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진과 히나세
방어진과 히나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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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의 원도심이자 상징인 방어진항이 요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방어진항을 상업 기능이 결합된 관광어항으로 조성하는 ‘방어진항 어항고도화 사업’을 비롯해 ‘방어진항 원점지역 재창조사업’이란 이름으로 추진 중인 방어진항 도시재생사업, 그리고 방어진항 일대에 국제건축디자인거리를 조성하는 ‘도시활력증진사업’ 등 총사업비 620억원 규모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이 활기차게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오는 2020년까지 추진되는 도시재생사업의 세부사업으로 방어진항 일대에 100년 전 방어진 옛 시가지 모습과 일본 히나세(日生, ひなせ) 골목길을 재현하는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일본 오카야마현(岡山?, おかやまけん) 히나세는 양식굴이 특산인 전형적인 어촌이다. 현재는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비젠시(備前市, びぜんし)에 통합되어 있다.

방어진과 히나세는 100년 넘게 이어지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척박한 환경에 시달리던 히나세 어부들은 1900년을 전후해 풍부한 어족자원을 찾아 바다를 건너 방어진으로 왔다. 방어와 삼치, 고등어가 많이 잡히던 방어진항은 다양한 어업기술을 가진 히나세 어부들이 정책적으로 이주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어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921년에는 방어진에 일본어민이 3천여 명이나 거주했고 방어진항에 입항한 어선 수가 935척이나 됐다. 또 고기잡이를 위해 방어진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연간 7천∼8천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방어진항 일대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울산에서 최초로 전기가 들어왔고 여객터미널과 대중목욕탕도 처음으로 생겼다. 1928년에는 근대 어항으로 출발을 알리는 방어진항 방파제가 5년의 공사 끝에 완공되었고, 1929년에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근대식 조선소인 방어진철공소가 설립됐다. 우리 동구가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조선산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틀이 이때부터 다져진 셈이다.

당시 방어진에 살았던 히나세 사람들은 우리 방어진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히나세 어부들은 방어진에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자식들을 낳아 학교에 보냈다. 방어진에서 태어난 히나세 사람들은 대한민국 해방과 함께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돌아간 뒤에도 방어진에서 보낸 유년기를 잊지 못해 ‘방어진회’를 만들었고, 백발이 성성한 노구를 이끌고 지금도 종종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히나세의 ‘가코노우라 역사문화관’에는 방어진을 그리워하는 히나세 사람들이 수집한 방어진 옛 사진 등이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다. 방어진항은 잘 살아보자는 희망을 갖고 이곳을 찾은 일본 어부들과 방어진 주민들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희망의 땅이었던 셈이다.

구청장이 되기 전인 2002년에 방어진의 옛 역사자료를 찾고자 민간교류 차원에서 히나세를 처음 찾았을 때 히나세의 어르신들은 마치 고향의 손자가 찾아온 듯 우리들을 반겨주셨다. 이어 동구의회 의장을 하던 2007년과 구청장 취임 직후인 2014년에 또다시 히나세를 방문했고, 이때의 방문이 계기가 되어 우리 동구는 비젠시와 지난 2015년 7월에 우호협력도시 협정을 체결하고 현재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다.

아직도 방어진항 곳곳에는 방어진 사람들과 히나세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100여년 전 방어진 모습이 남아있다. 일본인들이 살았던 2층 적산가옥과 울산 최초의 목욕탕, 방어진항이 근대 어항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던 방어진항 방파제 축조 기념비 등 우리 방어진항 사람들의 근대 생활상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자산이 남아 있다. 이런 역사문화 자산을 활용해 동구만의 차별화된 문화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사업이 바로 방어진 옛 시가지와 히나세 골목길 재현사업이다.

얼마 전 이 사업에 대한 의논을 하고자 비젠시 관계자가 동구를 다녀갔다. 비젠시는 히나세 골목길에 일본식 전통가옥을 짓는 방안에 대해 적극 협조하겠다는 분위기이다. 한국과 일본의 국가 차원의 관계는 여전히 긴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방어진 사람들과 히나세 어부들이 인간적인 차원에서 쌓은 오랜 신뢰와 인간애를 바탕으로 동구와 비젠시가 이번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것도 양국의 우호협력 분위기 조성에 나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흔히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라지만, 사실은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지난 100여 년의 시간이 지금의 방어진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있는 지금의 방어진항을 보고 있노라면, 고기잡이 어선으로 번성했던 100여 년 전 방어진과 그곳에 살았던 방어진 사람들, 히나세 어부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분들이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앞으로 방어진항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동구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리라 기대한다.

권명호 울산 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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