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일기] 세배와 세뱃돈
[목회일기] 세배와 세뱃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25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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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밤새도록 장작불을 피워 강냉이로 엿을 고았다. 아버지는 강냉이와 쌀을 가지고 뻥튀기 집에 가서 뻥튀기를 해오시고 장작불에 고은 조청과 강냉이 뻥튀기를 버무려 강정을 만들었다. 설날이 되면 설빔으로 사다주신 나일론 점퍼 한 벌씩을 입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세배를 하고 달콤한 강정을 먹으며 형제들과 사촌들까지 신나게 설 명절을 맞이했던 추억이 있다.

며칠 후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르는 설날이 다가온다. 설날에 아이들에게 사주는 옷을 때때옷라고 하는데 ‘때때’란 말은 알록달록하게 곱게 만든 아이의 옷이나 신발을 이르는 말로 ‘꼬까’라고도 해서 때때옷, 꼬까신발이라고 하였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아이들이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설이 되면 새 옷을 한 벌씩 사 입혀서 큰집에 모여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 숙모님께 세배를 드리고 떡국이며 나물반찬, 고깃국, 강정 같은 맛있는 음식도 풍성하고 사촌들이 다 모여 연 날리고 썰매 타고 윷도 놀고 신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집안에 먹을 것도 많고 옷도 명절과 관계없이 사주기 때문에 음식이나 옷에는 별 관심이 없다. 형제도 사촌도 많지 않아 모여서 신나게 놀 기대도 별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뱃돈에는 약간의 기대를 갖는 것 같다.

설날 정월 초하루 첫날에 자손들이 조부모님과 부모님께 건강장수를 기원하며 문안인사를 드리는 세배를 한다. 옛날에는 젊은이들은 집안 어른들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까지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다.

세배를 드리면 강정이나 감주 같은 음식을 대접하거나 식사 때가 되면 떡국을 끓여 주기도 하고 어른들은 막걸리 한 주전자를 내어다 주기도 했었지만 세뱃돈을 주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살기 좋아지면서 세뱃돈을 주기 시작해서 보편화가 된 것 같다.

세뱃돈을 주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설이 되면 전통적으로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복을 상징하는 홍바오(紅包)라는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주었는데, 이 풍습이 우리나라로 전해졌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도 이와 같은 풍습이 전해져 빨간 봉투에 신권으로 소액의 지폐를 넣어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있고, 일본에서도 60년대 이후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전국적으로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핵가족 사회가 되면서 효행심이 점점 희박해지는데 설날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과 숙모님과 같은 집안의 어른을 공경하는 자세로 세배를 드리는 것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교육상으로도 좋은 풍습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는 것은 주는 사람의 체면이나 권위보다는 교육적인 부분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세뱃돈을 주어야 할 손자들이나 조카들이 많기도 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세뱃돈이 천원권, 오천원권에 많아야 만원권이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손자도 조카도 하나 둘, 많아야 서너 명인데다 경제가 발전하고 돈 잘 버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오랜만에 손자나 조카를 만났다고 오만원권은 보통이고 수표를 주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니 설 명절을 지나고 아이들이 친구를 만나거나 전화를 해서 “넌 세배 돈 얼마 받았느냐” 물으면서 비교도 한다. 친가, 외가 다니며 많이 받은 아이는 자랑하며 우쭐해하며 조금 받은 친구를 무시하는 말을 하고, 조금 받은 아이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세뱃돈은 사랑의 표현이고 격려의 표현이다. 그러나 고액의 세뱃돈은 아이에게 ‘절 한 번 하고 많은 돈을 벌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거나 돈의 가치를 가볍게 생각하는 그릇된 경제관념을 심어 줄 수도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세뱃돈은 아이에게 맞게 적당한 금액을 주고 축복의 말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랜만에 만난 손자나 조카가 사랑스러워서 옷이라도 한 벌 사 주고 싶다면 아이 엄마에게 선물비로 따로 주는 것이 교육상 바람직하다.

그리고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세배를 드리면서 용돈도 넉넉히 준비해서 드리는 것이 효도다. ‘風樹之嘆(풍수지탄)’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가 가만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부모님께 효도하려 하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사랑을 나누는 설, 무엇보다 건강하고 안전한 설 명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유병곤 새울산교회 목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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