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15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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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나 코만도같이 영웅심을 자극하는 전쟁영화를 보고 “말도 안된다”며 콧방귀를 뀌는 한국의 예비역 남성들이 지독히 공감하는 군대 관련 영화가 한편 있다.

바로 윤종빈 감독의 2005년 작 ‘용서받지 못한 자’가 바로 그것이다.

‘범죄와의 전쟁’, ‘군도:민란의 시대’ 등으로 지금은 메가히트 감독이 된 윤종빈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자, 역시 국가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한 하정우의 초창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우리 군대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사실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병영 내 폭력과 부조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승영(서장원)이 ‘짬밥’을 먹으면서 어느새 자신이 증오했던 폭력과 부조리를 저지르고 있는 모습부터, 선임의 군번이나 통화 예절을 암기하지 못해 ‘갈굼’을 당하다 자살하는 ‘고문관’ 지훈(윤종빈)의 모습을 보며, 한국의 예비역 남성들은 마치 데자뷰처럼 당시의 싸늘한 기억을 끄집어내며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3일 울산 예비군훈련부대 폭발사고 취재현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상급부대의 질책을 우려한 간부들이 사병을 동원해 훈련용 폭음통 1천600여발을 불법해체해 나온 5kg 상당의 화약을 바닥에 뿌린 것을 며칠 뒤 가을철 낙엽쓸기와 같은 ‘영내 사역’을 하던 사병들이 쇠 갈퀴, 삽을 끌고 가다가 그 마찰로 폭발이 일어났다는 군 당국의 발표에 회견장에 있던 대부분의 남성들은 해당 사고가 어째서 일어났는지 금방 유추해냈다.

군 헌병대에 따르면 해당 부대가 올해 예비군 훈련용으로 수령받은 폭음통은 모두 1천842개. 지난 1일 이들이 해체한 폭음통이 1천642발이었으니 사실상 올해 예비군 훈련에서는 폭음통이 200여발밖에 사용하지 않았으며, 결국 예비군 훈련이 엉터리로 진행됐다는 것과 맥이 같다.

이 같은 이유로 당할 질책이나 문책이 두려웠는지 이들은 훈련일지에는 폭음통을 소진한 것으로 허위기재를 하고 폭음통을 불법해체해 모두 소진했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나 남친이 군대에 가있는 ‘고무신’들이 들으면 경악할 이야기지만 사실 이 같은 경우는 군내에서 굉장히 흔한 일이다. 실제 신병교육대나 예비군 훈련부대에서는 심신 상의 이유로 사격이나 수류탄 투척을 하지 못하는 인원이 발생하며 날씨의 영향을 받아 훈련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잉여탄을 상급부대에 이월시키는 경우가 기본적인데 잉여탄의 양이 많으면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질책이 날아들게 된다. 그래서 훈련부사관이나 조교들의 사격연습 등으로 임의 소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 사고도 딱 그 경우였다. 군 당국은 “잉여탄을 이월하면 상급부대의 문책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문책은 없다”고 답했지만 이는 예비역들이 들었을 때 코웃음이 나오는 답변이었다.

진급을 위해 어떻게든 사병들을 쥐어짜서 영내 사역을 하고 병영 부조리를 눈감는 간부들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에 대응하는 군의 태도도 기자가 군에 있었던 10년전이나 아버지 세대가 군생활 했을 40년 전과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언론과 유일하게 창구역할을 했던 참모는 사고 당일 저녁부터 아침까지 취재진의 연락과 문의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부상자 수는 고무줄처럼 줄었다 늘었다 했으며 없다던 고막파열 환자를 뒤늦게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군의 처신에 꽃다운 나이에 나라의 부름에 응한 청년들의 얼굴과 마음에 상처가 깊이 패였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안전 따위는 내팽개쳐 이런 사단을 만든 군 간부들은 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청년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자’들일 것이다.

<윤왕근 취재1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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