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계란’
‘하얀 계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5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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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해 정유년(丁酉年) 벽두에 ‘국내 처음’, ‘사상 처음’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닭의 꽁무니로 빠진 것이 있다. 바로 ‘하얀 계란’이라는, 그다지 달갑잖은 새해 선물이다. 우리 정부가 이른바 ‘계란 대란’을 잠재우겠답시고 미국 아이오와 산인 계란을 ‘국내 처음’, ‘사상 처음’으로 수입하게 된 것이다.

서구인의 피부색을 닮아 더없이 새하얗다는 미국산 하얀 계란은 지난 14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기 편으로 각각 100t씩 1차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16일과 18일에도 2,3차 통관절차를 마치면 곧바로 전국 114개 롯데마트를 통해 소비자들과 만난다. 한번에 100t의 계란을 항공편으로 수송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처음 있는 사례라는 말까지 나온다. 선박이 아닌 항공기 편으로 들여오는 것은 신선도 유지를 위한 고육지책일 터이지만 ‘귀하신 몸’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 모두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의 심술 때문이어서 울화가 치민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계란((鷄卵, 달걀)에는 ‘하얀 계란’만이 아니라 ‘노란 계란’도 있다. 재미난 것은 우리 시중에 유통되는 계란 대부분이 노란 계란이란 점이다. ‘50 대 50’ 균형을 이룬다는 유럽이나 일본과는 사뭇 다른 현상이다. 하지만 195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계란’ 하면 ‘흰색’이 연상될 정도로 하얀 계란 일색이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인가 노란 계란이 서서히 대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윤주용 지도과장(농학박사)은 그 시점을 약 40년 전쯤으로 기억한다.

“노란 계란이 사랑 받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970년대 중반쯤일 겁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형편이 나아지면서 소비자 선호도가 노란 계란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설명인즉, 달걀 색깔 선호도 변화는 토종닭에 얽힌 우리 국민들의 아련한 추억과도 무관치 않다는 것. ‘장모님이 사위 생각해서 잡아주던 토종 씨암탉’ 색깔은 사실 노란색, 살구색에 가까운 ‘갈색’이었다. ‘양계(養鷄)’란 낱말에 대한 오해도 한 몫을 했다. ‘기를 養’자를 ‘바다 洋’로 잘못 알고 ‘양계’에 대한 선입견을 ‘서양 닭’ 즉 ‘洋鷄’로 그릇되게 인식했고 이것이 “노란 계란은 토종 계란, 하얀 계란은 서양 계란”이란 연상 작용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윤 박사의 부연설명에 따르면 달걀의 색깔은 유전적 특성상 깃털의 색깔을 닮기 마련이다. 그리고 영양가는 레그혼(Leghorn)종인 ‘하얀 닭’의 계란이든 미노르카(Minorca)종인 ‘노란 닭’의 계란이든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사육할 때 하얀 닭은 노란 닭에 비해 사료가 적게 들고 질병에 강한 장점은 있다. 하지만 우리네 양계 농가들은 노란 계란을 더 좋아하는 국민적 기호를 외면할 수가 없어 미노르카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1년 동안 먹는 달걀 수는 약 250개 남짓. 그런 달걀이 AI 사태로 없어서 못 사고 비싸서 못 사는 ‘계란 대란’에 휘말리면서 설 연휴를 앞둔 우리 정부로 하여금 ‘수입’이란 비장의 무기를 꺼내게 만들었다. 미국산뿐만 아니라 뉴질랜드산도 수입을 검토 중이라고 하니 웃어야 할지 물어야 할지 모를 일이다.

“달걀은 신선하고 안전한 것을 구입해서 제대로 보관하고 빠른 기간 안에 소비하는 것이 좋다.” 다름 아닌 농촌진흥청 관계자의 말이다. 달걀의 신선도 유지에는 신속한 수송과 안전한 보관, 신속한 소비가 필수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계란 수송을 무작정 항공편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 유통비용이 그만큼 비싸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처음’, ‘사상 처음’ ‘세계 처음’이라는 ‘하얀 계란’의 대량 수입! 우리 축산업의 현주소가 어쩌다 이 지경인지, 생각만 해도 답답하다. 이것도 ‘최순실 게이트’가 몰고 온 복지부동(伏地不動)이 그 원인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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