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불성설의 시대를 넘어
어불성설의 시대를 넘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1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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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악설보다는 성선설을 믿는 것이 위안이 된다. 방송이나 언론에 오르내리는 미담은 우리들 마음에 그래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준다. 그래 인간은 누구나 원래 선한 존재였는데 각박한 세상이 인간을 그리 만드는 것이라고 믿으며, 꽁꽁 감추어두었던 도덕이나 양심을 다시 꺼내보는 것이다. 하지만 성선설을 믿으면 자기 이득만 생각하는 기득권 가진 사람들 때문에 자주 실망하게 된다. 인간이 어찌 저럴 수가 있을까? 벌어지는 일을 눈앞에 보고도 믿지 않으려 한다.

우리가 뽑은 권력 너머에 비선 조직이 있었고 청와대를 자기 안방 드나들듯 했고 국정을 직접 챙겨 대통령이 꼭두각시, 혹은 적극적 조력자였다는 것이 밝혀져 200만 가까운 촛불로 타올랐다. 탄핵은 가결되었지만 모든 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보수의 고장인 울산도 믿고 맡겼던 대통령의 실체가 드러나자 설마설마 하다가 충격 받은 사람이 많은 듯하다.

세상은 모든 일이 조직화, 제도화되어서 자기 맡은 일만 잘하면 잘 돌아갈 것으로 믿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각자가 바쁘기 때문에 자기 일 너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기 일에 충실하다는 것은 남의 일, 정치문제에는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도 했다.

전에 작은 식물 공부 모임을 하며 지역에 있는 주부들과 공부를 하던 때에 세월호 사고가 터졌다. 알토란같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며칠이 지난 모임에서 자연스레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가지 구조상 드러난 ‘컨트롤타워’ 문제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했는데 그 때 한 주부가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변호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언쟁 끝에 그 주부는 ‘정치적인 이야기’는 그만하자고 제안했고, 나머지 주부들도 이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그 뒤 난 이 모임을 그만두었다. 이런 분들에게 자연과 생명은 어떤 것일까 하고 크게 실망했던 것이다.

'정치적 견해의 차이'라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우리 일상을 벗어나면 무조건 '정치 이야기'라고 회피하는 태도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다. 모든 중요한 문제인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위탁해 놔서 이런 꼴이 벌어졌고, 우리 일상의 문제가 정치와 관련이 없는 것이 없는데 말이다.

정치가 잘못돼서 어려운 상황에 우리는 그 분노를 술을 나누는 친구에게 풀고, 가족에게 풀기도 한다. 200만 촛불은 이제 정치를 정치인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렀다고 본다.

어른들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지만 세상을 배우는 과정은 끝이 없다. 평생교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저녁상을 비우고 보는 뉴스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프리즘이자 '어른들의 학교'다. 세상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 굵직한 사건이 생기면 진실을 파악하기도 무척이나 힘들다. 자기 맡은 바 일을 다 처리하기에 바쁘다 보면 신문 하나 대충 훑어본다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진실을 아는 사람보다는 '카더라' 혹은 카톡으로 무한정 전송되는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글을 더 믿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늘게 된다. 간혹 피켓을 들고 관제 시위를 벌이는 사람도 자주 등장하여 여론을 조작하고 잘못된 자기 생각을 확신하게 만든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나름대로 해석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심시킨다. 알지 못할 일들이 수도 없이 생기는 세상만큼 불안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세상이 흑백논리에 따라 하나의 진영에 속한다는 것은 이렇게 안심의 울타리가 된다. 하나의 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과 말이 통하는 사람들만 만나기 때문에 종교적 신앙처럼 집단최면으로 자기 생각을 믿게 된다.

이는 진보라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현실적이지 못한 것, 보수라는 사람이 합리적 의심을 하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세상을 개혁하려는 사람들은 시민이 뭘 원하는 지 욕망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집단이 가진 생각이 '의식의 평균'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논의는 무성하지만 별로 현실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못하다. 기득권 싸움도 치열하다. 보수는 자기가 살아온 경험치로 자본주의 세상이 돌아가는 냉혹한 현실적 판단으로 기존 논리만을 강화시킨다. 자기 말을 믿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은 적으로 생각한다. 자신도 녹록치 않은 세상을 희생하며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왔는데 그 시대를 부정하는 듯한 주장에 반발심이 생기는 것이다.

권력의 실체를 알아버린 시민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촛불집회를 통해 자기 생각과 주장을 말하고 있다. 누구는 박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이 민심을 통일하게 한 것이라고 한다. SNS롤 통해 연결된 집단지성과 여론이 부패한 권력에게 '탄핵 가결'이라는 위대한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제 시민들의 민주주의 학교는 촛불집회 마당이 되었다. 학생들이 이제 교과서가 아니라 현실에서 참여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 이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민혁명의 시작이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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