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나니들의 ‘금수저 난동’
개망나니들의 ‘금수저 난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7.01.0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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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개-’란 접두사가 붙은 명사는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좋은 것이 아니고 함부로 된 것’이거나 ‘정도가 심한 것’의 뜻을 지닌다. 개꿈, 개떡, 개구신, 개망신 따위가 그런 보기일 것이다.

그러나 경상도 지방에서 들을 수 있었던 ‘개막내이’란 말은 느낌이 달랐다. 어릴 때 어머니나 누나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올 때는 그저 ‘착하고 똑똑한 막내둥이’란 뜻의 애칭일 뿐이었다. 말을 건네는 가족도 말을 듣는 막내도 그런 식으로만 받아들였다. “아이고, 우리 집 개막내이!” 하면 말을 주고받는 양쪽 모두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발음은 비슷해도 ‘개망나니’(혹은 ‘망나니’)라고 하면 사정이 180도로 달라진다. ‘언행이나 성질이 아주 막되고 못된 사람’을 욕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심한 표현에 ‘개차반’이란 말이 있다. (참고로, ‘망나니’의 본뜻은 조선시대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형집행수였다.)

요즘 들어 개망나니들의 망나니짓이 부쩍 자주 매스컴을 타고 있다. 가장 최근의 뉴스메이커는 3가지 혐의(특수폭행·공용물건 손상·업무방해)로 7일 쇠고랑을 찬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셋째아들 김동선 씨(27)다. 그는 지난 5일 새벽 서울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술에 떡이 된 나머지 종업원을 때리고 양주병을 휘두른 데 이어 경찰 순찰차의 좌석시트를 찢고 경찰관서에서도 욕설을 퍼붓고 소란까지 피웠다.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 사유서에서 “김씨가 재벌 2세로서 종업원들을 상대로 ‘갑(甲)질’ 횡포를 부려 죄질이 좋지 않고, 과거에도 비슷한 죄를 저질렀다”고 적었다. 그는 2010년에도 서울 어느 호텔 술집에서 여종업원을 추행하고 유리창을 부순 혐의로 입건 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역시 승마선수로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마장마술 단체전에 같이 출전한 최순실의 딸 정유라(21)와 ‘금메달 동기’라는 점이다.

돈깨나 있고 잘나간다는 기업가 자제들의 소위 ‘금(金)수저 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선익 이사가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다 경찰에 입건됐고, 같은 달 화장용품 중소기업 대표의 아들 임 모씨는 술김에 승무원에게 침까지 뱉으며 기내 난동을 부렸다가 경찰에 구속된 바 있다. 이밖에도 일일이 손꼽자면 한이 없을 정도다. 술 마시고 난동 부리는 것은 재벌 2, 3세들의 ‘갑질 단골메뉴’ 중 하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정유라처럼 어떻게든 대학은 나왔을 ‘알만한 양반들’이 왜들 이러실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YTN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책임과 의무가 주어지는 ‘권위’가 생기는데 이를 힘을 부리는 ‘권력’이라고 착각하는 갑의 특권의식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아들의 개망나니 짓에 김승연 회장이 대노했다는 소식이 없진 않았지만 네티즌들의 분노는 쉬 사그라지진 않는 것 같다. ‘펑튀기’란 매체가 인용한 댓글들이 참 재미있다. “부전자전이다. 한화가 아니라 ‘화나 그룹’으로 바꿔라.”/ “술집 종업원님들 어서 피하세요. 곧 아버지 ‘빠따’ 들고 찾아갑니다.”/ “이 정도면 유전과 가정환경의 환상의 콜라보(←collaboration, 협업).”/ “이 나라는 승마에 마가 낀 듯”/ “툭하면 사고치는 한화그룹…걍(그냥) 전문경영인한테 맡겨라.”/ “한화는 자식들이 항상 말썽이네. 나중에 경영자 수업 후에 어떻게 될지….” 사실 김승연 회장 역시 보복폭행 사건에 연루된 바 있고, 둘째아들 김동원 씨도 대마초를 피웠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잊힐 만하면 불거지는 재벌 2,3세들의 ‘금수저 난동’, 개망나니 짓은 도대체 어디에 연유한 것일까? 혹자는 ‘밥상머리 교육의 부재’를 꺼내기도 한다. 여하간 그들에겐 공통분모가 있어 보인다. 의식의 밑바닥에 하나같이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문화’를 방석처럼 깔고 다닌다는 사실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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