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편지] 아버지의 섬 그리고 동백 이야기
[길 위의 편지] 아버지의 섬 그리고 동백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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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데 가고 셋만 왔노? 오늘 아빠랑 배도 타고 좋겠네.”

낯선 동네, 반겨주시는 아주머니들 사이로 아빠의 옷자락을 잡은 아이 셋이 숫기 없이 눈동자만 굴리고 있다. 지금 기억으로는 엄마는 일을 하시는 날이었고, 지서에서 순경으로 계시던 아버지의 근무지 앞에 있던 섬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일곱 살쯤이었을까. 두터운 진분홍 자켓에 하얀 스타킹을 신고 한껏 멋을 부렸던 나와, 남동생 그리고 언니, 그렇게 세 남매가 키 순서대로 배 앞에 서 있는 사진 한 장. 교대와 파견근무로 집에 오시는 날이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로 늘 바쁘셨던 아버지, 한나절의 추억이지만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이기도 했고 한 번도 배를 타 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날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선명하기만 하다.

십 분 정도 걸렸을까. 배를 타고 들어간 섬에는 바다 다슬기며 번데기, 홍합 같은 음식과 풍선, 나팔,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파는 이동식 리어카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시끌벅적한 그 시절 유원지에서의 풍경은 비슷했다. 춘도섬, 혹은 ‘목도‘ 라고 불렸던 그 섬은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고도 사람들은 불렀다. 검고 굵은 나무에 반짝이는 잎,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얼굴을 내민 노란 술을 감싸던 붉은 꽃송이. 게다가 하나도 상하지 않은 채 온전히 무더기로 바닥에 떨어져 있던 꽃송이들은 어린 내 눈에 신기하기만 했다. 핏빛 선연히 살아있는 꽃을 주워 코에 가까이 대었을 테지. 그런데 향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춘도섬, 목도는 안타깝게도 천연기념물인 상록수림을 보호한다는 이유로 1992년부터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이 됐다. 20년간 출입을 통제했다가 다시 10년을 연장했으니 2021년 12월31일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섬, 그 유년의 섬이 궁금해 수십 년 만에 멀리서나마 한 번 볼까 해서 간 적이 있었다. 기억 속의 크고 신비했던 붉은 꽃 섬은 한 발짝만 바다로 나서면 닿을 듯 가까이 떠 있었지만 여전히 디딜 수는 없는 섬이었다.

그 기억 한 조각 쥐고 다시 섬이 그리워 배를 타기로 했다. 뭍에서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동백섬 거제의 지심도, 지금쯤 한창일 붉은 섬이 나를 유년 시절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유명세에 휴일까지 겹쳐 외국인들과 가족단위, 백여 명 정원인 배 안이 가득 찼다. 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차례로 내리고 출렁이는 파도에 겁먹은 아이들을 번쩍 안아 올리는 한 아저씨,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 옆으로 관광을 마치고 뭍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줄이 길다. 결국 배가 한 척 더 와야 사람들을 싣고 나갔다.

섬에서 내려 두 시간 정도 이어지는 숲 산책. 후박나무, 참식나무, 여러 종류의 대나무 등 뭍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수종들이 거대한 식물원을 방불케 했다. 관광객이 다니는 길은 정해 놓았지만 막아서 발길을 타지 않은 곳은 원시림 그대로 거친 모습이 이국적인 섬 숲이었다. 며칠 불온했던 기온 때문인지 동백이 한파를 이기지 못해 몽우리로 얼었다. 하지만 늦은 개화를 기다리는 몽우리는 봉긋, 설렘과 매혹의 동백이다.

아름다운 지심도를 떠나며 관광객으로 많이 지쳤을 섬이 좀 쉬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 많은 사람을 다 받아들이다가 나의 춘도, 목도처럼 수십 년 오랜 시간, 잃어버린 섬이 되면 어쩌지 괜한 걱정일까. 배 뒤편에 앉았다. 섬은 아스라이 멀어져 가고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먹으려고 날개를 펼치는 갈매기의 배웅이 아련하다. 바다 위로 주홍빛 노을이 내린다.

타지의 지서로 옮겨 다니시며 근무를 하시던 아버지가 진급을 하시면서 집 가까이 한 곳에서 근무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의 경찰서에 발령이 나자 얼마 안 가 아버지는 사표를 내셨다. 안정적이었던 공무원 생활을 포기하시고 여러 직업을 바꾸신 아버지 때문에 삶의 구멍을 메우시느라 조금 더 힘드셨던 엄마. 성인이 되어 그 때 왜 그만두셨느냐고 웃으며 대화할 수 있을 때 가족들이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이 섬, 저 섬처럼 자유롭고 싶었던 아버지, 그러고 보면 모든 뭍이 그리움이 되는 섬을 좋아하는 나는 아버지를 꼭 닮았을까.

1848년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의 여주인공 마르그리트는 5일은 하얀 동백, 25일은 붉은 동백을 머리에 꽂고 다녔다. 병을 앓아 향기가 없는 동백을 좋아했던 당시 미모로 유명했던 마리 뒤프레를 모델로 한 것인데 사랑하는 남자의 행복을 바라며 헤어진 후 폐병으로 죽어가는 진부한 신파지만 오페라로도 오랫동안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동백이라는 꽃이 가진 서사는 참으로 신비롭고 힘이 세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여인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고향으로, 아버지를 호명해 내는 유년의 기억으로.

지심도를 걸을 때 낙화한 동백 한 송이를 주워 다칠세라 주머니에 넣어 왔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꺼내 놓으니 땅에 떨어져 한 번 더 핀다는 꽃이 허허, 아버지의 웃음을 닮았다. 오년 뒤쯤 나의 동백섬, 목도가 다시 개방하게 되면 당신과 함께 나룻배 타고 들어가 꼭 술 한 잔 드릴테다, 옆에 떨어진 동백 한 송이 띄워서. 술잔을 가만히 코에 대어 봐야지, 정말 향기가 나지 않는지.

<최영실 여행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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