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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현실 도외시한 서울고법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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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2.16  21:3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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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고법에서는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제기했던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에 대한 판결이 있었다. 이날 판결에서 법원은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정에 대한 도급 및 부품사로부터 도급받은 2차 하도급 업체 근로자까지도 원청사 근로자로 간주한다고 판시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으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판결 후 사용자 측에서는 “한국 제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체제를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족쇄를 하나 더 채우면서 더 빨리 뛰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게 뭐 있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모 중견 제조업체 대표의 말은 이번 판결이 미칠 파장이 적잖을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똑같은 사안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선과 악, 정(正)과 부(否)로 나뉘는 게 세상사다. 사내하청 운용에 대한 시각도 그렇다. 우리나라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일본과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대다수는 자국 기업(특히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고용유연성에 관한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 예로 세계최고 제조업 경쟁력을 가진 독일의 경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임시 노동력을 각 지자체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을 정도다. 일본 역시 제조업까지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한국은 제조업에 대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합법적인 인력운용 방법이 한국에서는 되레 불법으로 간주돼 사업자에게 원죄를 지게 하고 있다. 한때 “규제 철폐”가 정치·사회의 화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 후 차량 운행을 방해하던 전봇대 몇 개를 뽑았다고 호들갑을 짓기도 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규제강박증이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렸는가를 반증하는 에피소드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의 산업활성화를 가로막는 규제들이 수두룩하다.

우려되는 것은 또 있다. 이번 판결내용을 행여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불법 집단행동을 허용하는 면죄부로 곡해하지 않을까 해서다. 이런 우려를 하는 것은 지난 2012년 최모씨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당사자는 물론, 주변 근로자들의 불법 집단행위를 숱하게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서울고법 판결 하루 전인 9일 울산지법은 현대차 사내하도급과 관련해 불법행동을 한 당사자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엄중히 물은 것은 불법행위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이는 향후 또 다시 있을지 모를 유사행동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서울고법 판결을 빌미로 불법행위가 재현된다면 애써 확보한 권리마저 날려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로크로테스’라는 괴팍한 신이 있었다. 그는 걸핏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자기 소굴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침대 하나가 있었다. 잡아 온 사람을 침대에 눕힌다. 그 다음이 문제다. 침대보다 작은 사람이면 늘여서 죽이고, 침대보다 큰 사람은 잘라서 죽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얘기다. 하긴 “악법도 법이다”며 의연하게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도 있었다. 그러나 침대 하나에 모든 사람을 맞추고자 했던 프로크로테스는 모든 상황을 자기 기준에만 맞추려는 것을 비판할 때 인용되면서 고약한 신으로 두고두고 비판받고 있다.

이번 판결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불변의 절대기준이 아닐 수도 있다. 정치와 함께 경제마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내려진 판결이 우리 경제, 특히 제조업의 성장·발전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규제’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주복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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