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면 보고 싶은 친구들
연말이면 보고 싶은 친구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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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떡’ 외치는 소리를 고요한 밤에 듣노라면 찾아보고픈 추억 속의 친구들이 문득 생각난다. 친구란 찾아 헤매는 대상이 아니라 마지막에 남는 존재들이다. 내가 행복할 땐 내 행복이 싫은 사람들이 떠나고, 내가 아파할 땐 날 위로해 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멀어진다. 그래서 진정한 나의 모습으로 살면 자연스럽게 남는 존재들이 바로 친구란 생각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속의 酒食兄第千個有(주식형제천개유), 急難之朋一個無(급란지붕일개무)란 “술과 밥을 함께 할 형제 같은 친구는 천 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기꺼이 돕는 친구는 한 명도 없더라”는 말이다. 평소에 밥 잘 사주고 술 잘 사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따르지 않을 사람은 이 지구상에 아마도 없을 것 같다.

그의 주위에는 언제나 그의 비위를 맞추며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입에 혀처럼 상냥하고, 아무리 늦은 시간일지라도 부르면 달려가는 친구들인지라 친형제라도 이보다 더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위급한 지경을 만나 재산이 모두 날아가고 형편이 곤란해 주변에 손을 내밀고 도움을 요청하는 신세가 되면, 구름처럼 몰려들던 그 많은 친구들은 속절없이 떠난다. 이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주식(酒食)의 환대 때문이라면 그것이 끝날 때 친구관계는 자연히 사라지는 법이다. 권력 때문이라면, 그가 실각(失脚)하는 순간 끝이다. 그 사람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이익 때문이라면, 그 이익이 사라질 때 모든 관계는 끝이 난다. 이러한 관계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고립무원에 빠진 박대통령 측근들의 행보들이 이를 방증(傍證)한다.

그러나 세상 친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진정 그 사람이 좋아서 만난 친구는 그 사람이 어떤 위난에 처해도 우정은 변하지 않는다.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관중과 포숙이 그러했으며, 삼국지의 유비와 그의 의형제 관우, 장비가 그러했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이 치열할 때도 이항복과 이덕형은 한결같은 우정으로 세상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게 되었다.

술 마시고 밥 먹는 친구가 많음을 기뻐할 일이 아니다. 내가 힘들 때 또는 친구가 어려울 때 진심으로 서로 돕고 아껴주는 친구 한두 명만 있어도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은 무수한 인연(因緣)을 맺고 살아간다. 그 인연 속에 고운 사랑도 엮어가지만 그 인연 속에 미움으로 엮어지는 것도 있다. 고운 사람이 있는 반면 미운 사람도 있고, 반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외면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고운 인연도 있지만 피하고 싶은 악연(惡緣)도 있는 것이다.

우린 사람을 만날 때, 반가운 사람일 때는 행복함이 충족되어 온다. 그러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는 그다지 반갑지 않아 무료함이 몰려온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에게 괴로움을 주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과연 나는 남들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 주었는지 곱씹어보는 반성의 시간도 절실해 보인다.

이제라도 한번 만나면 인간미 넘치는 사람이어야겠다. 한번 만나고 난 후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진솔하고 정겨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한다면 나는 분명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이런 사람이야말로 다시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한번 만나고 나서 좋은 감정을 얻지 못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불행을 안겨 주는 것이다. 언제든 만나면 반가운 사람으로, 언제든 만나고 헤어져도 다시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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