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칼럼] 윤동주 시인, 범서 천상에서 만나다
[이정호칼럼] 윤동주 시인, 범서 천상에서 만나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2.0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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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토크쇼를 하는데 가자고 했다. 평소 인정스럽기도 하지만 좀은 부산한 후배가 권하는지라 거절하기도 그렇고, 한편으로는 그런 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하여 따라나선 걸음이었다. 이유는 또 있었다. 이래저래 걸리는 울산예총 회장도 온다고 하니 모처럼 얼굴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서였다. 그러니까 행사 자체에는 뭐 그렇겠거니 하는 정도였다는 말이다. 장소도 문화행사 자리치고는 좀 변두리다 싶은 어느 상가건물 3층이었다. 아기자기한 맛은 있어 보였지만 동네 사랑방 정도로 인식되는 그런 공간이었다.

북 토크쇼 진행자는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주로 시낭송가로 활동하는 그의 입에서 오늘 행사의 중심은 윤동주 시인이라는 말에 귀가 쫑긋해졌다. 진행자는 올해 윤동주 시인만 사랑하겠으며, 어떤 시인도 자기에게 말하지 말란다. 내용도 좋았지만 관객 참여의 진행 방식까지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운 시간들이었다. 시인이 나고 자랐던 북간도와 그가 다녔던 학교, 가족관계, 그의 소울메이트(soul-mate)였던 송몽규, 그의 시 세계와 죽음……. 새해 벽두에 나는 범서 천상마을에서 그렇게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재인식하며 반갑게 만났던 것이다.

나는 수년 전에 두 차례 만주 답사를 한 적이 있다. 답방했던 곳곳에서 고구려의 웅혼한 기상과 융성했던 해동성국의 풍요가 밀려들어오다가 이내 빠져나가곤 했다. 손수 걸어서 답방했던 단재 선생의 발자국이 어른거리다가 다시 홍범도, 김좌진 장군의 지략이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두만, 압록 두 물줄기 따라 바라보이던 강 건너편 북녘 땅의 곤궁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끝없이 펼쳐지던 만주벌을 바라보면서 자주 큰 한숨을 몰아쉬곤 했다. 방문한 학교의 교포 아이들 앞에 섰을 때 북받치던 연민의 정도 잊지 못한다.

그중에서 북간도 명동촌의 여운이 가장 길다. 시인의 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다가 만난 빛바랜 사진들과 소책자가 일러준 이야기들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우리가 우러르는 윤동주 시어들의 모태가 된 시인의 고향은 다섯 가문 사람들이 이상향을 꿈꾸며 집단 이주했던 명동촌이다. 시인이 태어나기 18년 전인 1899년 2월에 함경도 끄트머리 땅인 회령과 종성의 뜻있는 네 가문 선비 몇 사람이 집단이주를 감행했다. 윤동주의 가문도 일 년 뒤에 합류하여 다섯 가문 사람들이 만든 명동촌은 선지자들의 땅이었던 것이다.

이런 명동촌 이야기를 중심으로 정성껏 여행기를 썼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아 이런저런 관련 책자를 여러 권 읽었다. 인터넷에서 명동촌에 관한 각종 사진자료들도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몇 달 동안 명동촌에 천착하면서 그 무렵의 선인들에 대해 한없는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열람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명동촌의 중심인물인 규암 김약연과 윤동주에 가려진 또 한 사람의 청년문사 송몽규에 초점을 맞추어 두 편의 글을 정리할 수 있었다. 윤동주의 외숙인 김약연과 그의 고종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에 대한 글이었다.

명동촌은 약 30년간 북간도에 실재했던 조선인의 공동체였다. 함경도 최북단의 변방 선비들이 두만강을 건너 저항의 땅 만주에서 펼쳤던 우리 선조들의 기백어린 이야기다. 이런 환경을 배경으로 윤동주라는 위대한 시인이 탄생한 것이다. 소년 윤동주는 스물여덟 생애의 절반을 명동촌에서 보냈다. 그의 친구 송몽규, 문익환, 김정우 등과 함께 훌륭한 스승 아래에서 꿈을 키웠다. 그의 더 큰 꿈은 북간도에서 시작하여 평양과 서울을 거쳐 교토에서 완성하려 했지만 야수의 손아귀에 의해 슬픈 여정으로 마감되었다.

윤동주는 우리들에게 참 아름다운 시어를 남긴 시인이다. 육신은 비록 처참하게 산화되었지만 그가 남긴 작품 덕분에 그는 영원한 청년으로 각인되어 있다. 1947년 2월에 유작이 처음 소개되고 함께 추도회가 거행되었다. 1948년 1월에 그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분신 같은 육필 원고를 후배 정병욱에게 보관케 함으로써 첫 시집이 나온 이후 꾸준히 그의 작품들이 발굴되어 지금은 130편의 옥고가 전해지고 있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 오는 2월 16일이면 그의 서거 72주기가 된다. 지금까지 윤동주 시집이 수없이 발행되었고, 윤동주의 삶과 시에 대한 연구도 심도 있게 진행되어 왔다. 올해는 윤동주를 기리는 많은 문학 행사들이 더 많이 진행될 것이다. 범서 천상에서 시 낭송가인 구경영씨가 진행한 북 토크쇼에서 윤동주를 만나게 됨이 여간 기쁘지 않다. 행사 공간을 제공한 ‘달란트아트센터’의 주인장인 안성균 센터장의 멘트가 귓가에 맴돈다. “동네 마이너 문화가 활발해야 큰 무대 메이저 문화에 활기가 돈다.”

<이정호 수필가, 전 다전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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