.

오래 전 사둔 땅을, 아버지 몸이 아프면서 본인 소일거리로 통행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 일에 동참하게 된 따님. ‘(사)곶자왈사람들’에서 숲해설사로 곶자왈 살리기 일을 해 온 아내, 따님이 그 일을 맡게 되자 환상의 숲은 생기를 되찾았고 멀리 서울에서 그 방송을 본 남자분이 찾아와 그 따님과 결혼까지 하고 이 일을 거들게 되었다. ‘아버지숲’에서 ‘가족숲’으로 돌아온 곶자왈 공원이었다. 온 가족이 다 같이 제주 곶자왈의 가치를 설명하고 제주환경 지킴이 일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이 곶자왈의 숲이 만드는 역사처럼 사람, 가족 일도 일관되게 흐르는 서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도시에 떠도는, 가꾸고 보살피는 땅을 가지지 못한 우리네 삶보다는 가꿀 수 있는 자기 터전을 가진다는 것은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싶었다.

제주도가 섬이지만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도 섬이고 우리 울산시도 섬이다. 제주도가 넘치는 관광객으로 쓰레기 매립 한도를 넘어섰듯이 우리 사는 곳곳이 과잉소비로 인한 쓰레기나 오염문제가 심각하지만 그 문제를 그 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섬인 것이다. 성장과 생산보다는 폐기물, 오염을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태평양 인간이 거의 접근하지 못한 해구에서 갑각류를 조사했더니 중국 황하 새우보다 더 심한 독극물이 쌓여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보다 전혀 안 보이는 곳부터 더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더 피할 곳이 없는 섬에 살고 있는 것이다. 핵쓰레기, 산업폐기물, 물과 공기오염을 더 이상 막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인데 우리는 얼마나 챙기고 있는지…. 지구환경문제 앞에 모든 산업성장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봐야할 것이라 여긴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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