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冬至) 이야기
동지(冬至)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20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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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민요) 2. 동지 때 개 딸기(속담) 3. 동지섣달에 베잠방이를 입을망정 다듬이 소리는 듣기 싫다(속담) 4. 동지섣달 긴긴밤이 짧기만 한 것은(한세일. ‘모정의 세월’) 5.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어(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6. 동지는 지뢰복(地雷復).

예문 1, 2, 3는 동지는 춥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문 4, 5 등 2가지는 밤이 길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예문 6은 양의 기운이 생겨 봄이 시작되는 24번째 괘(卦)다.

동지는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그래서 동지(冬至)로 표현한다. 반대로 낮의 길이는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지를 영어로는 ‘solstice’라 한다. ‘극에 이르다’라는 뜻이다. 한자로는 ‘지(至)’다.

자연현상에서는 매년 하지(夏至·summer solstice)와 동지(冬至·winter solstice) 두 번의 극에 이른다. 지구의 축은 자전 궤도에서 23.5도 기울어져 있다. 정확한 동지 시점이 되면 북반구는 태양으로부터 멀어지며 기울어지는 것을 멈추고 다시 태양 가까운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런 현상을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태양이 며칠 간 하늘에서 움직이던 것을 멈춘 것으로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동짓날 가까운 25일인 것도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부활(復活)이라는 용어 또한 그러하다. 만물이 소생하는 출발점인 것이다. 동지는 어둠의 길이가 긴 정점(頂點)이자 밝음이 길어지는 저점(低點)이기도 하다.

6은 주역의 24번째 괘로 양의 기운이 비로소 싹튼다는 의미다. 임금이, “동지(冬至)는 양기(陽氣)가 생기는 날이고, 군자(君子)가 즐거워하는 때이니, 이날부터 대조회(大朝會)를 하고, 또 군신(君臣)이 함께 하는 연회를 베풀겠다.”(조선왕조실록 태종 7년 11월 14일)고 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하늘이 사시를 만들 때 제일 먼저 봄을 만들었다(天生四時春作首)’고 했듯이 동지는 봄의 시작을 알린다. 동지는 주역적으로 접근하면 24괘인 지뢰복(地雷復)이다. 땅을 나타내는 곤괘(坤卦)와 우레를 나타내는 진괘(震卦)가 위아래로 이어진 괘가 지뢰복(地雷復)이다. 우레의 봄기운이 땅속에서 꿈틀거림을 상징한다.

지뢰복에서 복(復)은 ‘돌아온다’ 혹은 ‘회복한다’는 뜻이다. 지(地)는 땅이며 뢰(雷)는 땅속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인 셈이다. 에너지가 다시 돌아온다는 의미로 봄의 기운이 땅속에서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 날이 바로 동짓날이다.

장례에서 사람이 죽어 혼비백산할 때 지붕에 올라 옷을 흔들면서 큰소리로 ‘복복복(復復復)’하며 초혼하는 이유도 지뢰복에서 기초한 것이다.

《열자(列子)》의 <황제편(黃帝篇)>에는 동지를 음(陰)의 겨울이 끝나고 양(陽)의 봄이 돌아온다는 의미로 일양내복(一陽來復)’으로 표현했다. 이제부터 봄이 시작된다.

동짓날 민속에서 팥죽을 먹는 풍속이 전한다. 팥죽은 주식은 아니기에 특별한 음식으로 먹는다. 민간에서 팥죽을 쑤어 먹기 전에 먼저 대문·담장·벽·부엌·마당 등 집안 곳곳에 뿌리는 의식이 있다. 이러한 의식에 팥이 선택된 것은 붉은 색의 곡물이기 때문이다.

민속에서 붉은 색은 몸으로 들어오는 액살(厄煞)을 막으며, 집안으로 들어오는 잡귀를 쫓아내는 축귀(逐鬼)의 주술적 효과가 있다고 인식한다. 새색시의 연지곤지 단장(丹粧), 처녀의 붉은 치마 홍상(紅裳), 주검의 신상을 알 수 있는 붉은 천 바탕의 명정(銘旌) 등에서 붉은 색의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사찰의 불상점안 의식에서 팥을 뿌리는 작법(作法)이나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출애굽기 12:22)는 성경 내용도 불교민속학적, 신학적으로 각각 축귀의 바탕이라고 풀이해도 무리가 아닐 것 같다.

팥죽 뿌림의 의식은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 나쁜 것을 제거하여 길상(吉祥)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일 것이다. 정해진 귀신을 물리치는 것을 축귀라 표현하고,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것을 벽사라 표현한다. 벽사라는 짐승은 벽사수로 문지기를 자청하여 삿된 것을 물리치는 수문장 역할을 한다.

동지 음식으로 붉은 색을 선택한 것도 무의미하지 않다. 붉은 색은 사귀(邪鬼)를 쫓고 경사로운 일을 맞이하는 벽사와 진경(進慶)의 작용을 동시에 하고 있다.

병신년의 끝자락에 결국 불통과 불투명으로 인하여 촛불민심이 폭발했다. 대통령을 탄핵하기까지 국민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의 고생이 심했다. 동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한 해가 시작되는 셈이다. 새벽이면 닭울음소리에 어둠이 사라지듯 정유년에는 소통과 투명의 산천이 함께 밝아오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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