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제5차 카렌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독자기고]제5차 카렌 봉사활동을 다녀와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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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새해를 맞아 누군가는 신년 첫 해를 보러 가느라 들떠 있었지만 나는 그 첫 달을 뭔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국제청년봉사단에서 가는 태국 카렌 봉사활동이었다. (국제청년봉사단은 대학생을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단체이다.) 그저 포스터를 보았을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렸고, 두근거리면서 신청서를 작성했다.

나는 새해의 시작을 카렌 봉사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카렌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 현장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그곳은 지금 어떠한 상황인지, 우리가 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먼저 태국의 카렌에 대해 알아보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던 영국은 카렌족과 함께 치열한 전투를 벌여 일본군을 물리쳤고, 영국은 승전의 대가로 카렌족의 독립을 약속한다. 하지만 일본군 퇴각 이후의 국제정치적 상황 때문에 영국은 이 약속을 어기고 버마(현재의 미얀마) 단일정부의 독립만 허용한다. 끝내 강대국에 버림받은 민족으로 남게 된 카렌족은 수천 년간의 보금자리에 독립국가 세우기를 열망하면서 미얀마와 50년이 넘는 기나긴 독립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했고, 베풀기보다 배우러 간다는 자세를 갖기로 마음먹었다. 준비기간을 보내고 우리 일행은 카렌의 킬러슈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동물과 자연과 사람이 하나로 어우러진 현장이었다. 주위는 높고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고, 그 속에는 나무로 지은 학교와 집들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는 아이들보다 소와 돼지, 닭이 더 많았고, 운동장이라기보다 넓은 축사와도 같았다.

아름다운 자연풍경에 넋을 놓기도 잠시, 우리는 바로 짐을 풀었다. 우리가 잠잘 곳 역시 나무로 지은 집이었으나 다행히 모기장은 쳐져 있었다. 그곳 주민들은 밤에는 춥고 낮에는 더워 일교차가 심한 카렌의 저녁을 무사히 날 수 있도록 담요도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것을 선물할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곧바로 파악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그곳 교장선생님의 허락을 받아 우리는 학교 시간표에 따라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통역을 해주는 카렌 친구에게 우리가 가지고 온 영어로 된 최고의 것을 전했고 아이들은 팔짱을 낀 채 얘기를 들어주었다. 얘기할 때 팔짱을 끼면 한국에서는 상대방을 얕본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카렌에서는 그 사람에 대한 존경과 존중의 표시라고 해서 놀랐다. 카렌 봉사활동은 이런 얘기를 듣는 가운데 시작되었다.

우리는 색연필과 크레용으로 그림과 색칠놀이를 아이들과 같이 즐겼고, 뙈약볕 아래에서도 아이들과 같이 뛰어놀고 춤과 율동도 배우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땀을 한 바가지나 흘리고 나서 땀을 씻으러 간 곳은 강이었다. 우리가 머문 곳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강 역시 사람들의 것만은 아니었다. 씻는 동안 소가 지나가기도 했고 차가 강을 건너가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마을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태연히 몸을 씻었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 물놀이와 씻기를 동시에 즐겼다.

우리는 시멘트 작업도 도와주었다. 학교건물이 나무인데다 학생들이 점점 많아지다 보니 다른 시설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엉성하게 삽질할 때도, 지쳐서 앉아있을 때도, 무거운 것을 나를 때도, 모두가 처음 하는 일이고 뜨거운 햇볕까지 내리쬐어 지칠 만도 했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 군말 없이 일을 마무리했다.

우리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한국말도 가르치고 작업을 하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이 어느덧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돌아가는 날은 왠지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날은 잠을 잘 때 머리맡에서 울어대던 닭들도 더욱더 세차게 우는 것 같았고, 아이들도 우리를 따라 울었다. 같이 지내면서 정이 들었으니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떠날 때 맨발로 마중 나온 아이들에게 우리가 더 이상 해줄 것은 없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카렌 봉사활동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우리의 시선으로 볼 때 한없이 가난하고 말도 안 되는 생활 현장이었지만 우리는 오히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 카렌 사람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이예원 서울종합예술학교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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