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의 추락
왕실장의 추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22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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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기라면 일가견이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저는 모릅니다.” 한사코 버티던 그가 끝내 걸친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수의(囚衣)다. 하지만 결코 본의가 아니다. 그로선 생전처음 당하는 치욕인지도 모른다. “이것들이!” 박영수 특검팀을 속으로 그리 깔아뭉개도 직성이 안 풀린다. 똥바가지를 뒤집어씌워도 유분수지!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의 몸통’이라나 뭐라나….

골백번 생각해도 억지다. 그래서 분하고 억울하다. “저것들이!” 지시대명사를 ‘이것’에서 ‘저것’으로 바꿔치기해도 분이 안 풀린다. 그래서 가슴을 친다. 구치소 벽도 쳐본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통증뿐이다. 처음엔 가슴이 아프더니 나중엔 주먹까지 다 아프다. “이 빌어먹을 놈들이!”….

김기춘 전 실장은 ‘발명왕’이 아니다. ‘별명왕’일 뿐이다. 스스로 붙인 적이 없으니 기분 좋을 리도 없다. 어느 놈이 붙였는지 기억이 다 안 날 정도로 많다. ‘법꾸라지’야 박지원인가 하는 양반이 붙여줬을 게다. 나머지는 대부분 언론 아니면 정치 한다는 녀석들이 붙여줬지 싶다. ‘기춘대원군’도 그렇고 ‘늙은 너구리’도 그렇고 ‘부통령’, ‘막후실세’, ‘공작정치의 대가’, ‘유신헌법의 창조주’도 그렇다. ‘왕실장’도 그 중 하나다. ‘왕(王)실장’이라? 그래도 요것 하나만큼은 너그럽게 봐주고 넘어가자. ‘왕(王)회장’ 별명의 제법 괜찮은 이도 있잖은가.

필자가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 때 일이다. 이 무렵 대선 유력후보 3인은 김영삼(YS, 민주자유당), 김대중(DJ, 민주당), 그리고 ‘왕회장’으로 불리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통일국민당)이었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12월 11일 아침나절, 김기춘 당시 법무부장관이 부산의 권력실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시장, 교육감, 검사장, 경찰청장, 안기부지부장, 기무부대장, 상의부회장 등 9명이 모인 곳은 부산 대연동 ‘초원복집’. 그 유명한 ‘초원복집 도청사건’ 현장이었다. 김 장관이 제안한 것은 YS 당선을 위한 ‘지역감정 부추기기’ 작전. 선거 때마다 써먹히는 그 유명한 말도 이 밀실이 안태고향이다.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이 무렵 왕회장의 부산선대본부장은 그의 아드님 정몽준 국회의원(MJ, 당시 통일국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하루는 MJ가 그의 언론특보를 시켜 부산 C방송 정치부 기자였던 필자에게 사진식별을 부탁해 왔다. ‘몰래카메라’로 찍은 개구멍 사진 한 장. 역광을 받아선지 누가 누군지 분간이 힘들었고, 이름을 알아낸 건 겨우 3명뿐이었다. 그러나 선거 3일 전쯤, 복국 맛있게 잡순 분들의 이름이 낱낱이 매스컴을 탔다. MJ를 도운 안기부 직원이 일등공신이었다. 하지만 역광(逆光)은 역풍(逆風)을 불러일으켰다. YS가 도리어 여유 있게 당선되고 만 것이다.

14대 대선은 명백한 관권(官權) 선거였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권력실세’였던 김기춘 장관은 기소 후에 무죄로 풀려났다. ‘주거침입죄’를 뒤집어쓴 통일국민당 관계자와 도청에 관여한 안기부 직원만 벌금 90만원씩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MJ는 사건 관련자에게 도피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기소’를 맛보아야 했다. 그 이후 한 평자는 ‘초원 복집 사건’의 보도 태도를 이렇게 평했다. “불법 선거 운동을 모의한 중대 범죄보다 도청(盜聽)이라는 수단의 도덕성을 부각시켜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어 여론을 조작한 한국 주류언론의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행태를 보여주었다.”

찬찬히 눈여겨보면 ‘왕실장’은 대단히 매서운 매의 눈매를 하고 있다. 매는 높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다. 그러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듯 ‘하늘의 권력실세’ 매도 끝내 ‘추락’을 맛보았다. ‘왕실장의 추락!’ 무소불위(無所不爲)의 날갯짓 탓으로 돌릴 수 있을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으니….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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