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사들의 침묵
역사교사들의 침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0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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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도 ‘대통령 의중 사업’의 하나인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엔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에서 드러난 오류와 교육부의 연구학교 지정 추진이 또다시 논란의 불씨에 기름을 붓고 있다.

이른바 ‘최종본’이 나오기 전,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지역 정서는 어떤지 궁금했다. 그렇다고 반발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진보성향 교육·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을 통한 문제제기가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정작 교육현장에서, 그것이 검정이든 국정이든, 역사교과서와 씨름할 수밖에 없는 역사교사들의 육성은 들을 길이 없어 아쉬움으로 남았다. 문제의식을 가진 역사교사의 의견을 직접 듣는다면 갈증은 어느 정도 풀리겠지. 기고문을 받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 초순, ‘다리’ 역할 좀 해 주십사 하는 생각에서 처음 접근한 대상은 전교조 소속 교사 A씨였다. 그는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역사교사 서너 분에게 기고문 집필 의향을 정중하게 타진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어렵다’는 메시지뿐이었다.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전교조 울산지부장을 지낸 B교사에게 문자를 띄웠다. 그러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며칠 동안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문자 대신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돌아온 것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다행히 다른 한 분을 추천해주었다. 서운했지만 따르기로 했다.

그가 소개한 ‘교육계 선배’ C씨는 의외로 친절했다. C씨는 궁리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현직 역사교사 D씨의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협조가 가능할 것이란 귀띔도 곁들였다. 하지만 이 역시 실패로 끝났다. D교사는 문자 메시지로 미안함을 표시했다. “지난번에 A선생님 연락을 받고 저보다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님의 글이 어울릴 것 같아 사양했는데 회장님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 쓰신다고 했더군요. 추천해 주신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깜냥이 아닌 것 같아 결국 안 되겠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저보다 역량이 되시는 다른 분이 글을 쓰셨으면 합니다. 협조를 해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1년 유예 후 국·검정 혼용’(2016. 12. 27),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2017. 1. 10), 국정 역사교과서 최종본 공개(2017. 1. 31) 수순을 차례로 밟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 전북도교육청을 비롯해 진보성향 교육감이 이끄는 전국 13개 교육청은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시한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반발도 만만찮았다.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연합(전학연)은 지난달 30일 성명을 내고 “조희연 등 13개 좌파 교육감은 당장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공문’을 단위 학교에 발송하라!”고 요구하기에 이른다.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대통령 탄핵정국과 가짜 촛불민심에 겁먹은 무능한 교육부 장관의 항복으로 국정화 1년 유예와 국·검정 혼용이란 말도 안 되는 결정을 한 교육부를 학부모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후회와 그 골육책으로 교육부는 연구학교를 지정, 올해부터 국정교과서를 배울 수 있게 조치했지만, 조희연을 필두로 한 13개 좌파 교육감은 교육부 공문을 거부하고 학교 전달을 막음으로써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을 짓밟고 있다.”

울산의 정치인도 측면지원에 나섰다. 정갑윤 국회의원은 지난 3일 이영 교육부 차관을 만난 자리에서 “지금까지 학교현장에서 사용된 역사교사서는…좌 편향적 기술이 많았다”며 “역사교육 국·검정 선택은 학교 재량에 맡겨야 한다”는 말로 힘을 실어주었다. 정 의원의 이 말은 울주군 S중학교의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 지정 신청 움직임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울산지역 역사교사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는 보신(保身) 탓인지 어쩐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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