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강 황어와 통도사 홍매
황산강 황어와 통도사 홍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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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함과 지혜를 상징한다는 의미를 지녔다는 ‘붉은 닭띠 해’ 정유년 1월도 벌써 보름이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왔다가 얼어 죽었다’, ‘소한 대한 다 지나면 얼어 죽을 내 아들×도 없다’는 속담이 생겼을 만큼 추위의 극대 소한(小寒)의 절기도 마음 조렸던 것에 비하면 싱겁게 지나갔다. 연중 최저기온이 1월에 지속된다 해도 소한 이후 따뜻한 날씨는 계속되고 있다. 대한을 닷새 남짓 앞두었지만 기온의 꽃집이 앵돌아졌는지 올해 백설은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오히려 두세 차례 겨울비가 대지의 만물을 연동으로 꿈틀거리기를 재촉하는 것 같다.

한우(寒雨)에는 떼까마귀 무리도 당황한다. 서식지에서 눈보다 비의 경험이 적은 떼까마귀는 동우(冬雨) 내리는 새벽이면 날아서 나가야할지 기다려야할지 망설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겨울비 덕분에 가족과 함께하는 태화강변 나들이 발길에는 촉촉함이, 주위에는 상쾌함이 따라다닌다. 고개 돌려 시선 머무는 곳엔 마침 황설리화(黃雪裏花) 납매(臘梅)가 싱그러운 꽃잎으로 웃고 있다. ‘돌돌’ 여울 웃음에 눈길 옮기니 쇠오리는 푸른 물결 넘실거리듯 타고 줄지어 행군하고 있다. 들어난 자갈밭에는 흰목 물떼새 일곱 마리가 미동조차 없이 엎드려있는 모양새가 현재의 나라경제 같다. 서로 마주보며 고갯짓 부산떨던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이윽고 짧은 사랑을 나누고 합환의 세리머니인양 물장구를 만끽하고 있다.

‘카톡 까톡까톡’ 통도사 홍매(紅梅) 화신(花信)이 반복하는 소리로 전해졌다. 일 년 중 이맘때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식이다. 어디엔들 홍매가 없겠냐마는 통도사 홍매가 매년 사진작가들로부터 기다림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두 가지에서 그렇다. 하나는 다른 곳보다 일찍 개화하기 때문이다. 사방이 건물로 둘러싸여있어 따뜻한 기온이 일정하고 지속적인 환경 덕분이다. 다른 하나는 사찰에서 피기 때문이다. ‘불지종가 국지대찰’이라는 종교적 효과 또한 한 몫 한 것으로 여겨진다. 과학적으로 잠자는 겨울나무를 깨우려면 두 가지 조건이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기온 상승이며, 다른 하나는 충분한 수분 공급이다. 기온 상승과 충분한 수분 공급이 지속되면 싹을 틔우던 꽃봉오리를 맺는다. 통도사 홍매는 사진작가들 사이에는 ‘진(陣)을 치고 찍는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관심도가 매우 높다.

양주(梁州)는 양산(梁山)의 1413년 이전의 옛 이름이다. 양산의 이름난 것 중에는 통도사의 홍매(紅梅)와 황산강의 황어(黃魚)도 포함된다. 홍매는 붉은 꽃이 피는 매화를 말하며, 황어는 붉은 빛이 선명한 고기이다. 양산의 황어가 유명하다는 것은 『경상도지리지(1425)』가 증명하고 있다. 그 외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양산 조’의 토산공물(土産貢物), 토공(土貢), 토산(土産) 등에는 어김없이 황어가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어의 이름은 번식 시기에만 몸 색이 붉은 혼인색을 띠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황어를 지리산 사찰에서는 가사어(袈裟魚)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기 빛이 스님의 홍가사같이 붉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황어는 한 시대 양산의 토산공물으로 진상한 적도 있었다. 황산강을 통해 양산천을 찾아온 황어(黃魚)가 유명했기 때문이다. 양산 도심을 흐르는 양산천은 조선시대에는 북천(北川)으로 불렀다. 아마도 통도사 방향이 북쪽인 까닭일 것이다. 양산천은 낙동강의 지천으로 하북면 지산리 영축산에서 시작된다. 통도사를 감돌아 흐르는 물은 많은 지천과 함께하면서 동면 호포진에서 낙동강과 합수되어 부산만에서 긴 여정을 마감한다.

낙동강을 옛날에는 황산(黃山) 혹은 황산강(黃山江)으로 불렀다. 지역 강의 이름인 셈이다. 지역을 통과하는 강은 보통 ‘큰 거랑(渠梁)’으로 통하는데 비해 독자적인 이름을 갖는 것이 특이하다. 통도사의 홍매와 황산강의 황어는 무관하지 않다.

옛날 옛적 이야기다. 통도사 인근 옆마을에 봉덕각씨같이 복스러운 여아가 살았다. 불심이 돈독한 할머니는 큰절에 가는 날에는 항상 손녀를 데리고 다녔다. 큰절에는 여아 또래의 동자승이 있었다. 동자승은 큰 법당 옆 구룡지에 헤엄치는 황어를 들여다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또래는 자주 만나면서 어느새 서로를 찾는 친구가 되었다. 노(老)보살이 불공드리는 시간만큼 또래는 도량 여러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차례 보내는 가운데 또래친구는 처녀와 총각으로 성장했다.

어느 해 정월, 학승은 또래와 함께 극락전을 찾았다. 극락전 옆에는 한 그루의 붉은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다. 큰절 학인을 짝사랑한 처녀 홍매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서야 황어의 몸을 받았다. 홍매는 통도사 구룡지에 살기로 작정하고 밤새도록 튀어 올랐으나 구룡지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새벽 예불로 법당으로 향하던 학인이 구룡지 가까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황어를 발견했다. 구룡지로 향한 머리를 보고는 안타까운 마음에 극락전 매화나무 밑에 묻어주었다. 이듬해 붉은 꽃이 피었다. 학인은 처녀에게 홍매(紅梅)의 전설을 들려주었다. 황산강 양산천을 찾은 황어가 통도사의 홍매로 화현한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늙은 매화나무에 살을 붙여 보았다. 사찰관광과 생태관광 활성화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통도사와 함께 통도문화거리도 활성화되지 않을까?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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