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행복한 캄보디아에서 오히려 행복을 배웠지요”
“가난해도 행복한 캄보디아에서 오히려 행복을 배웠지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12.06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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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주 동강병원 소아청소년과 주임과장
30년 가까이 어린이만 대면해서일까? 천진난만하고 구김살이 없어 보인다. 인상도 그렇고 사람 대하는 심성도 그런 것 같다. 지난 3일 오전, 가까스로 만난 정철주 울산 동강병원 소아청소년 과장(61). 토요일인데도 1층 서쪽 켠 소아청소년과 진료대기실은 순번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와 보호자들로 빈틈이 없어 보였다.

하루 전 금요일은 휴식 취하느라 짬을 낼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그 전날 야간응급실 당직을 맡았기 때문이다.

“저희 소아청소년과는 과장 세 분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는데, 사흘마다 돌아오는 셈이지요.” 사흘짜리 징검다리 당직이면 강행군에 속한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요즘 아동병원이 하도 많이 생기다 보니 종합병원은 오히려 환자가 줄었지요. 꼭 와야 할 환자만 종합병원을 찾아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의료봉사단 13명, 동강병원 위상도 높여

본론으로 들어갔다. 캄보디아에 의료봉사 다녀온 이야기를 대충이나마 듣기로 했다.

동강의료재단(이사장 박정국) 동강병원의 해외 의료봉사 활동은 올해로 여섯 번째다. 발대식은 지난달 22일 동강병원 남관 세미나실에서 유봉옥 병원장을 비롯해 50여명의 병원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박원희 상임이사가 해외 의료봉사 나들이의 의의를 강조하며 대원들을 격려했다. 소명의식을 심어주겠다는 뜻에서였다. “이번 해외 의료봉사는 정치, 종교, 인종, 국가를 초월해 의료혜택의 불모지인 캄보디아 국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동강병원의 위상도 높이고 국위도 선양하려는 취지로 마련했습니다.”

이 보람 가득한 캄보디아 의료봉사 나들이의 인솔단장 책임이 정철주 과장에게 주어졌다. 캄보디아 의료봉사단은 정 단장의 소아청소년과와 심장내과(김형준), 외과(최정필), 치과(최정우)의 4개 진료과로 짜여졌다. 지원인력에는 약사(1명)와 간호사(5명), 치과지원(1명), 행정지원(2명) 팀이 이름을 같이 올렸다. 단장을 포함해 모두 13명이 캄보디아 나들이 채비를 마쳤다. 대부분 초행길이었다.

시엠립 가까운 덤다액 중고교에 의료캠프

동강병원 해외 의료봉사단의 최종 행선지는 캄보디아(State of Cambodia) 북쪽에 자리 잡은 씨엠립 시(시엠립 주의 주도)에서도 35km 남짓 더 떨어진 덤다액 중·고등학교. 덤다액 읍은 논농사가 주업이고, 이곳 학교는 인천 ‘새순교회’에서 선교사역 대상으로 삼는 곳이기도 하다.

떠나기에 앞서 일행은 짐을 가능한 한 푸짐하게 꾸렸다. 의약품 2천명분, 노트 2천500권, 빵 2천500개, 옷·바지 800벌, 벽시계 10개, 우산 50개, 파스 2박스, 기능성 티셔츠 500벌, 모자 500개…. 대부분 학교 아이들과 마을주민들에게 나누어줄 선물꾸러미들이었다. 이번에도 지난해처럼 의료봉사 마을에 우물을 파줄 참이었다.

출발 날짜는 발대식 다음날인 11월 23일. 나들이 기간을 같은 달 27일까지로 잡아 놓았으니 3박 5일의 강행군 여정이다. 숙소는 시엠립 시와 덤다액 읍의 중간 지점에 있는 리조트 내 호텔로 정했다. 정 단장은 “우리나라 부영건설이 지은 시설”이라고 귀띔했다. 일행들에겐 하루의 피로도 풀 겸 휴식 취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동강의료재단은 동강병원 해외 의료봉사단의 활동 대상지를 시엠립 시를 중심으로 하되 해마다 바꿔 가면서 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눈병환자 많아… “내년엔 안과진료도 했으면”

드디어 의료봉사의 청진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의료캠프 격인 덤다액 중고등학교에는 마을주민들이 하루에도 수백 명씩 몰려들었다. 사흘 동안 줄잡아 1천명이 넘게 다녀갔다는 게 의료봉사단의 추산이다.

정철주 단장이 진료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소아과 진료에는 감기 증세가 있거나 안과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줄을 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안경 쓴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지요.” 안과 환자는 대부분이 근시였다. 교실의 칠판이 안 보인다면서 “눈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고 했다.

그러나 이번 의료봉사에는 병원 형편상 안과 전문의가 동참하지 못했다. “제 개인 생각이지만, 다음 의료봉사 때는 다른 병원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안과전문의도 꼭 따라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정 단장은 할 수만 있다면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심장내과 진료에는 기관지염, 요로감염 환자가 다수를 차지했다고 했다. 떠날 때는 지난해처럼 우물을 파 주기로 계획했으나 학교가 있는 마을을 둘러보고는 두 칸짜리 화장실 지어주고 왔다. 떠날 듯이 기뻐하던 주민들의 모습이 정 단장의 기억에는 아직도 생생하다.

“이빨 뽑아도 안 울고 참는 아이들 참 기특해”

의료캠프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보면 에피소드도 자연히 늘어나는 법. 정 단장이 활짝 웃으며 에피소드 두어 가지를 들려주었다.

“며칠 전에 시험을 잘못 보았다는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찾아왔어요. 사연을 들어보니 생전처음 술 3병을 마시고 나니 곧바로 바닥에 쓰러졌다는 것인데, 나중에 아이 엄마가 이 소리를 듣고는 잔뜩 화가 났는지 그만 아들을 들쳐 업고 가 버렸답니다.”

다른 하나는 발등이 퉁퉁 부은 채 찾아온 세 살 난 여자아이 이야기였다. 종기가 생긴 것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술용 칼로 째니 고름이 마치 수도꼭지라도 튼 것처럼 세차게 뿜어져 나왔는데 그만 우리 간호사 얼굴에 튀고 말았지 뭡니까, 허허! 어쨌든 그 아이는 틀림없이 그날 밤 편안하게 잠을 잤을 겁니다.”

치과 진료 팀에 배정된 아이들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이빨을 뽑을 때 아이들이 조금도 울지를 않아요. 주먹을 꽉 쥐고 잘도 참아내던데, 초롱초롱한 눈매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정 단장의 상념은,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잠시 캄보디아 덤다액 중고등학교 교실로 돌아가 있는 듯했다.

‘킬링필드 악몽’ 사라지고 행복한 표정 가득

그는 가난하게 살아가면서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그의 말과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곳 사람들, 아주 순박했어요. 무슨 말이라도 건네면 열에 열 모두 감사하다는 표시를 빠뜨리지 않더군요. 우리가 보면 가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분들, 행복지수가 아주 높다고 해요.”

이런 말도 들려주었다. “떠나기 전에는 캄보디아 사람들이 우리 만나고 나서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행복감을 더 느끼고 있으니 거꾸로 된 것이지요.”

하긴 그럴지도 모른다. 캄보디아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느낌을 전한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면, 도로를 비롯한 인프라 건설은 거의 100% 베트남에 의존하고 전기 공급은 태국에 의존한다는 동남아 최빈국 중 하나라지만, 심성이야 우리보다 몇 십 배 더한 풍요로움으로 다가오는 캄보디아 국민들….

국민의 95%가 불교 신자여서 그런 것일까? 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2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저 악명 높은 ‘킬링필드’의 악몽(1975∼1979)도 2016년 11월의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선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봉사는 섬김, 내년에도 다시 가고 싶어”

정철주 단장에게 ‘봉사’는 다름 아닌 ‘섬김’이다. 캄보디아에 그래서 다시 한 번 가서 인술을 마음껏 베풀어 보고 싶다. 하지만 해외 의료봉사 활동의 기회는 자주 주어지는 게 아니다. 병원의 다른 분들도 하나같이 어울려서 가고 싶어 하니까.

동강의료재단의 지침은 동강병원 가족들에게 봉사정신을 일깨우고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해마다 캄보디아를 찾게 한다. 이번 의료봉사단 일행 대부분이 캄보디아 초행인 것도 그러한 지침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저런 상념들을 속으로 껴안은 채 일행은 마지막 날 오후 잔뜩 별렀던 앙코르와트 사원을 찾았다. 의료캠프에서 차로 달려 불과 20∼30분 거리에 있는 크메르 왕국의 유적이다. 크메르 민족에게는 영화의 상징이기도 한 앙코르와트 사원은 일찍이 유네스코가 알아서 등재시킨 세계적 문화유산이 아니던가. 정 단장과 동강 봉사단 일행은 캄보디아가 전성기 크메르 왕국의 영광과 크메르 민족의 자존심을 하루속히 되찾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유서 깊은 옛 사원을 둘러보았다고 했다.

전남 영암이 고향… 부인도 우정성당 신도

월출산으로 유명한 전남 영암이 고향이다. 광주고와 전남대 의대를 거쳐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모두 동강병원에서 보내고 지금에 이르렀으니 누가 뭐래도 ‘동강 맨’이다. 그러한 이력의 정철주 과장이 이 병원 메인스텝(과장)의 일원으로 이름을 올린 해는 1988년. 28년 전의 일이다.

좌우명은 ‘최선을 다해 살자!’. 즐기는 골프 실력은 ‘80 중반’, 바둑은 ‘아마 5급’이라 했다. 영세명이 ‘미카엘’인 정 과장은 주일이면 4년 연하인 김영희 여사(57, 영세명 ‘노엘라’)와 우정성당을 찾는다. 슬하에 출가한 1남 1녀를 두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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