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겨울의 ‘비발디’ 선율
이 한겨울의 ‘비발디’ 선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1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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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눈을 맞추면서 드디어 연주가 시작된다. 지휘자의 모습이 가관이다. 눈과 입은 마치 불도그가 으르렁댈 때같이 긴장감이 돈다. 연주자는 악기를 왼쪽 턱밑에 바짝 대고 가느다란 왼손가락으로 현을 짚으며 오른손으로 활을 밀고 당긴다. 서구형 얼굴에 긴 생머리를 높게 묶은 하이포니테일이라 참으로 귀엽다. 게다가 짙은 속눈썹은 한몫 더한다. 섬세한 선율에는 미간(眉間)을 찡그리면서 마치 갓난아이를 잠재우듯 한다. 목의 힘줄근은 귀밑에서 쇄골까지 선명하여 꽤나 고혹적이다.’

이 명장면은,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이 독일 국립관현악단과 협주하는 모습이다. 1548년 창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드레스덴(S. Dresden) 오케스트라다. 곡명은 이 계절에 너무나 잘 맞는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클래식 명 ‘겨울’의 작곡가 비발디(A. Vivaldi, 1678-1741)를 이 한겨울에 새삼 감상해보는 것도 감흥이 일 것 같다. 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그는, 작곡가이며 사제, 바이올리니스트로 음악의 아버지 바흐보다도 먼저 태어난 바로크시대의 거장으로 800여 곡을 후세에 남겼다.

‘사계’는 눈이라도 펑펑 내릴 것 같은 날씨에 잘 어울리는 음악이다. 연주시간 41분 동안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듯 그려낸 묘사음악이다. 14행의 소네트(단시)가 붙어있고 계절별 3악장으로 ‘빠르게-느리게-빠르게’ 구성이 매우 극명하게 대비되는 곡이다. 이 곡의 매력이란 봄과 가을은 인간에게 ‘안락함’을, 여름과 겨울은 인간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계절을 잘 묘사한 것이다.

계절별로 보자. 봄 1악장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부분이다. 높은음의 현악기들이 단순한 리듬을 동시에 연주하는데 새 소리,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시골 풍경이 떠오른다. 2악장은 양치기가 잠자는 모습 등 한가로운 전원 풍경을 비올라의 짧고 강한 음향으로 연주한다. 3악장은 요정들과 양치기들의 춤추는 모습도 상상해본다.

여름 1악장은 거친 폭풍과 바람 소리를 바이올린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여 연주효과가 아주 뛰어난 곡이다. 2악장은 더위에 지친 여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이 여름날 꾸벅꾸벅 조는 주인공의 모습을 가냘프게 연주한다. 3악장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여름의 잔인성까지 느낄 수 있다.

그것에 비해 가을 1악장은 모든 악기가 같은 리듬을 연주한다. 풍요로운 가을의 축복에 취해 술을 너무 많이 마셔버린 ‘주정뱅이’가 등장해 흥미를 준다. 2악장은 약음기를 낀 현악기의 꿈결 같은 소리로 곤한 잠을 잘 표현한다. 3악장은 경쾌한 사냥 음악이 ‘3박자’로 독주 바이올린의 긴박한 리듬을 만든다. ‘겨울’이다. 1악장에서는 떨리는 악기 소리, 안달하는 듯한 트릴이 들린다. 엄청난 바이올린의 기교, 차가운 눈보라가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듯한 착각에 젖게 한다. 잔잔하고 따뜻한 서정적인 멜로디로 겨울밤 따뜻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2악장의 평온한 겨울밤이 지나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싫은 겨울 아침이 다시금 돌아오는 3악장으로 끝을 맺는다. 최고의 속도감과 긴장감, 세련된 완급 조절과 세밀한 강약의 대비로 변화를 주고 있다.

지난해는 어느 해보다 어둡고 극도의 자괴감이 점철된 한 해였다. 어쩌면 340년 전에 태어난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 중 ‘겨울’의 싸늘하고 격정적인 선율을 보는 듯하다. 이 불후의 명곡 ‘겨울’에서 듣는 ‘너무 빠르지 않게-느리게-빠르게’의 구성음이 마치 오늘의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이제는 ‘느리게’의 암담함을 잊고 ‘빠르게’의 밝은 세상을 맞이할 때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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