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명언을 남긴 이가 ‘지혜의 왕’으로 불리는 솔로몬 왕이다. 한 아기를 두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이라고 우기며 사생결단으로 다툴 때 지혜로운 판결로 친어미를 찾아준 사람이 바로 솔로몬 왕이다.
이 사건은 누구도 풀지 못한 난제였고, 그 재판은 탄복할 만큼 지혜로운 판결로 이어져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불린다. 그렇게 총명한 솔로몬은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간과하기 쉬운 것이 그의 출생의 비밀이기도 하다.
솔로몬의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간음한 여인의 대명사처럼 되어 버린 밧세바였다. 그의 아버지인 다윗 왕의 통치 기반이 워낙 든든하다 보니 주변의 나라들이 이스라엘에 앞 다투어 숱한 조공을 바쳤다. 다윗 왕은 외교관계에서 우월한 강대국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그 때 사달이 났다. 전장을 누비던 다윗 왕은 그의 부하 요압 장군이 이끄는 군사들이 출정할 때 충정어린 요압 장군이 한 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요압 장군은 “왕은 이스라엘의 희망이십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신 왕께서 출전하시어 혹여 부상이라도 입게 되면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게 되옵니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이다.
이로 말미암은 다윗 왕의 감미로운 휴식이 다윗의 일생을 망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의 부하 장군 우리아가 출정한 이후 하루는 다윗 왕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전망 높은 궁정에서 거닐며 백성들의 집을 살펴보던 다윗 왕의 두 눈에 그만 알몸의 밧세바가 들어오고 말았던 것이다.
다윗 왕은 그 순간 정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래서 그 여인을 불러들였고, 순식간에 불륜의 늪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다윗은 간통죄를 저지르면서부터 분별력이 사라졌다. 곧 이어 거짓말을 꾸미고 거짓증거를 만들고 급기야 그의 충성스런 부하 우리아를 교묘하게 살해하기까지 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이지 못한다. 하나님은 때가 되자 그에게 죗값을 엄중하게 물었다. 다윗은 속죄의 시간이 생지옥이라는 것을 절절히 체험하게 되었다. 아무리 후회해도 늦은 시간이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주워 담기에는 때가 늦었다. 그래서일까, ‘나중에 돌이켜 뉘우치다’는 뜻의 후회(後悔)는 좌절과 안타까움과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나 다름없이 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님의 처절한 심판이 있은 후에 다윗에게 여러 아들이 생겼는데, 솔로몬은 밧세바의 넷째 아들이었다.
구약성경에는 다윗의 부인 여섯의 이름과 그 아들들의 이름이 차례로 나오고 난 다음 일곱 번째 밧세바의 이름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막내인 넷째가 솔로몬이다. 밧세바는 정식 왕비가 아니었고, 그것도 불륜을 저지른 다음 혹독한 심판을 당해 인생이 끝났다고 여길 무렵에 태어난 아이들이 솔로몬과 그 형제들이었다. 그러니 언감생심,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솔로몬은 비밀일기나 다름없는 잠언, 전도서 등 그의 저서에서 인생의 파란만장하고 예측불허이고 각본마저 없는 드라마 같은 삶의 기록을 남겼다.
며칠 전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끝내 탄핵을 당하고 말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것이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이 모든 것은 어느 시점에 반드시 드러나기 마련이다. 박 대통령이 투명하게 소통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정한 인사와 정치를 펼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이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정치권은 ‘촛불 민심’을 당리당략에 이용하지 말고 대승적 결단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국민들도 촛불을 만능의 지팡이로 여겨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무리수를 두면 필패한다는 것이 솔로몬 왕의 일대기가 전해주는 역사적 교훈이 아닐까?
박정관 굿뉴스울산 편집장 중구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