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好事多魔)의 미학(美學)
호사다마(好事多魔)의 미학(美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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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일부터 울주민속박물관에서는 혼례자료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이번 전시 자료는 울주군 두동면(구미리, 만화리), 두서면(인보리), 상북면(산전리), 온양읍(외광리), 서생면(나사리, 신암리, 송정리) 등 읍·면 약 80여 명이 그 대상으로 ‘울주지역 일생의례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

혼례는 남녀가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인륜지대사이다. 신부의 절수건에는 ‘二姓之合 萬福之原’이라 쓰여 있다. 이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의 부부유별(夫婦有別) 편에 ‘부부라는 것은 다른 두 성받이가 합하는 것으로 사람을 생기게 하며 만복의 근원이 된다(夫婦 二姓之合 生民之始 萬福之原 云云)’라는 문구에서 따온 말이다. 이를 계기로 혼례의 호사다마 미학을 살펴본다. 호사다마는 ‘좋은 일에 나쁜 일도 덩달아 많이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첫째, 각시는 짚불을 넘고 바가지를 밟아 깨고 대문을 들어선다.

신부가 시댁으로 처음 들어갈 때 대문에서 불(火)과 소리(聲)의 정화 의식이 거행된다. 먼저 신부는 대문 앞에 피워둔 짚불을 넘는다. 이는 신부를 따라 들어오는 잡신을 불로써 정화하는 의식이다. 다음으로 신부가 엎어둔 큰 바가지를 세게 밟아 큰소리를 내고 들어간다. 이는 불과 소리로써 잡구잡신(雜咎雜神)을 축귀(逐鬼)하는 의식이다. 신랑 역시 신부 집에 처음 들 때 짚불을 넘고 바가지를 밟는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 풍속이 다르다. 지금은 구식 결혼식을 쉽게 볼 수 없지만 어릴 때 신부의 치맛자락에 불이 붙어 주위에서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가끔 보았다. 이는 발인(發靷)할 때 요강 혹은 바가지 등 소리 나는 물건을 깨뜨리는 의식과 동일하다.

둘째, 장가가는 날 말발굽이 젖어야 잘 산다.

‘장가가는 날 말발굽이 젖어야 잘 산다’라는 말은 장가가는 날 비가 온다는 말이다. 장가나 시집가는 날은 날씨가 맑아야 한다. ‘날씨가 부조(扶助)한다’는 말이 있다. 이 표현은 잔치나 초상 당일 날씨가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시집가는 날 비가 오면 잘 산다’는 말은 어른이 하시는 위로의 덕담이다. ‘하필이면 잔칫날도 비가 오네, 처녀 때 부모 속 어지간히 썩히더니 당연히 비가 오겠지’라고 말한다면 모인 축하객은 서로 마주보며 웅성거릴 것은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잔치 혹은 초상에 비가 오면 모든 일이 번거롭다. ‘혼인하는 날 볕이 좋으면 잘 산다’, ‘각시가 신행 갈 때 날씨가 좋으면 시어머니 마음씨가 좋은 덕인이다’라는 덕담을 말한다. 그만큼 결혼식 때 날씨가 좋고 맑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사할 때 비가 오면 부자가 된다’, ‘초상집에 비가 오면 슬퍼서 그렇다’ 등의 표현은 위로의 말이다.

셋째, 첫딸은 살림밑천이다.

역사 속을 들여다보면 한 시대 남존여비 사상도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남아선호 사상적 측면에서 남아는 아랫도리를 볏겨 두어도 흉이 되지 않았다. 또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는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물려도 흉은커녕 오히려 자부감을 갖는 풍속도 유행했다. 종교적으로 여성 성불 불가론도 등장했다. 그 후 대승사상에서는 노비 혹은 용녀의 성불론까지 확대 발전됐다. 아들을 못 낳을 경우 남편보다 아내의 탓으로 돌려 첩(妾)을 들이는 시대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아들은 대를 잇고 조상의 제사를 지내며 가문을 대표한다. 삼종지례(三從之禮)는 아들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첫딸 낳은 산모에게 경험 있는 할머니, 어머니, 동네 아줌마들은 한결같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위로 겸 덕담으로 ‘첫딸은 살림밑천이란다’라고 말을 건넨다. 이어서 ‘다음에 아들 낳으면 되지…’라고 말한다. 필자의 아버지는 위로 큰 누나, 작은 누나 등 딸 둘을 낳자 바람을 피웠는데 필자가 태어나니까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딸을 낳는 것은 여성의 책임이 아니다. 팁으로《능엄경(楞嚴經)》<계환소(戒環疏)>에 ‘남편이 조금 못해야 음양이 조화되어 아들을 낳는다(夫劣然後陰陽和以生子)’라는 말이 있다.

넷째, 잔칫날은 국수를 먹어야 잘 산다.

국수는 서민에게 친숙한 음식이지만 부잣집에는 별식이다. 한 시대 쌀밥은 보리밥, 밀가루 음식보다 가치 있게 여겼다. 실제로 밥보다 국수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 된다. 밥상과 국숫상 차림은 경제적으로 비교해도 차이가 분명하게 난다. 초상에서는 대부분 쌀밥에 소고기국을 끓여서 대접하지만, 잔치에서 반드시 국수를 대접하는 것은 아니다. 잔칫집에서 국수가 아닌 소고기국을 끓여서 대접한 사례도 있다. 국수가 잔칫집의 음식이 된 것은 길다란 면발이 ‘장수’의 뜻을 담고 있다는 덕담에서 비롯됐지만 서민들의 생활에서 비싼 쌀보다 경제적 부담이 적기 때문이기도 하다. 잔칫날 국수를 먹는 당위성은 ‘잘 산다’이다. 좀 더 살을 붙이면 노인은 ‘무병장수’한다. 혼례 특별전시는 7월 30일까지다. 관람하시길 권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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