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과 동안거의 해제
정월대보름과 동안거의 해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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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은 1년 열두 달에 한 번씩 찾아오지만 특히 민속에서는 정월 보름을 대보름이라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새해 첫 달 보름에 담겨있는 의미의 특징을 두드러지게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보름은 음력 15일의 우리말이며, 한자어로는 만월(滿月) 혹은 영월(盈月)이다. 이 날은 승가(僧家)에서 동안거(冬安居)가 해제되는 날이기도 하다. 정월 대보름과 동안거 해제일은 같은 날이며 1년에 한 번 맞이한다.

농경사회에서 정월 대보름은 송액(送厄), 영복(迎福), 풍년(豊年) 등 여러 가지 상징과 은유를 함축하고 있다. 동안거가 해제되는 날은 작년 음력 10월 보름에 입제하여 90일간 화두를 궁구하고 정진한 결과를 안고 제방의 선지식을 찾아 재차 확인공부를 하러 떠나는 날이다. 해제는 또 다른 공부의 연속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보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숫자 15일이며, 다른 하나는 달이 밝음 즉 꽉 찼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숫자 15는 자꾸 늘어가지만, 꽉 찬 보름달은 15일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현으로 기울어 크기는 작아지고 밝기는 어두워진다.

과거 농경사회의 달집살이는 반드시 농경지에서 행해졌으나 현재의 달집태우기는 공터, 강가, 하천 등 지역민이 접근하기 좋은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일반적으로 대보름 행사는 달집살이가 중심이고, 동안거 해제일은 참선 수행자가 참선한 결과를 대중에게 드러내는 것이 중심이다.

대보름의 중심행사는 달집살이에 있는데 혹자는 이를 달집태우기로 표현한다. 달집살이와 달집태우기는 소지 올리기와 소지 태우기처럼 의미가 다르다. ‘달집살이’는 달집을 사루는 의식행위적 느낌이지만 ‘달집태우기’는 논두렁 태우기와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달집을 어둠 속에서 태우는 것은 불빛을 어둠을 배경으로 확실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달집에 불을 붙이는 시각을 달이 뜨는 시각에 맞추는 것은 불(日)의 밝음에 달(月)의 밝음을 더해 밝음을 배가시키기 위한 계산된 거화(擧火)인 셈이다. 따라서 달집살이는 불로써 삿된 것을 태워버리면서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라 불빛같이 지혜의 밝음으로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의례인 것이다.

해제(解除)는 결제(結除)의 반대말로, 한국 선불교에서 3개월마다 선 순환되는 집중참선 안거를 푸는 것을 말한다. 안거(安居)는 불교 발생지인 인도의 기후환경에서 생성된 수행 기간이다. 여름철 우기에는 수행자가 이동이 불편해 한 장소에서 우기가 끝날 때까지 명상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수행 방법은 그 후 동진하여 중국 선종 수행법에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우리나라에 전파되면서 인도 여름의 우기라할 수 있는 장마철보다는 여름의 혹서기(酷暑期)와 겨울의 혹한기(酷寒期)를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로 정해 참선에 정진하는 제도가 확립됐다.

달집살이 행사에 동참한 사람은 크게 세 부류로 나눠진다. 먼저 행사를 위해 동원된 사람 혹은 단체, 다음으로 농사를 경험한 달집살이 세대, 끝으로 달집태우기에 신난 아이들이다.

농부는 결코 달집을 강가에 세우지 않는다. 비단 자기 논이 아니더라도 농경지를 고집한다. 달집살이에 남은 재(灰)마저 거름으로 활용하고자 함이다. 해제는 결실의 의미를 담고 있어 시작과 재액 그리고 풍요의 의미를 포괄하고 있는 대보름 행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달집살이의 본래 의식은 새해를 맞이하여 지혜롭게(智慧=明) 살아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이후 농민들에게는 풍년을 비는 의식으로 발전됐다. 현재 산업화사회의 달집태우기는 시민의 화합과 소통, 발전과 안녕 그리고 소원지 태우기로 바뀌어 자리 잡았다.

대보름 민속행사와 선가(禪家)의 동안거, 하안거의 결제와 해제 행사는 공교롭게도 같은 날 되풀이된다. 불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민은 달집을 사루면서 ‘등광궐아대보살’이라고 큰소리로 외쳐 등광(燈光)의 공덕을 찬탄하지만, 근본을 어설프게 이해한 사람은 그저 ‘달집에 불이야’가 본질인양 고함지르면서 흐뭇해한다.

“정부가 쌀 공급 과잉 문제를 해결하고자 올해 벼 재배 면적을 3만5천㏊(약 1억 평) 줄이기로 했다.”(조선일보.2017.01.07.) 올해 벼 재배 면적은 74만4천㏊로 지난해 우리나라 벼 재배 면적 77만9천㏊에서 4.5%(3만5천㏊)나 줄어든 셈이다. 결국 쌀이 남아도니 벼를 심지 말라는 말이다. 정월대보름 달집살이 의례가 풍년 기원이 중심이라는 주장은 이미 설득력을 잃은 셈이다. AI(Avian Influenza)와 구제역(口蹄疫) 창궐은 대단하다. 전통적 달집살이 의례 및 달집태우기 놀이마저 단절시켰다. 울산지역 5개 구·군 중 중구를 제외하고 4곳에서 달집태우기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가 재앙, 불행, 살(煞), 멍에, 사나운 운수 등의 액(厄)을 물리치는 행사로 현재까지 전승돼 왔다면 이 또한 2017년 정월대보름을 계기로 모두 설득력을 잃은 것 같다. 풍년을 바라고 삿된 것을 물리치기 위한 달집살이 의례의 의미를 지금 이 시점에선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제 농경사회의 전통이라는 그럴듯한 목적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 산업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 시대적·시의적 행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농부가 아닌 일반인이 중심이 되고 소방차가 대기하는 달집태우기와 평생 자기수행에만 치우친 안거의 의미를 뛰어넘어, 늦었지만 승속(僧俗)이 함께 변화(First in change)를 추구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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