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틀린 우리말
뒤틀린 우리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12.08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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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신문·잡지나 문서에서 어색한 우리말을 발견할 때가 있다. 필자는 한글 학자가 아니어서 학문적으로 지적할 능력은 없으나 문법상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우리말이 영어에 치여 국적 불명으로 뒤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말을 영어식 문장으로 쓰는 일이 점점 늘어 나다보니, 우리말에 영어 피동형이 스며들어 자연스럽지 않게 번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적 불명의 ‘이상한’ 피동형으로 쓰이고 있는 문장 가운데 자주 눈에 띄는 몇 가지를 살펴본다.

‘하루아침에 성취되어진다’, ‘판단되어진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제품’, ‘보여진다’, ‘…에 의하여 주어진 상’과 같은 표현들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찾으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런 말은 아래처럼 우리식으로, 능동형으로 고쳐 써야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하루아침에 성취되었다’, ‘판단된다’, ‘중국에서 만든 제품’, ‘보인다’, ‘…이 준 상’이라고 하면 될 터이다.

이와 같은 말은 영어 문장을 우리말식으로 가다듬지 않은 채 곧바로 번역한 말투로서 피동형이 잘못 쓰인 용례이다.

이상한 것만 골라 본 것인 만큼 좀 어색한 피동형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상당하지 싶다.

또, 이렇게 이상한 것도 있다. 지난 2월 동계체전에 참석한 자리에서 인근 도시의 체육회 임원과 만나 명함을 교환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농담 삼아 한 말인지 모르지만 그분은 ‘나는 나의 명함을 당신에게 드립니다’라는 말을 했다. 맞은 말 같으면서도 참 어색하게 느껴졌다. 우리말을 영문법 식으로 따라 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명함을 드립니다’ 정도로 하면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이 말은 억지로 영어 문장의 주어와 소유형용사를 넣어 말했기 때문에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나는’이라는 주어와 ‘나의’라는 소유형용사는 대개의 경우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서로 생략한다. 우리말을 붙이면 오히려 어색하고 이상하다. 이런 경우, 영문법대로 주어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동형이 남용되었고, 그 바람에 우리말의 체계 자체가 어색하게 뒤틀리고 말았다.

어색하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울 리 없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묘하게 뒤틀린 것은 한글 맞춤법이 아닌 영문법에 따라 쓰고 말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문장을 보게 되면 한복 윗저고리에 양복 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아 이상하다.

피동형 외에도 어색한 표현이 적지 않은데 몇 가지만 더 소개해 보기로 한다. ‘어제 울산공항에 도착했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장관 일행은 오늘 오전에 시청을 방문하여…’라는 문장을 예로 들어보자. 이 문장에서는 ‘-던’이 문제다. 울산공항에 도착한 이후 그대로 울산에 있다가 시청을 방문했다면 ‘도착한’이지 ’도착했던‘이 될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때가 많다. 이 ‘○○○에게’도 영문법의 피동형처럼 우리말을 뒤틀고 있다. ‘정부에게 건의했다’, ‘현대에게 항의했다’…. 어색하고 이상해서 찾아보았더니 이런 경우는 ‘에’가 맞고 ‘에게’는 ‘박 군에게’. ‘고양이에게’처럼 사람이나 동물인 경우에 쓴다고 적혀 있다.

어휘 선택에도 문제가 많다. TV 연속극을 보면 특히 젊은 층에서 ‘좋은 것 같아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에게 감사드리겠습니다’를 입버릇처럼 쓰고 있다. 좋다든지 아름답다고 단정해야 할 경우에 ‘것 같아요’를 쓰면 안 된다.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경우에 ‘고마운 것 같아요’라면 어색할 수밖에 없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필자는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니다. 매일 공문서를 작성하고 언론을 접하는 과정에서 어감이 어색해서 찾아본 몇 가지를 적은 데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쓰는 말이 어색해서는 안 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워야 하지 않겠는가.

울산시는 올바른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국어문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국어 진흥 조례’를 제정하고 우리말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맞춤법, 외래어 표기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다듬는 것은 몇 배 더 중요할 것이다. 이 보람 있는 일에 우리 모두가 나서서 정성을 쏟을 필요가 있다.

글은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런 만큼 우리 문화의 깊이와 무게, 그리고 운치를 상실함이 없이 글을 담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손종학 울산광역시 체육지원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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