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원칼럼] 반려견 엄마의 고백 ⓛ
[노예원칼럼] 반려견 엄마의 고백 ⓛ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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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아지 한 마리와 반려하고 있는 반려견 엄마이고 또 다른 직업은 ‘개집사’이다. 호강하고 살라고 이름을 ‘호강이’로 지은 나의 반려견에게 평생 사죄하고 살아야 할 일을 지금부터 고백하려 한다.

예전부터 동물상담사가 되고 싶었던 나는 국내에서 반려비율이 가장 높은 강아지와의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급히 입양할 아이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눈에 들어온 종은 북극곰과 하얀 여우를 섞어놓은 듯한 스피츠(spitz)였다. 거실에서 푸른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스피츠 부부를 키우던 보호자가 새끼 4마리의 가족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예쁜 아이들은 이미 입양을 가버렸고, 눈물자국이 유난히 심한 막내 호강이만 남아있기에 별 고민 없이 데려온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보호자는 손님을 배려하느라 거칠게 짖어대는 부부견을 모두 베란다에 넣어두고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견은 눈앞에서 3마리의 자식과 먼저 생이별을 한 탓인지 남은 호강이마저 잃어버릴까봐 유난스레 짖어대는 모양이 유리라도 깨뜨릴 기세였다.

부모 속 타는 줄 모르는 철부지 막내는 한 알이라도 더 먹겠다고 까치발을 하고 사료그릇에 코를 파묻고 있었다.

추억의 사진처럼 남아있는 이 생생한 기억 때문에 나는 우리 호강이에게 평생 잘해야지 하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한다. 그날이 친엄마·아빠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는 걸 나중엔 알았을 터이니까.

혈육의 정은 강아지나 다른 동물들도 충분히 느낀다. 새끼를 잃는 고통과 부모를 잃는 아픔까지도….

나와 보호자야 사정이 있어 혈연을 끊어놓았다지만 반려동물들의 눈에는 잔인하고 이기적으로만 비쳐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물행동학의 초반부를 공부하던 그때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위로했다. 너무 어리지도 않고, 어미젖도 충분히 먹고 자랐고, 사회화가 끝난 3개월짜리 아이를 데려왔으니 미안할 건 없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그 무렵에도 강아지를 입양시키는 사람들은 가장 높은 값에 팔 수 있다는 이유로 어미젖도 못 뗀 1∼2개월짜리 강아지를 시장에 내놓곤 했으니 나는 나름대로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여겼다.

다시 생각하면 무척 부끄럽고 호강이에게도 미안하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을 부모견에게는 더 크게 사죄해야 하지 않을까.

3개월짜리 강아지를 사람으로 치면 아직 유치원생인데, 한참 어미를 찾을 나이에 데려와 놓고 이걸 변명거리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으니….

당시엔 나도 강아지를 처음 만져보는데다 초행길을 찾아오느라 정신이 없어 그들에게 이런저런 배려들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무척 후회되고 스스로를 원망하는 경험이 되어버렸다. 무식한 게 죄라고, 이건 어디까지나 변명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몇 년 전에 호강이를 실수로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 집안은 초토화가 되다시피 했다.

그래도 우린 며칠 만에 찾아 다행이었지만 부모견은 평생 아이를 찾을 수 없었을 터이니, 그 타들어가던 마음을 우리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 부모견이 계속 마음에 남아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 보호자가 이사를 가야 하는데 부모견이 너무 짖어 파양을 원한다며 입양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동물행동심리에 의하면 그렇게 되는 과정이 그림으로 그려진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유 없이 새끼를 잃은 부모는 가족이라 생각했던 보호자가 정작 보호가 필요한 어린 새끼들을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무거운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고, 이는 충분히 짖음, 더 나아가서는 공격으로까지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것도 한 차례, 두 차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모성애가 갈가리 찢기는 경험을 당한 셈이니 그로선 얼마나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을까? 그런 상황에 파양까지 당하다니…. 거기에다 스피츠는 실내에서 반려하기엔 벅찬 견종이라 그 부모견이 함께 입양될 확률은 매우 적었다.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는 충격을 받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천륜과 모성애만 두고 본다면, 이는 사람이 백번 잘못한 일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사랑을 받으며 상처를 치유했을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 가눌 수 없다.

누군가 반려동물을 꼭 입양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 똑같이 놓이게 된다면 부모견과 자견들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가 가장 적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

동물행동학에 근거한 그 방법들은 다음 칼럼에 소개하겠다.

<노예원 한국반려동물상담센터 동물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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