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은 남아있는가?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은 남아있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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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보름 전에 ‘판도라’ 영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민들이 같이 보러 온 것 같았다. 현장감 있게 잘 만든 편이어서 보는 내내 긴장감이 넘쳤다. 우리 재난영화도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주 지진에 따른 고리1호기 핵발전소 원자로의 멜트다운, 아무런 대책 없이 더 위험한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잘 다루고 있었다.

지금 폐로 과정을 겪고 있는 고리1호기를 영화의 소재로 활용했고, 이 영화를 무려 4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핵발전소에 대해 다룬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다큐인지 영화인지 보는 내내 왔다 갔다 했다. 방사능 오염을 피해 고속도로를 뛰어가는 장면은 한순간에 우리나라가 좀비 세상처럼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고리 핵발전소 근처에 수많은 인구가 동시에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사실이 실감 있게 다가왔다.

좀비영화가 <부산행>이라면 핵발전소 사고 영화는 혹시 핵발전소가 없는 곳 <서울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문제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사고가 생긴 미국, 러시아, 일본보다 국토가 훨씬 좁아서 핵발전소가 터지면 피난할 곳도 없는 좁은 나라라는 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는 점이다. 원자로가 터지는 순간부터 눈물샘도 터져 마구 쏟아 붓는 냉각수처럼 줄줄 타고 흘렀다.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생생한 회한이 쫘악 몰려왔던 모양이다.

전에 <연가시>를 만든 박정우 감독은 끊임없는 회유와 협박을 받았고, 한국수력원자력이 생각보다 참 크고 강한 기관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영화 제작 자체를 언론에 드러내지 않고 준비했지만 한수원과 정보기관이 시나리오 내용을 알아내려 애썼다고 한다. 판도라를 포기하고 원전 홍보영화를 만든다면 수백 억 원을 대겠다는 회유도 받았다고 했다. 이를 거부하자 영화 크랭크인 직전엔 제발 폭발만 시키지 마라는 제안이 들어왔다고도 했다.

박 감독에 따르면 영화 촬영에 비협조적이다 보니 결국 핵발전소를 모두 세트장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세트를 넓은 부지에다 만들었지만 보이는 부분 말고는 CG(컴퓨터그래픽)로 메워야 했다. 건물 내부는 열병합발전소 등을 어렵게 섭외했지만 촬영 직전에 불허 통보를 받기도 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현재 ‘전기누진세’ 소송에 걸려 있다. 소송의 쟁점은 주택용 전력에 대해 누진제를 적용한다고 명시한 한전의 약관이 불공정한지 여부다. 알다시피 누진제는 사용량에 따라 6단계로 나눠 전기요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식이다. 100KW 미만 KW당 60.7원인 1단계 단가에서 500K 이상 KW당 709.5원인 6단계 단가까지를 살펴보면 전기요금 단가가 11배 이상 높게 적용된다. 대기업에는 78원(발전원가 90~100원 수준)에 팔고 있으니 1단계를 웃도는 수준이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는 전기를 많이 쓸수록 요금단가가 크게 오르는 누진제를 주택용 전력에만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또 소비자들이 한전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한 약관에 따라 전기를 공급받고 있어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전기를 대량 소비하는 대기업이 싼 전기세로 특혜를 얻고 있는 마당에 국민이 아무리 노력해도 에너지 절감 효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한전 측은 공익 실현을 위해 누진제는 불가피하다고 맞선다. 아울러 저소득층을 배려하고 전기 낭비를 억제하려면 누진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작년 한파에 혼자 사는 노인이 춥다고 전기히터를 켜고 살았더니 3만원 안팎으로 나오던 전기료가 25만원이나 나와서 이불을 둘러쓰고 산다고 하니 저소득층을 위한 배려라는 말도 무색해진다.

우리는 한수원이 전기를 직접 생산한다고 착각하지만 전기독점 유통판매상에 불과하다. 여러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전력거래소(KPX)에서 사서 한수원으로 넘어오는 전기를 주택이나 공장에 판매한다. 그러나 한수원은 꿈의 직장이다. 한수원은 2015년 기준으로 신입사원 기준 평균연봉이 약 3천500만원 수준이다. 한 해 평균 500명 안팎으로 뽑는데 전체 근로자 수는 약 1만명으로 추산된다. 오래 근무할수록 연봉이 상승하므로 직원들의 평균연봉은 무려 8천만원이고, 평균 근속년수가 15년에 이른다.

한수원이 지출하는 광고비는 놀랍게도 매년 50억원 수준이다. 이 돈들은 원가 수준 이하로 파는 농사용, 산업용을 제외한다면 누진세를 부담하는 국민들의 쌈짓돈으로 지불되는 것인데, 국민은 전기세는 비싸게 내고 더 불안한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셈이다. 핵발전은 점차 줄여야할 사업인데 옷을 안 벗으려고 광고를 수십억대로 집행하는 것은 아닌지? 전기를 더 팔 것도 아닌데 한수원이 뭐하려고 광고를 하느냐는 주장하는 측이 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원자력 발전이 위험하고 지진 등으로 폭발사고가 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고 언론사의 비판적인 기사를 막기 위해 많은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 남았다고 여겨지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부여잡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새롭게 깨어야 한다. 한수원 주장대로라면, 세계적인 추세가 그 싼 핵발전을 서서히 멈추고, 몇 배 비싼 태양광, 풍력발전으로 가고 있으니 그들이 미쳤거나 우리가 미쳤거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판도라 영화나 한 번 보시라 권하고 싶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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