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 넘으면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나이 60 넘으면 베푸는 삶을 살아가야…”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7.01.03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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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오 울산시티병원 원장
 

지난해 12월 하순, 올해 8순에 접어든 정석윤 울산시 효도회장으로부터 2장짜리 서신을 받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야기로 시작된 정 회장의 서신은 입원치료를 받았던 병원 측의 친절한 보살핌에 감사하는 사연으로 가득했다. 서신에 따르면 정 회장이 교통사고를 당한 것은 12월 15일 오후 북구 오토밸리로의 죽전삼거리 근처에서였다. 신호대기 중이던 정 회장은 과속으로 달려오던 가해차량에 부딪혀 온몸에 타박상을 입은 채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북구청 맞은편에 있는 울산시티병원이었다. 정 회장은 이 병원 515호실에 입원해 있다가 이주일 만에 퇴원했다. 그는 서신에서 “가족처럼 친절하게 돌보아주신 시티병원 여러분의 도움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며 담당의사인 박영수 부원장과 간호사, 물리치료사, 그리고 원장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직원 세뱃돈 일일이 건네는 따뜻한 ‘원장님’

지난달 31일 오전, 병원은 토요일인데도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조현오 원장(71)은 이날도 수술대에 매달리느라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잠시 기다리는 사이 김민하 원무과장이 설명을 거들었다. 이른바 ‘신상털이’가 시작된 것.

“수술환자를 하루 4명에서 8명은 만나실 겁니다. 우리 병원에서 집도(執刀) 횟수가 가장 많은 분이지요.” 정형외과 전공의로서 부산 백병원 과장, 울산 동강병원장도 거쳤지만 수술환자는 요즘 제일 많이 접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고도 했다.

김 과장은 조 원장이 2008년∼2012년 사이, 체재비까지 지원해주면서 선천성 장애를 가진 의료 빈국(貧國) 어린이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준 이야기도 같이 전했다. “몽골,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나라의 어린이들인데, 그곳의 의료 수준은 우리나라의 70년대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직원들 사이에 그냥 ‘원장님’으로 불리는 마음 따뜻한 조 원장의 얘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엔 12년 전(2005년)으로 거슬러 오르는 세뱃돈 얘기에 대한 귀띔이다. “봉투에 직원들 이름을 일일이 적어 손수 나눠주셨지요.” 처음에 1천원씩이던 세뱃돈은 해마다 1∼2천원씩 액수가 점점 불어나고 있다고 했다.

의료빈국 어린이 무료치료… 교과서에 실리기도

30분쯤 지났을까. 수술을 마쳤다는 전갈이 왔다. 잠시 휴식 중인 조현오 원장의 진료실로 들어섰다. 객(客)을 맞이하는 것은 조 원장 특유의 온화한 미소다. 미리 알아본 예비지식을 활용하기로 했다.

천주교의 영세명(=본명)이 무엇인지부터 물었다. “저는 ‘바오로’이고 사목회장 맡고 있는 집사람은 ‘세실리아’이지요.” 신앙생활 50년째라는 조 원장이 부인 김성숙 여사(68)와 함께 다니는 성당은 남구 신정동의 종하체육관 바로 아래 월평성당이다.

조금 전 원무과장에게서 들었던 외국 환자들에 대한 무료진료 얘기를 짐짓 꺼냈다. 직접 듣고 싶어서였다.

어린이 환자들의 모국은 그밖에도 더 있었다. 캄보디아, 스리랑카, 베트남, 중국에 이르기까지…. 일찍이 맺었던 한-몽 친선 자매결연이 인술(仁術)의 싹을 틔워준 계기였다. 그 당시는 환자 체재비만 1인당 3천850만원 정도였다니 햇수에다 사람 수까지 곱한다면 엄청난 액수가 나올 게 분명했다.

이러한 베풂(인술봉사)이 조 원장의 신앙생활 즉 기독교정신과 관계가 있는지 궁금했다.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종교적이라기보다 삶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게 천국 가는 지름길 아닐까요?”

그는 그의 손길을 거친 숱한 환자들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곤 했다. ‘앉은뱅이’처럼 걸을 수조차 없어 인생을 포기하고 살아야만 했던 선천성 장애자들이 거뜬히 나은 몸으로 ‘인생역전(人生逆轉)의 드라마’를 써 가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조 원장의 쉼표를 모르는 의료봉사는 신문지상을 거쳐 중학교 ‘국어 1-2’ 교과서(비상교육 발행)에 실리기도 했다.

다음은 교과서에 실린 신문기사의 일부. <선천성 질병으로 지금껏 제대로 걷거나 뛰어본 적이 없는 몽골 소녀 2명이 울산에 있는 한 병원의 초청으로 한국에서 수술을 받고 새 희망을 찾게 되었다. 지난 2일 낯선 한국을 찾은 바흐스 붓탄(9) 양과 자르한 오윤자르갈(14) 양이 그들이다.…자르한 양은 “지금까지 체육 시간에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해 슬펐는데, 이제는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 정말 기쁘다.”라며 자신을 치료해 준 병원 측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외국 어린이 환자 가족과 조현오 원장이 함께 찍은 기념사진. 사진제공=울산시티병원

별명 ‘행복 전도사’… “시한부 인생 대신 順命”

국내에서는 무의촌 진료도 열심히 했다. 7∼8년 전만 해도 무의촌이나 다름없었던 울산 북구 일원, 그리고 경주 입실과 양남, 양북이 주된 무대였다.

의료 빈국 어린이 환자 무료치료나 무의촌 진료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조현오 원장의 주견은 뚜렷하다. 지나치게 ‘물질’에 매달리지 않고 내 주관대로 살겠다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다. “부산 인제대에서 강의할 때도 자주 한 말이지만, 어떤 의사든 개업하고 5년쯤 지나면 가진 것(재산 상태)은 거의 똑 같다고 생각해요.”

인제대 부설 부산 백병원의 부교수와 교무부학장을 역임한 그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대단한 자신감으로 들렸다. “세월 지나고 보니 참 잘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남는 것은 남에게 베푼 데 대한 보람 같은 것이라 할까요? 베푼다는 건 참 아름다운 것이지요.”

가훈(家訓) 이야기도 술술 나왔다. 참되게 사는 것, ‘참 삶’이라 했다. 슬하의 1남 1녀도 이 가훈을 마음에 새기고 자랐다. “자식들도 재산 물려받을 생각, 안 하고 있을 겁니다.” 이러한 가훈이 귀에 익었을 따님의 배우자는 울산방송(ubc)에 근무하는 윤주홍 씨다.

‘별명’은 그 사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거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넌지시 물었다. 본인의 별명이 무엇인지? 재미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행복 전도사’라고 했다. 그리고 부연설명이 따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것이 재능이든 생명이든….”

계속 이어진 ‘행복 전도사’의 말씀은 듣는 이로 하여금 숙연한 느낌을 갖게 했다. “나이 60이 넘으면 누구에겐가 베푸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저 같은 의사라면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해 베풀다 가야겠지요.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이니까요.”

‘시한부(時限附) 선고’를 받은 말기 암환자에 대한 생각도 색깔이 선명했다. “몇 달 더 살아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느님 뜻대로 순명(順命)하면서 사는 게 인간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말로 들렸다.

서울의대 출신, MTV도 즐기는 스포츠마니아

젊을 때의 취미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워낙 바쁘다 보니 취미는 그저 마음의 사치일 뿐이다. 그 대신 자주는 못하지만 산악자전거(MTV)를 이따금씩 즐긴다. 적(籍)을 둔 정도이지만 36개 단위클럽으로 구성된 ‘울산산악자전거연합회’ 고문직을 5년 가까이 맡아오고 있다.

구기 운동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견하고 싶은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하다. 한때는 윈드서핑, 요트에 스키, 승마를 즐기기도 했다.

안태고향은 경남 진주이지만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의과대학을 거쳐 서울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의학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인공관절, 소아정형, 지체장애(소아마비)교정이 전공 분야에 속한다. 외국 연수 과정도 화려하다. 미국 하버드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보스턴 소아병원, 뉴욕 코널대학 특수병원 연수를 거쳤다. 독일 함부르크대학, 파리 제4대학, 스위스 베른대학 단기연수도 거쳤다.

울산에서는 울산시의사회 부회장과 울산근로복지공단 자문의를 역임하는 등 10가지에 가까운 다양한 직함을 가져보았고 2008년엔 울산시가 주는 ‘사회봉사 대상’, 2011년엔 대한의사협회가 주는 ‘보령의료봉사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필력 또한 보통 수준이 넘는 조 원장은 2015년 4월 그의 저서 ‘사랑은 강물처럼’을 펴내기도 했다. 지역신문이나 울산시의사회지, 또는 병원 홈페이지에 올린 칼럼·기고문들을 모아 엮은 일종의 칼럼집이다.

그러나 그의 본령은 성직과도 같은 의사란 직함이다. 그리고 그의 전공 분야는 재활(再活) 즉 원상으로 돌리는(Return) 일이다. 병원 본 건물 바로 근처에 최첨단 로봇치료기까지 갖춘 ‘울산시티재활병원’(일명 ‘울산시티 제2병원’, 196 병상)의 문을 연 것도 그의 소명의식에서 비롯된 일이다.

“정식 개원식은 체계를 제대로 갖춘 뒤 가질 겁니다.” 조 원장은 그 시기를 오는 3월로 잡고 있다고 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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