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편지] 라라의 테마
[길 위의 편지] 라라의 테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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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귀한 이곳은 소한이 훌쩍 지났는데 기온이 불온하다. 삼월이면 이른 봄소식을 알리던 통도사의 홍매가 벌써 꽃을 피웠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고나면 설원의 풍경을 꿈꾸며 창 커튼을 젖힌다. 이번 겨울은 꼭 눈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쉬다 오자 약속한 친구는 요즘 유행하는 독감에 걸려 고생을 한 모양이다.

눈이 내게 오지 않으니 내가 눈에게로 가볼까. 이 곳 저 곳 살피다 강원도 인제에 눈이 머물렀다. 자작나무 숲, 겨울이면 항상 눈으로 덮여있던 곳, 이십 년 전쯤 아슬아슬 눈길 넘었던 미시령 고개는 여전할까. 한여름 햇볕에 걸친 옷을 다 벗고 수영을 했을 만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던 태초의 원시림이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보충 자율학습 시간에 마음 맞는 친구와 몰래 학교를 빠져나와 극장으로 향한 적이 있다. 이른 아침 조조영화관은 친구와 나 둘뿐이었다. 고성과 허허벌판을 지나는 기차 밖 풍경에 스치던 자작나무, 하얀 설경 위로 라라를 닮은 자작나무 등 뒤의 바람의 향기는 어떨까.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가는 길. 미시령 고개 옆으로 터널이 생겼고, 산골 깊숙한 경치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전원주택이나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맑고 유장한 소양강 상류 내린천 물줄기. 두메산골이란 말이 어울리던 강원도 오지 인제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었다.

도착해 한 시간여 오르는 산길이 눈길 빙판이라 그곳에서 파는 아이젠을 샀다. 오르다 보니 내려오는 사람들이 아이젠 없이 위험하게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아이젠을 벗어 준다. 등산 폴대 대용으로 사용하던 긴 나뭇가지도 주고받는다. 저 편에서 경사가 가파른 모퉁이 길을 내려오면서 옛 생각이 났는지 어르신 한 분이 비닐을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신다. 나이를 잊고 어린아이가 되게 하는 것은 하얀 눈이 하는 일.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음이 아릿하다.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상실과 박탈감마저 드는 시절, 지친 삶을 사는데 위로가 되는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따스한 눈빛 하나면 충분한 것인데 말이다.

1990년대부터 70만 그루의 자작나무로 조림 되어진 숲에는 하늘로 하늘로 끝없이 나무들이 오르고 있다. 기름기를 머금은 자작나무의 껍질은 눈비를 맞아도 부싯돌로 불을 붙일 수 있다. 그렇게 원시 조상들은 자작자작 기름 끓는 소리로 불을 붙여 추위를 녹이면 삶을 살았다. 큰 자작나무 껍질은 카누처럼 배를 만들어 타고 물고기를 잡았고 이승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자작나무 껍질에 쌓여 하늘로 돌아갔다. 천마총의 천마도, 금관의 이파리, 자작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가졌다. 하얀 표피에 까만 점, 그 아름다운 무늬가 수십 미터로 자라며 윗잎들이 해를 보게 하기 위해 아랫가지를 도태시키면서 나는 생채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신이 슬픔이나 회한 같은 것을 하나도 지니지 않은 여자였다면 그대를 이토록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요.” ‘닥터 지바고’ 영화에서 의사이며 시인이었던 지바고는 라라에게 말한다.

어느 시대에도 아픔은 있었듯 생채기로 가득했던 지난해를 지나, 조상들이 신성시 여기던 자작나무처럼 곧게 오르는 정유년이면 좋겠다. 은빛 가득한 숲에서 백석의 무끈한 시어들이 가슴을 덥힌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보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최영실 여행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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