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민심이 낳은 사자성어들
촛불민심이 낳은 사자성어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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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록 제조기 ‘최순실 게이트’는 재미난 기록도 무궁무진하게 쏟아내고 있다. 그 중의 하나에는 촛불민심이 낳은 사자성어(四字成語)도 들어가 있다.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1∼3위는 하나같이 촛불민심이 낳은 것들이다. 조사대상 대학교수의 선정 기준은 알려진 바 없지만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해마다 세밑을 앞두고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설문조사로 뽑아오고 있다.

‘2016 올해의 사자성어’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쳤다. 교수신문은 지난 20∼22일 사이 전국의 대학교수 611명의 의견을 설문조사로 물었다. 그 결과 1위는 육영수 중앙대 역사학 교수가 추천한 군주민수(君舟民水, 32.4%, 198명)가 차지했다. 2위는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추천한 역천자망(逆天者亡=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자는 패망하기 마련이다, 28.8%, 176명), 3위는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가 추천한 노적성해(露積成海=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 18.5%, 113명)가 이름을 올렸다. 이밖에도 빙공영사(憑公營私=공적인 일을 핑계로 사익을 꾀함), 인중승천(人衆勝天=사람이 많이 모여 힘이 강하면 하늘도 이긴다)도 최종후보로 올랐지만 3위권에는 들지 못했다. 하지만 둘 다 최순실 게이트와는 유관하다.

대표적으로 군주민수(君舟民水) 하나만 뜯어보자. 이 사자성어에서 군(君)은 임금, 민(民)은 백성을 가리키고 군주(君舟)는 ‘임금은 배’, 민수(民水)는 ‘백성은 물’이란 의미이다. 금세 해답이 나올 것 같다. ‘군주민수’를 추천한 육 교수는 “역사를 변화·전진시키는 첫발은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촛불을 나눠 밝히려는 권리선언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민주공화국의 세상에는 더 이상 무조건 존경받아야 하는 군주도 없고 ‘그 자리에 그냥 가만히 있는’ 착하고도 슬픈 백성도 없다”고 설명한다.

촛불민심은 탄핵정국 속에서 왜색 짙은 전문용어(?) ‘코스프레(コスプレ)’도 유행시켰다. 혀가 짧아 영어발음에 서툴 수밖에 없는 일본인들은 영어를 곧잘 자기네들 혀 길이에 맞게 변조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짝퉁 대가들이다.

코스프레란 일본어식 영어 ‘의상’을 뜻하는 코스튬(costume)’과 ‘놀이’를 뜻하는 플레이(play)의 합성어인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란 영어가 그 뿌리다. 더 줄여 ‘코스플레이(cosplay)’라고도 하지만 우리 정부에서 권장하는 순화 용어는 ‘의상 연출’, ‘의상 연기’이고, 다듬은 말은 ‘분장놀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캐릭터, 혹은 인기 연예인들의 의상을 꾸며 입고 놀거나 전시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울산에서는 ‘애니 만화학원’을 운영하는 장지연 화백이 1년에 한 번 청소년들을 불러 모아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코스프레’의 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탄핵정국 속에서 ‘코스프레’가 고개를 내민 쪽은 주로 정치권이다. ‘연출’ 또는 ‘연기’란 말에서 의미차용을 했는지 비아냥거리는 말투에 곧잘 인용되곤 한다. 다음은 실제사례들로, 그 하나는 지난 23일 민주당이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국회의원 30여명이 대거 탈당해 가칭 ‘개혁보수신당’을 만들겠다고 하자 날린 말 펀치다. 즉 “국정교과서와 한일위안부 협정, 재벌·검찰·언론 개혁 등 주요 개혁과제에 비박이 동참하지 않으면 ‘혁신·개혁 코스프레’나 하는 ‘짝퉁’으로 낙인찍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날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이 서울 동작구 대방동 영구임대주택단지를 찾았을 때 어느 입주자가 날린 말 펀치다. 그는 몇 차례 ‘과잉 의전’ 구설수에 오른 황 총리를 향해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지 말라”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황 총리는 “미안하다. 죄송하다. 오해다”라는 말로 다독거리려 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여하간 촛불민심과 탄핵정국은 ‘사자성어 유감’이란 말까지 나오게 만드는 것 같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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