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의 빛·소리
2017년, 봄의 빛·소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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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야 바람이고 흘러야 세월이라’는 말이 있듯이, 지난 2월 4일 24절기의 하나인 입춘(立春)이 지났다. 봄이 왔다는 말이다. 봄은 만물이 되살아나는 계절이다. 봄의 빛(色)과 소리(聲)를 찾는다.

봄은 언양 나무시장으로 온다. 봄은 건양다경(建陽多慶)으로 온다. 봄은 입춘대길(立春大吉)로 온다. 봄은 영동할만네로 온다. 봄은 아지랑이로 온다. 봄은 시산제(始山祭)로 온다. 봄은 따스함으로 온다. 봄은 고로쇠 물로 온다. 봄은 집안 대청소로 온다. 봄은 처녀의 설렘으로 온다. 봄은 재재재 박소 소리로 온다. 봄은 제비로 온다. 봄은 보리밭으로 온다. 봄은 늑골장군의 하품으로 온다. 봄은 홍매(紅梅)로 온다. 봄은 태화강 모래톱에서 깃 고르는 왜가리 붉은 다리로 온다. 봄은 꽃샘추위로 온다. 봄은 동장군의 변덕으로 온다. 봄은 할미꽃으로 온다. 봄은 우슬초 싹으로 온다. 봄은 주꾸미로 온다. 봄은 아시정구지로 온다.

봄은 도다리 쑥국으로 온다.(도다리 쑥국은 도다리와 쑥을 함께 넣어 끊인 국이다.) 봄은 쑥국으로 온다.(울산 태화강의 황어와 함께 끓인 쑥국이다.) 봄은 떼까마귀 날갯짓으로 온다.(‘갈가마구야 갈가마구야 높이 높이 날지 마라. 나는 니도 어지럽고 쳐다보는 나도 어지럽다.’) 봄은 딱새의 울음으로 온다.(딱새는 일찍 일어나는 새다. 요즘 제철이다. 싫지 않고 듣기 좋은 노래를 이른 새벽부터 여명까지 지칠 줄 모르고 부른다. 사랑의 세레나데인 셈이다. 보호색으로 차려입은 암컷은 좀처럼 찾기 어렵지만 수컷이 나는 곳엔 어김없이 딴청 부리는 암컷이 새침데기로 앉아있다.)

봄은 할미새 꼴지방정으로 온다.(할미새는 할머니의 화신인지 새벽잠이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무슨 이야기가 많은지 여명 속에서 혼자 말하며 날아간다.) 봄은 거름발 받은 보리밭으로 온다.(농부가 보리밭을 찾으면 보리는 주인의 방문에 산들산들 웃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농부가 보리뿐 아니라 키우는 모든 작물을 등한시하지 말고 관심을 갖고 자주 자주 찾고 돌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보리는 거름에 민감하다. 보리가 거름기 부족으로 시들시들 누렇게 말라 들더라도 농부가 거름 한 짐 지고 보리밭 두렁만 지나가도 보리가 살살 웃고 금세 본디색깔을 찾는다는 말도 있다. 봄이 되면 보리는 매우 빠른 성장을 보인다. 보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물결 모양새를 ‘맥랑(麥浪)’이라고 한다. 보리의 자람이 하루가 다르게 사람의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도달하고 있다.)

봄은 머구쌈으로 온다.(애기 손바닥만 한 머위를 살짝 데쳐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약간 쌉스름한 맛이 입안을 감돌면서 밥도둑이 따로 없다.) 봄은 새들의 사랑으로 온다.(사람은 가임(可姙) 연령이 되면 언제든지 임신할 수 있지만 조류는 대부분 봄철에 번식을 한다. 사람도 가임 기간에는 몸의 변화가 있듯이 조류도 번식기에는 깃, 울음소리 등에 변화가 나타난다. 먼저 혼인깃의 웃자람, 깃 색상의 짙어짐, 부리 혹은 다리의 붉어짐과 같은 외모의 변화가 찾아온다. 다음으로 울음소리가 크고 잦고 기간이 길어지고 둥우리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선회비행을 한다. 평소에는 경계 소리나 동료 부르는 소리 등 단순한 소리가 중심이라면 번식기에는 복잡하면서도 듣기에 매혹적인 소리가 반복된다. 선회비행은 자기 영역을 지키고자 하는 과시상인 셈이다. 마지막 특징으로 둥우리 재료를 물어 나른다. 수컷이 몸단장을 하고 노래를 하며 둥지를 완성했다 해도 생리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암컷은 결코 수컷의 구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숙된 암컷은 사랑에 응해 준다. 조류의 일상은 먹기, 잠자기, 깃 고르기, 이동하기, 경계하기, 목욕하기 등이다.)

봄은 등록금 통지서로 온다.(소고기국은 한 솥 남아있고, 비는 주루룩 주루룩 오고, 시장(市場)은 파장(罷場)이다. 자녀의 등록금 고지서만큼 봄으로 오는 빛과 소리가 있겠는가?) 봄은 두릅 향으로 온다. 봄은 엄나무 잎으로 온다. 봄은 봄비로 온다. 봄은 미나리 향으로 온다. 봄은 태화강 황어로 온다. 봄은 까치 입에 문 나뭇가지로 온다. 봄은 공작의 화려한 꽁지깃으로 온다. 봄은 여성의 미소로 온다. 봄은 넉넉장골이 하품으로 온다. 봄은 죽도 동백꽃으로 온다. 봄은 갯내음으로 온다. 봄은 청둥오리 사랑으로 온다.

봄은 개문(開門)으로 온다. 봄은 영어(囹圄)에도 온다. 봄은 천원(天圓)으로 온다. 봄은 지방(地方)으로 온다. 봄은 원학(猿鶴)으로 온다. 봄은 남녀노소로 온다. 봄은 천봉만학(千峯萬壑)으로 온다. 봄은 승속(僧俗)으로 온다. 봄은 빨래터로 온다. 봄은 버들개지 지지개로 온다. 아무리 가기 싫은 기운 센 동장군이라 해도 입춘의 기운은 당할 수가 없다.

홍매화의 소식이 연일 바람에 실려 오면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한다. 봄이 시작된 것이다. 산개구리 일찌감치 알을 낳고, 울산만에서 온몸 단장한 황어가 설우(雪雨)를 만나 태화강이 불어나면 선바위 여울에 마블링 꽃이 핀다. 까치에 뒤질세라 왜가리는 허벅지부터 도화꽃 부끄럼을 탄다. 장가갈 철이 되었다는 신호이다. 청둥오리 수컷, 사랑 지키기에 바빠 여위어 가는 계절이다. 흰뺨검둥오리는 일찍 잦은 고갯짓으로 사랑에 성공한다.

봄은 이미 고양이 걸음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어려운 국민경제는 현재에 이르도록 동장군이 되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사위 코 보니 손자 보기는 글렀다’라는 속담이 있다. 올해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은 것 같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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