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이나 지역공동체 활성화 조례라도 만들었으면”
“마을기업이나 지역공동체 활성화 조례라도 만들었으면”
  • 김미선 기자
  • 승인 2016.12.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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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령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장
▲ 박가령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장이 중소기업제품전시관에 전시된 마을기업 제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미선 기자
6년 내리 우수마을기업 배출한 ‘强小조직’

‘작지만 강한’이란 뜻으로 곧잘 쓰이는 표현에 ‘강소(强小)’라는 용어가 있다. 비슷한 뜻으로는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이라는 경영학 용어가 쓰인다. 독일의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이 자신의 저서 제목으로 처음 사용했다는 그의 신조어인 셈이다. “강소기업이 힘이다”라는 말 속의 ‘강소기업’은 ‘히든 챔피언’의 동의어나 다름없다.

‘강소(强小)’라는 용어가 어울리는 기관과 사람이 있다. 작은 조직에 속하는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과 아담하면서도 다부진 체구의 박가령 단장(48)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작은 고추가 더 맵다’는 우리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마을기업지원단의 일꾼은 박 단장을 포함해서 단 세 명뿐이다.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도 고작 1억2천만 원 수준이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일들을 엄청나게 해냈다. 올 한 해에 이룬 업적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2010년 10월 울산발전연구원에 첫 둥지를 튼 마을기업지원단이 그동안 거둔 성과는 실로 ‘눈부신’ 것이었다. 한 지역(울산)에서 ‘우수마을기업’을 6년 내리 배출했다는 것은 아무나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덕분인지 ‘울산경제진흥원 마을기업지원단’이라면 중앙정부에서 더 알아준다. 올해는 전국 17개 광역시·도 마을기업지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6년 마을기업 지원기관 평가’에서 4위를 차지해 행정자치부 장관 상을 거머쥐는 영예도 안았다.

전국에 ‘작은 고추’의 매운 맛을 톡톡히 보여주고 돌아온 셈이다.

그런저런 이야기도 전해들을 겸 지난 16일 오전 북구 진장동 울산경제진흥원 1층 로비를 찾았다. ‘진흥원 1층 로비’라면 기업민원처리센터와 마을기업지원단의 사무실, 그리고 중소기업제품전시관과 비즈니스카페가 있는 곳이다. 이 모두 박 단장의 체취가 흠씬 배어 있는 기획 작품이라 해서 틀린 말이 아니다.

‘썰렁한 공간’을 ‘온기 물씬한 공간’으로

놀라운 변화의 바람은 2016년 1월 1일, 병신년 초입부터 불기 시작했다. 올해 1월 1일이라면 마을기업지원단이 소속을 같은 건물의 울산발전연구원에서 울산경제진흥원으로 바꾼 시점이다. 변화는 그 이후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진흥원 1층 로비’는 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그저 썰렁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간일 뿐이었다. EQ(감성지수=Emotional quotient) 높은 박가령 단장으로선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사람 냄새와 온기 물씬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다. ‘문턱 없는 행정’을 꼭 실현시키고 싶었고, 그래서 일 욕심을 냈고, 마침내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내부의 반대 기류를 찬성 기류로 돌리는 데는 끈기와 설득력이 필요했다. 2층의 사무공간을 1층으로 옮기고 꾸미는 일이 어디 생각처럼 쉬운가? ‘예산 문제’라는 가장 큰 걸림돌도 치워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시간은 그녀의 편이었다. ‘분리 독립(?)’을 기어이 성사시키고 만 것이다.

“그 전까지만 해도 사업이나 일자리 문제로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 사실 참 많이 부담스러워 하셨죠.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딱딱한 1층 분위기가 질리게 만들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너무너무 좋아들 하셔요.”

각별히 심혈을 기울인 공간은 중소기업제품전시관과 그 속의 작은 무대, 그리고 비즈니스카페였다. 전시관은 행정자치부 소관 마을기업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소관 사회적기업, 기획재정부 소관 협동조합, 보건복지부 소관 자활기업 제품도 똑같이 전시할 수 있도록 꾸몄다. 이른바 ‘사회적경제기업 4총사’가 한자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일부러 배려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담을 청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2층에 갇혀 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변화다. 상담에 들어가면 마을기업만 소개하는 일은 없다. 4가지 사회적경제기업의 장·단점을 일일이 설명한 다음 선택은 민원인에게 맡긴다. 4가지 모두 ‘공동체 의식’이란 공통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전시관’으로 탈바꿈한 1층 제품전시관

1층 로비 중에서도 박 단장의 손때와 애정이 가장 많이 묻은 공간이 하나 있다. 제품전시관 속의 ‘작은 무대’다. 이 공간은 매월 ‘문화가 있는 날’(마지막 수요일) 점심나절이면 요긴하게 활용된다.

‘작은 무대’가 첫 공연의 테이프를 끊은 때는 제품전시관 개관(7.26) 한 달이 조금 지난 8월 31일 점심나절. 이날 ‘태화강시낭송협회’ 회원들이 마련한 ‘시낭송 음악회’는 신기한 표정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관객의 절반은 경제진흥원 건물에 입주한 12개 기관 소속 임직원들로 보였다.

관객이 차면 객석이 모자란다. 제품전시관에는 의자 60개, 탁자 12개가 갖추어져 있고, 공연의 막이 오르면 회의용 탁자도 객석의 일부가 된다.

그 이후 작은 무대 공연은 11월 마지막 수요일까지 세 차례 더 있었다. 피아노 3중주(마을기업 ‘한맘 디자인한복’), 소비자 연극(‘울산 전원일기’, 울산시소비자센터), ‘박철수의 발라드 색소폰’(현대자동차 소재1부)이 그것이다. 수요일이 다섯 번 있는 11월 셋째 수요일엔 김선규 전 울산산업대학원장을 모셔와 ‘브런치 토크’란 이름으로 특강 시간을 갖기도 했다.

공간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박 단장은 ‘제품전시관’을 ‘작품전시관’으로 돌려놓는 일도 성사시켰다. 작품전을 매월 열기로 한 것이다. ‘울산12경 서체 디자인과 콜라보 작품 전시(8.29∼9.23), 울산대학교 창작학회 시화전(9.26∼10.21), 심전 정영숙 작가 초대전(10.24∼11.25), 문죽 박서영 작가 초대전(11.28∼12.23)은 이미 테이프를 끊은 전시회다. 울산재능시낭송협회의 ‘시낭송 콘서트’(12.28)와 김남효 사진작가의 사진전 ‘까마귀 날다’(12.26∼2017.1.20)은 송년 전시·공연거리로 남겨두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같이 지닌다.

어찌 보면 제품전시관은 지역 작가의 등용문과도 같은 소중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박 단장은 그런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우리 울산엔 기업체가 많고 취미동아리도 참 많잖아요. 그런데도 마땅한 전시공간이 없어 안타까워하세요. 그런 분들의 갈증도 같이 풀어드리고 싶었어요.”

공연과 전시를 5개월 남짓 끌어오는 동안 울산경제진흥원의 대외적 이미지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부드러워진 것이다. 입주기관 가족들의 정서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행정스러운’ 티가 사라지고 향연에 젖어들 줄 아는 문화예술 마니아들로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외적 인식이 너무 강했다고나 할까요. 13년도 더 넘게 텅 비어 있었으니까요.” 1층 로비의 놀라운 변모가 대표적 입주기관들의 이미지를 동시에 바꾸는 효과도 가져왔다는 게 박 단장의 귀띔이다. “그동안 외부인 중에는 울산발전연구원을 ‘울산발전진흥원’으로, 울산경제진흥원을 ‘울산경제연구원’으로 혼동하는 분도 더러 계셨는데 지금은 안 그런가 봐요. 마을기업지원단이 울산경제진흥원 소속이라는 것도 잘 알려지게 되었고요.”

원주가 고향…십리대숲 매력에 푹 빠져

박가령 단장. 그녀의 사전에 ‘소극적’이란 단어는 없다. 치악산 정기를 받아서인지 매사에 적극적이고 포기를 모른다. 특히 ‘마을기업 활성화’ ‘공동체 활성화’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러한 집념과 열정이 울산의 마을기업들을 6년째 ‘명품’으로 만들어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공을 들이는 대상이 있다. 전국마을만들기네트워크, 귀농귀촌 단체, 6차산업 단체, 전국마을기업 지원기관 활동, 주민공동체 봉사활동(지역 환원) 등으로 모두 마을기업 지원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울산시에 대한 바람도 있다. “우리 시가 마을기업이나 지역공동체 활성화 조례라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마을기업 지원 전체사업비가 1억 원 남짓밖에 안 돼 사업기획부터 강의, 상담, 컨설팅, 판로 확대, 박람회 참여와 같은 다양한 일을 최소한의 경비만으로 해결해 왔거든요. 그러누 지가 6년이나 되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실이 그렇다. 이제는 마을기업이 마을공동체 활성화나 지역사회 일자리 창출에 보완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가시적 실적이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 지원조례라도 만들어 마을기업지원단 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준다면 얼마나 더 큰 힘이 생기겠는가.

박 단장은 주말에 여유시간이라도 생기면 산책을 즐긴다. 남구 번영로(신정5동) 자택에서 십리대숲까지 걷다 보면 일주일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지고 새로운 구상이 샘솟듯 솟아난다.

매력을 너무도 잘 알기에 다른 지역의 마을기업 관계자들이 울산을 찾을 때 방문 코스에 십리대숲을 빠뜨리는 일은 거의 없다. 반응도 열광적이다. 독서도 즐긴다. 관련업무 서적을 주로 읽지만 경제·인문·철학 서적도 제법 선호하는 편이다. 한때는 테니스에 푹 빠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호사는 엄두 밖이다.

친정은 춘천 퇴계로로 옮겼지만 본디 고향은 강원도 원주다. 그런 연으로 한동안 강원도에 뿌리를 둔 동부그룹 계열기업에서 과장직에까지 오르기도 했다. 울산에 터를 잡은 지는 올해로 38년째. 의약외품 제조 기업을 경영하는 울산토박이 남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현재 일본국제대학교 ‘국제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다.

부산 동의대학원 평생교육학 박사과정을 수료하면서 ‘평생교육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2013년에는 우수마을기업 육성의 공로로 행정자치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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