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족(廢族) 시비
폐족(廢族) 시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1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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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던 조선시대의 가장 엄한 형벌은 가문이나 일족을 뿌리째 없애버리는 ‘멸문(滅門)’, ‘멸족(滅族)’이었다. ‘멸문지화(滅門之禍)’, ‘멸족지화(滅族之禍)’란 말이나 “3대를 멸한다”, “9대를 멸한다” 하는 말도 여기서 생겨났다.

최근에 갑자기 뜨기 시작한 ‘폐족(廢族)’이란 말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형벌이었다. ‘폐족’의 사전 속 뜻풀이는 ‘조상이 형(刑)을 받고 죽어서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됨. 또는 그런 족속.’이다. ‘멸족’ 처분을 받았다가 나중에 ‘폐족’으로 사면 받은 사례도 있었다. 저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 김병연(1807∼1863)과 그의 모친이었다.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폐족’이란 말이 격변의 근대사 속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야권 대선 주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을 올린 안희정 현 충남지사가 2007년 12월 26일에 꺼낸 말이 그 첫 단추다.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하던 그는 “친노(親盧=친 노무현)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입니다. 죄짓고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들과 같은 처지입니다.…우리는 우리 모두의 변화와 개혁에 실패했습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압승을 거둔 직후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요즘 같은 ‘탄핵 정국’에서 ‘폐족’은 누구를 말하는가?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을 쌓아 왔던 이른바 ‘친박(親朴=친 박근혜)’ 그룹을 일컫는 말이다. 12월 9일 국회가 박 대통령을 탄핵시키기 전후로 각종 언론매체는 ‘폐족 위기의 친박’이란 표현을 스스럼없이 사용해 왔다. 이러한 현상은 ‘반기문 대망론(待望論)’의 진원지인 충청도라고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한 언론매체는 9일자 기사의 제목을 ‘친박 폐족 위기에 반기문 줄서기 본격화 예고’라고 달았다. 이 기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되면서 충청권이 요동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멸족 위기감 속에서 또 다른 돌파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충청권 내 친박 정치인’으로 새누리당의 정진석 원내대표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 김태흠 의원, 이장우 최고위원, 이은권 의원, 정우택 의원, 박성효 전 대전시장을 직접 거명했다.

조명을 잠시 울산의 여권 쪽으로 돌려보자. 울산 역시 ‘폐족 시비’가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먼저, 지역 정치권의 좌장 정갑윤 의원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소신파 진박(眞朴)이다. 그래서인지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얼마 전 새누리당 사무총장에 취임한 박맹우 의원 역시 자신의 신념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경우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에게는 “줄을 잘못 선 게 아니냐?”는 비난성 구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길부 의원은 ‘탄핵소추’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친박(親朴)’과는 거리를 둔 정치인이다. 관계당국이 선거법 위반 협의를 들이대자 “야당 정치인과 머릿수를 맞추기 위한 구색용”이라며 즉각 반발한 바 있다. 그렇다면 한때 ‘친이(親李=친 이명박)’계였던 이채익 의원은? 아직 그의 속내를 정확히 짚어내기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국회에서 찬성 234, 반대 56으로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9일 오후 5시 무렵에 낸 그의 짧은 논평에서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뿐이다. 다음은 이채익 의원의 ‘탄핵안 가결에 대한 논평’ 전문이다.

“탄핵이 보여준 준엄한 국민의 뜻을 되새기며, 다시는 이와 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치권 모두가 반성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지금부터 저는 솔선수범하여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면서 민생을 돌보는 일에 힘을 모아 나가겠습니다. 더욱 더 낮은 자세로 헌신하고 봉사하는 마음으로 국정에 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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