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밀식’ 그리고 ‘가두리사육’
‘소주밀식’ 그리고 ‘가두리사육’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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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용어에 ‘소주밀식’(小株密植, dense planting with few seedling)이란 말이 있다. 한자나 영어 뜻 그대로 모 한 포기의 대 숫자를 3∼5가닥으로 적게 잡고 촘촘하게 심어 단위면적당 소출(수확량)을 늘리려는 모내기 방식이다. 농업계에선 ‘소주밀식’을 시·군에 막 뿌리 내린 농촌지도소가 1962년에 손댄 첫 사업으로 본다. 재미난 것은 ‘小株密植’이란 뜻의 ‘こかぶみっしょく’란 일본어가 따로 있는 점이다. ‘소주밀식’이 왜색(일본식) 용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윤주용 농학박사에 따르면 그 반대개념의 용어는 모 한 포기의 대 숫자를 10∼20 가닥으로 많이 잡는 ‘다주산식(多株散植)’ 즉 ‘흩어뿌리기’다. ‘다수확’ 관점에서 보면 다주산식은 비효율적이다. 욕심만큼 소출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기계식 모내기가 등장한 70년대에는 이앙기를 아예 소주밀식(한 포기 대수 3∼5가닥)형으로 고정시킨다. 그러나 ‘보릿고개’란 말을 밀어낼 정도로 쌀이 남아돌아 골칫거리인 요즘은 농사 전략도 ‘소주소식’(小株小植→少株少植) 쪽으로 기운다. 적게 심더라도 미질(米質)에 승부를 걸겠다는 전략이다.

‘소주밀식’이란 말이 처음 선보인 당시는 에피소드도 많았다. “뭐? 소주를 밀주로 만든다고?” 한자어가 낯설고 어려운 농민들 사이에 번진 우스갯말이었다. 정부가 ‘홍보’ 차원에서 어린 학생들을 활용한 일도 있었다. 필명이 ‘시우(時雨)’라는 분은 ‘하루, 하루 살아가며’라는 글마당에 이런 글을 남겼다.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닐 때에 가슴에 달고 다닌 리본의 내용이 ‘소주밀식’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패찰을 달고 다녔고 선생님들도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걸로 기억이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주밀식(小株密植)’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윤 박사의 해박한 지식 일부를 다시 옮겨보자. 문헌 기록으로 미루어 우리나라에서 모내기에 대한 인식이 시작된 시점은 고려 말로 거슬러 오른다. 그 무렵 모내기가 소출을 늘린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보편화는 기대난이었다. 논이래야 하늘의 조화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천수답(天水畓)이 전부요 수리안전답(水利安全畓)은 꿈도 못 꾼 탓이다. 그러다가 조선조에는 ‘소주밀식’에 가까운 기록들이 다수 등장한다. 농사직설(農事直說), 한정록(閑情錄), 농가집성(農家集成), 산림경제(山林經濟), 해동농서(海東農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가 대표적이다. 3~4묘(苗根) 혹은 4~5묘가 대종이고, 드물게 6묘도 없진 않다.

‘소주밀식’이란 용어가 놀라운 진화(進化)과정을 거친 것일까? 최근엔 무게중심이 벼 포기만이 아니라 어패류 양식, 가축 사육 쪽으로도 이미 기울었다. ‘닭공장’, ‘돼지공장’이란 북한 용어가 남한서도 예사로 쓰일 정도다. 참고로 ‘돼지공장’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이렇다. ‘돼지공장= [북한어] 기계화된 현대적 설비를 갖추고 공업적 방법으로 돼지를 기르는 종합적인 기업체. 또는 그런 건물.’

조류인플루엔자(AI)에 이어 구제역까지 난리다. 구제역 바이러스의 돼지 감염 소식은 아직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전국이 오들오들 떨고 있다. 공장식 ‘가두리사육’ 대상인 돼지가 소보다 구제역 바이러스에 훨씬 더 취약하고 백신 효과도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가두리사육’이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집단감염의 우려를 높인다는 것은 이제 정설이다.

‘가두리사육’의 원조는 축산대국 덴마크다. 그 영향으로 유럽 일대의 축산지도는 ‘가두리사육’ 일색이다. ‘생명의 외경’을 외치는 동물보호론자들의 말도 먹고사는 문제에는 한없이 약해지기만 한다. 윤주용 박사도 목소리를 높인다. “‘공장식’ 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양돈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하지만 뾰족한 대안은 없을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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