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늧’
‘늧’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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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1일 토요일 오후, 한 통의 문자가 날아왔다. <저희 부친께서 금일 오후 한 시 오 분 지병으로 별세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궂긴 소식에 마지막으로 선생을 뵀던 지난가을 즈음이 떠올랐다. 그때 선생은 친하게 지내던 이가 연달아 세상을 떠난 사실에 꽤 망연자실했음에도 곧 특유의 유머러스한 모습을 되찾아 모임을 활기차게 이끌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생은 가을비가 내리던 길 속으로 발걸음을 떼면서 우리에게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그때, 그 모습이 이승에서 선생을 본 마지막이었다니. 또한, 겨울이 오고, 연말연시에 바쁘다는 핑계로 그 흔한 문자도, 통화도 못 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가슴이 먹먹하고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일요일 조문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정초에 찾아뵙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또한, 선생과의 첫 만남과 그간의 일들이 기억을 뚫고 나와 내 한숨과 함께 머리를 맴돌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선생과 우리의 추억이 담긴 인터넷 세상의 카페 ‘늧’을 찾았다.

늧, 미리 보이는 빌미. 앞으로 어찌 될 것 같은 징조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늧이라는 낱말을 안 것은 순전히 선생 덕분이었다. 선생과 나는 도서관에서 처음 만났다. 선생은 매주 화요일 오전, 도서관에서 글쓰기를 가르쳤다. 처음 강의가 시작되던 날, 조금 늙수그레한 선생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면서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어 영문도 모르면서 영문과를 갔고, 신문 기자였다가 해직된 자신의 이력을 자조 섞인 목소리로 소개했다. 일주일에 한 번 선생의 강의를 들으며 나는 달곰새금한 글쓰기의 맛을 알아갔다.

어느 날, 선생은 ‘봄’을 주제로 글을 써 오라는 숙제를 냈다. ‘봄밤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나는 아이와 생긴 에피소드를 되살려 글을 썼다. 내 글을 읽은 선생은 내 글에 치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말과 함께 소설을 써 보라 했다. 또한, 소설 쓰기 강좌가 새롭게 열리는데 한 번 와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때까지 독자에 지나지 않던 내게 소설을 써 보라는 선생의 말은 언감생심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책을 읽는 소비자로 살던 이에게 갑자기 글을 쓰는 생산자가 되라니 뭔가 처지가 바뀌어도 너무 순식간에 바뀌는 느낌이었다. 설렘과 망설임을 동시에 안고 찾아간 소설학교에서 나는 소설 창작의 첫걸음을 뗐다.

지금도 가끔 창작 열기로 뜨겁던 소설학교가 떠오르곤 한다. 소설을 쓰고 싶어 모인 십 여 명의 제자들은 선생의 지도로 글쓰기의 기본부터 배웠다. 단편 소설에 나오는 인물을 탐구하고, 묘사와 서사를 살리는 작가만의 비법을 살폈으며, 플롯을 풀어 헤쳐 해부하기도 했다. 더불어 문우의 작품을 합평하면서 낯을 붉히기도 했다. 소설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는 작은 문집을 냈다. 어설프고 두서없는 첫 작품이었지만 이 한정판 소설집은 선생과 우리가 일군 시간의 갈피였으리라. 이후 선생과 우리는 여느 졸업생과 제자처럼 멀어져 갔다.

나는 살갑게 선생을 챙기는 제자가 아니었다. 아니, 그 반대였다. 무심하게 제 삶을 꾸리기 바빴다. 칼국수를 좋아하던 선생께 몇 번 사 드린 게 고작이었다. 등단하고 소설집을 내고 작품 활동을 하느라 선생을 뵙지 못했는데 이렇듯 소식을 받으니 후회가 밀려온다.

선생이 가르쳐준 문장 수련의 기본, 즉 것, 수, 있다를 되도록 쓰지 말라는 말씀은 지금도 지키려 애쓰는 법칙이기도 하다. 그레고리 잠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고 토론하고, 작중 인물인 성 중위의 심리상태를 살피던 일은 창작의 길에 들어선 지금도 잊지 못할 지침이 되어 나를 벼린다.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던 선생의 태도는 배우고 싶은 인생의 본보기였다.

취미를 넘어 전문가 수준이던 선생의 사진 찍기 실력은 언제나 우리를 향해 열려 있었다. 통도사와 송정 바닷가로 함께 떠났던 여정에서 선생은 제자들의 모습을 담아 늧 카페에 올리곤 했고, 사진 동호회원들과 전시회를 여는 따위의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제는 더는 선생의 유머와 사진을 들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다 생각하니 아쉽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은 시간의 축을 산다 했던가. 그 축은 일직선이라서 결코 되돌아가지 못한다고도 했던가. 선생과 나는 이제 같은 시간의 축을 따라서 달리지는 못할 터. 올곧은 소설가의 길을 묵묵하고 성실하게 가는 것이 선생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겠지.

오늘도 나는 늧을 향해, 뭔가 어찌 될 것 같은 징조를 향해 선생을 생각하며 낱말을 고르고 문장을 엮는다.
선생님, 고이 잠드소서.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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