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뜻대로 장독대 있는 집을 숙소로 골랐죠”
“모친 뜻대로 장독대 있는 집을 숙소로 골랐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1.17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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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언 울산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 박상언 울산문화재단 대표이사.
매주 금요일마다 직원 학습조직 운영

올해 새로 돛을 올린 ‘재단법인 울산문화재단’. 이 재단의 초대 박상언(朴相彦) 대표이사(57)를 지난 13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울산시청 맞은편 경남은행 5층에 자리잡은 집무실은 예약 손님들로 거의 빈틈이 나지 않는다는 게 측근의 귀띔이었다. 실제로 그와의 상견례는 내방객 대여섯 분과의 면담이 끝난 뒤에야 가능했다. 인터뷰도 ‘권명호 동구청장 예방’이란 사후일정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끊어야 했다.

내부시설 치장은 대충 매듭지어진 것 같았고 단칸방 사무실은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땅한 상담 공간이 없어서인지 상담 여직원 둘은 실외 복도에서 손님을 맞고 있었다.

자본금 22억5천만원, 1년 예산 123억원. 느끼기에 따라 만만찮은 규모일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어깨도 무겁다. 사무처장 이하 직원 20명을 거느린 조직을 어떻게 하면 창의 행정을 일궈내는 강소 조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이 문제도 그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러나 자신감이 있다. ‘전문성’을 차곡차곡 쌓아 나간다면 두려울 것도 없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내공을 기르는 ‘학습 조직’이다. 매주 금요일 오전 1시간에서 1시간 반 동안 ‘전문성 공유’의 시간을 갖기로 했고, 지금까지 두 차례 소화해 냈다. 앞으로 6개월은 계속 진행할 것이다. 그렇다고 학습 분위기가 딱딱하진 않다. ‘창의 행정’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배태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로 공유하는 것은 이론적 배경과 현장 문제, 해결 능력 등이다.

“울산은 매력적인 도시”… 반구동에 숙소

동그랗고 까만 뿔테안경이 무척 인상적이다. 그 뿔테안경이 학자풍임을 직감케 한다. 그러나 대화에서 느껴지는 것은 깐깐함이 아니다. 따뜻한 온기와 사람 냄새다. 울산 숙소 이야기가 더욱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제가 4형제의 맏이인데, 올해 팔순이신 어머니께서 맏이와 같이 살고 싶다고 하세요. 그런데 조건을 붙이셨어요. 반드시 장독대가 있는 집을 구해야 한다고 말이죠.”

그래서 그런 집을 찾아 나섰고, 수소문 끝에 맘에 드는 전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 옥상이 딸려 있는 중구 반구동의 2층 슬래브 집이다.

“바로 가까이에 신울산시장이 있어서, 저도 그렇지만 어머니께서 특히 좋아하실 것 같아요.” 2월 중에 모친이 울산으로 오시면 부인 유은숙 여사(53)와 세 식구가 더불어 살 작정이다. 근무지가 서울인 외아들은 어쩔 수 없이 빠질 수밖에 없겠지만.

박 대표의 울산에 대한 인상은 ‘매력’이다. 그의 말을 빌리면 울산은 ‘머물러 살고 싶은, 매우 어트랙티브(attractive, 매력적인)한 도시’다. 그럴 만한 이유가 그의 시야에 잡힌 모양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사연이 서려 있는 도시, 그 중에서도 ‘반구’란 이름의 동네에 살게 된 것도 묘한 애착을 갖게 한다고 했다. 여하간 울산에 대한 그의 찬사가 그리 귀에 거슬리는 것 같지는 않다.

“울산은 선사시대부터 쌓인 다양한 역사·문화 콘텐츠들, 그리고 60년대 이후 산업근대화의 중추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잉태된 자원들이 즐비한 곳이죠. 얼핏 보기엔 인프라 같은 것이 조금은 부족해 보이기도 하지만 문화도시, 창조도시로 발돋움하기 위한 잠재력은 어느 시도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광역시도 문화재단도 20돌”… 전문성·자율성 강조

울산문화재단이 출범한 올해는 묘하게도 광역시 승격 20주년이 되는 해다. 또 이를 기념하는 ‘2017년 울산 방문의 해’도 겹친다. 울산문화재단으로서는 ‘출범 원년’에 해당된다. 출범 원년에 대한 소감부터 물었다. 유의미한 답변이 돌아왔다.

“올해는 문화재단의 역사도 2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죠. 울산문화재단은 17개 광역 시·도 가운데 16번째로 만들어진 후발주자이지만 그만큼 유리한 점도 적지 않다고 봅니다. 거의 모든 문화재단들이 겪어온 공통적 시행착오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조직의 조속한 안정을 꾀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도 갖출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는 셈이죠. 개인적으론 설레면서도 부담도 크다고 해야 할까요?”

초대 대표이사란 무거운 짐을 떠맡은 데 따른 각오가 궁금했다. 포부가 대단했다.

“저는 울산에서 활동하시는 여러 예술가와 그분들의 예술 활동을 어떻게 하면 더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것인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울산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하면 더 높일 수 있는지, 그 슬기를 짜내는 데 불철주야로 고민할 것입니다.” (이 말은 박 대표가 취임사에서 언급한 발언이기도 하다.)

재단이 출범 원년에 중점적으로 추진할 업무가 어떤 것인지도 물었다. 업무를 훤하게 꿰뚫고 있어선지 답변도 시원시원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울산시에서 해 왔던 많은 문화예술 지원 업무들을 차질 없이 이어받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의 맞춤형 비전과 전략을 세우고 지속가능한 발전 토대를 구축하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겠죠.”

문화재단의 특성상 위협받기 쉬운 것이 있다. 다름 아닌 ‘재단의 독립성’이다. 그는 ‘독립성’이란 단어보다 효율경영의 관점을 담은 ‘자율성’이란 단어를 더 즐겨 쓴다고 했다.

“이 ‘자율성’은 ‘책임성’을 전제로 하죠. 재단이 책임을 지려면 재단 스스로 그만한 전문성, 즉 예술전문성과 행정전문성을 충분히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단의 자율성은 문화예술계에서도 같이 힘을 실어줘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다른 재단에서 가끔씩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이라며 자율성이 흔들리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부 균형 잃은 큰 목소리 때문에 재단이 흔들리면 재단의 ‘자율성’도 같이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재단의 ‘자율성’이란 재단과 울산시와 문화예술계 모두가 다 함께 노력하는 가운데 달성될 수 있다는 게 저의 소신입니다.”

“예술인 기업 지원, 꼭 해보고 싶었던 사업”

울산문화재단은 출범과 동시에 지난해까지 울산시나 산하단체에서 보던 업무를 상당부분 물려받았다. 울산시가 주관하던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울산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에서 주관하던 ‘문화예술교육사업’도 재단의 몫이 됐다. 박 대표는 이들 사업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펼쳐 보였다.

“새로운 전략은 ‘기업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지원 사업’의 전개입니다. 이 사업은 기업과 문화예술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기업의 특성에 걸맞은 아트 프로젝트, 체험, 강의와 같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면 이를 재단이 공모로 선정해서 지원하는 사업이죠. 다양한 형태의 문화예술교육 또한 백년대계이므로 지원정책을 지역사회의 중지를 모아 수립할 참입니다.”

내친 김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지난해 처음 수도권 중심으로 시행한 바 있는 ‘예술인 파견 지원 사업’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즉답이 돌아왔다. 자신도 무척 추진하고 싶었던 사업이며, 울산에도 당장 끌어들이고 싶은 사업이라고 했다. “예술가들을 기업에 파견해서 기업에 예술가들이 창의성을 이식해주는 사업으로 정의해도 좋겠죠.”

이 사업은 울산발전연구원 김상우 박사가 16일자 이슈리포트를 통해 적극적인 도입을 제안한 바도 있다. 박 대표는 이 사업의 도입 주체도 재단이라며 흔쾌히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올해부터 재단이 책임지고 추진하게 되는 울산의 대표축제 ‘처용문화제’에 대한 구상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가 세세한 내막까지 파악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보였다.

“처용문화제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대표축제 위상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아야 한다는 지적들을 하고 계신데, 지금 그 의견들을 귀담아듣고 있는 중입니다. 처용문화제의 본격적인 개선 작업을 위해 지역 안팎의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안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선친 가훈이 좌우명으로… ‘修人事待天命’

개인적으론 울산의 상징이랄 수도 있는 ‘고래’에 대한 애착이 대단하다.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 사이 대학생들은 얼어붙은 정국으로 인해 대부분 심적으로 억눌린 상태였고, 학생들은 당시 유행하던 송창식의 노래 ‘고래 사냥’으로 울분을 가라앉히기도 했었죠. 폭발의 상징인 ‘고래’가 울주군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 참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반구대암각화는 문화예술사적으로도 엄청난 울림이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박 대표가 어릴 적부터 마음에 새긴 좌우명이 있다. 선친께서 가훈으로 남기신 ‘수인사 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란 좌우명이다. 그러다 보니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표현보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란 표현에 더 이끌린다.

나이가 들어서는 ‘선즉통 의즉통(善(선)卽(즉)’通(통)) 의즉통(義(의)卽(즉)’通(통))이란 표현도 덩달아 좋아하게 됐다. 선하고 정의롭게 살자는 뜻이라 했다. “저는 그렇게 할 줄도 모르지만, 꼼수나 편법 같은 건 멀리하고 남의 뒤통수를 치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할까요?” 그의 알파와 오메가를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박사 과정을 밟을 때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 있다. ‘뽀로로’! 안경이 동글고 짓궂기로 유명하다고 해서 붙여진 별칭이다. 수염을 길렀을 때 산악회 동료들이 붙여준 ‘뽀빠이’란 별명도 있다. 그러나 싫지는 않다.

“동료들이 붙여준 애칭이거든요. 집사람이 산악회에 가입했을 때는 자연스레 뽀빠이의 여친인 ‘올리브’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답니다.”

한동안 마라톤에 심취하기도 했다. 동아마라톤, 춘천마라톤에 참가해 풀코스를 뛴 기록도 있다. 3년 가까이 산악마라톤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고를 쳤다. 무리한 끝에 ‘족저근막염’을 앓게 된 것이다. 등산과 여행에도 일가견이야 있지만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이 모두 마음의 사치일 뿐이다.

추천1위 책 ‘생각의 탄생’… 집필도 왕성

그 대신 독서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 ‘분야를 넘나들며 창조성을 빛낸 사람들의 13가지 생각도구를 전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의 탄생’이란 책은 직원들에게도 일독을 가장 권하고 싶은 저서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과 미셸 루트번스타인(미국 역사학자)이 같이 쓰고 박종성 번역가(전 KBS라디오 PD)가 옮기고 어어령 박사가 번역서 서문을 달았다는 책이다.

저술이라면 박상언 대표 자신 역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새해 초에는 공동저서가 아닌 단독저서 2권을 펴낼 예정이다. 현재 인쇄 과정을 거치고 있는 ‘문화재단과 리더십’, 그리고 가칭 ‘문화정책 칼럼집’이 그것이다.

최근 10년간의 학술, 연구, 저작 활동만 해도 25건을 헤아린다. 대부분은 저술 활동이다. 공동저서로는 ‘문화원형과 콘텐츠의 세계’(푸른사상, 2016. 3) 등 5건, 단독저서 또는 단독저술로는 ‘예술의 공공성과 예술지원정책의 자율성(대구예총, 2013. 6) 등 18건이 기록에 남아있다.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대전지역의 ‘중도일보’를 비롯해 ‘충청투데이’, ‘경기일보’와 국악방송을 무시로 넘나들며 칼럼 집필이나 방송 진행에 참여해 왔고 그 횟수는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새해부터 갖는 중점적인 관심은 울산지역 문화예술을 활짝 꽃피우는 일이다.

중앙대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와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석사 과정)를 거쳐 고려대 일반대학원에서 응용언어문화학협동과정(문화콘텐츠학)을 수료했다. 지난해까지는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겸임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와 미래콘텐츠문화연구원 원장 직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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