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엔 바다보다 산이 더 좋은 건 아마 추운 날씨에도 땀을 흘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겨울바다 앞에서 가벼운 옷차림은 감기를 부르지만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산에 오를 때는 가벼운 옷차림이 훨씬 낫다. 잠시 후 산 앞에서 흘릴 신성한 땀방울은 고된 일상에 지친 영혼의 눈물로 봐도 좋지 않을까. 그런 땀방울을 한 바가지 쏟아낸 후 정상에 섰을 때 기다리는 건 성취감보다는 차라리 자아(自我). 산에 오른다는 건 어쩌면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낸 자신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산을 좀 아는 사람들이 산을 오를 때 등산(登山)이라 하지 않고 입산(入山)이라 하는 건 그런 연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몸은 산을 오르지만(登) 마음은 오히려 자아를 찾아 안으로(入) 들어간다는 말이다. 해서 산은 높이가 중요하다. 뒷동산처럼 너무 낮은 산은 깊이가 없고, 너무 높은 산은 쉽게 지쳐 상념에 젖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적당한 높이의 산다운 산이 제법 있다. 경주 토함산도 그 중 하나다.
◇산세 수려한 토함산
토함산은 경주국립공원 내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45m에 이른다. 경주국립공원은 토함산을 비롯해 만호봉(522m), 단석산(827m), 입암산(688m), 금오봉(467m), 고위봉(495m), 선도산(380m), 옥녀봉(214m), 송화산(147m), 구미산(594m), 소금강산(177m) 등에 둘러 싸여 있다.
토함산은 공원 내 산들 중에 등산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산이다. 무엇보다 두 가지 루트의 등산로가 존재한다는 게 토함산의 가장 큰 장점. 등산에 능한 소위 ‘선수’들을 위한 가파른 코스가 있고, 그 반대편에는 그냥 걷는다는 느낌의 완만한 코스도 있다. 등산한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가파른 코스는 코오롱호텔 뒤편 능선에서 출발하고, 완만한 코스는 불국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선택은 자유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루트는 올라갈 때는 가파른 코스를 이용해 땀을 쫙 뺀 뒤, 내려올 때는 완만한 코스를 이용하는 것. 원래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그렇다고 가파른 코스가 상념에 젖는 걸 방해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힘들면 또 잠시 쉬었다 가면 되니 걱정 마시라. 어차피 정상은 거기 그대로 있으니.
이 코스의 가장 큰 미덕은 한참을 가파르게 올라가다 보면 지상과 점점 멀어지면서 어느덧 신선계로 들어서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다. 그 옛날 불국사를 이곳에 지을 정도였으니 산세가 얼마나 수려하겠나.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어찌나 명당인지 산을 오르다 보면 곳곳에 이름 모를 무덤들이 즐비하다. 필시 자손만대의 부귀영화를 위해 누군가의 후손들이 몰래 묘소를 만들어놓은 것이리라. 풀들이 말끔하게 정리된 게 이름만 없을 뿐 분명 지난 추석 때 자손들이 올라와 도둑차례를 지내고 가지 않았을까.
그런 무덤들을 몇 개 지나고 나면 이제 곧 정상이다. 토함산 정상은 주변 풍광이 좋기로 원래 유망하다. 정상에 서면 경주국립공원을 이루고 있는 다른 산들과 봉오리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굽이치는 깊이로 따지면 지리산 정상 못 지 않다고 자부한다. 정상에서 속세를 내려다보며 새해 각오를 다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제 하산길이다. 내려가는 길로 완만한 코스를 이용하는 게 좋다는 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가파른 코스의 경우 경사가 제법 있어 정상에 서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건 당연지사. 때문에 그 상태에서 다시 가파른 코스로 내려가는 건 자칫 위험할 수 있다. 또 완만한 코스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기다리고 있어 하산길이 더욱 즐겁다.
중턱에 위치한 석굴암을 비롯해 점점 내려갈수록 군것질할 거리들이 많으니 다시 속세로 들어가는 여정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하산한 뒤에는 호텔 사우나에 들리는 센스까지 발휘해보자.
◇심신 달래는 자연휴양림
토함산 주변에는 다양한 부대시설이 많은데 그중 추천해주고 싶은 곳으로 ‘토함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토함산 자연휴양림은 토함산 동쪽 기슭 산림에 위치한 121ha 규모의 휴양시설로, 경주시가 직접 운영하는 숲 속의 집, 산림 휴양관, 야영장, 체육시설을 비롯한 숲길, 삼림욕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동쪽으로는 감포 해수욕장, 양남 주상절리, 양북 문무대왕릉, 서쪽으로는 불국사, 석굴암, 보문단지를 연결하는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문화체험과 휴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숙박시설로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데다 23개실의 숙박시설 숲속의 집과 40개의 야영데크, 숲 체험장 등 다양한 힐링공간이 마련돼 있어 캠핑 족이나 가족 단위 이용객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체 수용인원은 숙박시설 포함, 일일 500여 명 정도다.
이와 함께 토함산 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 속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와 등산로, 삼림욕장을 포함한 다양한 숲길코스가 마련돼 있어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다. 더욱이 다양한 침엽수와 활엽수가 자생하고 다람쥐, 딱따구리 등 각종 야생 동·식물들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어 자연체험학습장과 휴양지로 그만이다. 이상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